전 세계가 미국 금리인상에 쩔쩔 매는 이유
최근 미국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 연말까지 미국 금리인상 목표는 3%대이다. 이미 0.75%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 연준은 이번 달에도 0.75%포인트 이상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모든 나라에서 미국 금리인상은 탑뉴스이다. 자기나라 금리는 몰라도 미국 연준 금리는 다 안다. 자기 나라 중앙은행장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미국 연준 의장이 제롬 파월이라는 정도는 다 안다. 왜 세계 모든 나라는 미국 연준의 금리정책만 쳐다보는 걸까? 미국이 이렇게 미국이 계속 금리를 올리면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기초체력이 취약한 신흥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자산이 폭락하고,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 폭락한 자산을 미국 월가자본들은 헐값에 사들여 경기회복기가 오면 엄청난 차익을 챙긴다. 이것을 ‘양털깍기’라고 한다. 양을 죽이지는 않지만, 털을 포송포송하게 자라게 한 다음 털을 깍아먹는다는 이야기이다. 그 흑역사를 살펴보자.
80년대 금리인상과 남미외채위기
스태그플레이션이 한창이던 1979년부터 81년까지 미 연준 의장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연속적으로 9.37%, 4.25%로 올려 금리가 20%까지 뛰어 올랐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금리이다. 당시 소비자 물가인상율은 14.6%였는데, 결국 물가를 잡기는 잡았다. 그러나 멕시코 등 남미는 심각한 외채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막대한 이자 상환부담을 떠안았던 멕시코는 1982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였다. 이른 바 데킬라 쇼크(외채 위기)가 터진 것이다. 멕시코에 이어 다수 남미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미국 자본은 폭락한 남미국가들의 자산을 헐값에 매입하고, 남미에 종속적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를 강제이식하였다. 이 달콤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만들어 세계화 전략의 교과서로 삼았다. 그리고 90년대에는 한국 등 동아시아가 양털깎기를 당한다.
90년대 금리인상과 동아시아 위기
1987년 8월 미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1990년 1월 8.25%였던 기준금리를 1992년 3.0%까지 떨어뜨린다. 금리하락에 따라 돈이 풀리고 부동산, 주식가격이 상승하는 등 경기 확장국면이 찾아왔다. 경기가 상승하자 그리스펀은 1994년 2월 아무런 예고없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6차례 걸쳐 기준금리를 3%나 올려 기준금리가 6%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달러강세가 형성되자 동아시아, 러시아, 중남미에 들어갔던 자본들이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그 유명한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당시 한국경제는 3저 호황으로 잔뜩 거품이 끼어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OECD가입을 조건으로 금융시장, 외환시장을 개방하였다. 재벌들은 국제화를 한다면서 해외단기외채를 무분별하게 들여와 몸집을 확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종금사까지 차려놓고 일본에서 단기저리외채를 빌려와 동아시아에 장기 고금리로 빌려주는 이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동아시아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때 미국은 일본에게 한국의 만기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루빈 재무장관,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서 압박하였다. 결국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와 IMF구제금융에 빠진 한국 자산가격은 급격히 추락하였다.
당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역삼동 스타타워빌딩을 6330억원에 인수해 3년 뒤에 팔면서 3120억원의 매각차익을 남겼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외환은행에 2조1549억원을 투자해서 8년 만에 4조6633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팔아먹었다. 이것을 양털깎기라고 하지 않고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IMF라는 말만 들어도 악몽에 시달린다. IMF국난은 한 번 극복했으니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그런 위기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털깍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미국 달러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2000년대 금리인상과 금융공황
동아시아 위기에 깜짝 놀란 그리스펀은 1998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10% 미만으로 떨어뜨리고 1999년 3월 이후에는 5% 미만으로 빠른 속도로 금리인하를 단행하였다. 이 저금리는 닷컴 버블을 일으킨다. 그리스펀은 급하게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총 6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결국 미국에서 닷컴 버블이 붕괴한다. 그러자 이제는 또 거꾸로 2003년까지 1%대의 초저금리를 유지한다. 물가가 3%로 다시 오르기 시작하자 그린스펀은 또다시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이때는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2004년 6월 1.0%였던 기준금리를 총 17차례에 걸쳐 0.25%씩 금리를 천천히 올려 4.25%까지 끌어올린다. 그러나 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금리인상이 문제가 되어 2006년부터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고, 결국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다. 전 세계는 미국발 금융공황 쓰나미에 휩쓸려갔다. 온 세계가 바라보는 미 연준의 금리정책이라는게 이 모양이다.
2008년 금융공황의 여파로 한국에서는 키코(KIKO)사태가 터졌다. 키코란 수출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은행이 팔아먹던 환율 헷지(헷지=투기)를 위한 파생상품이다. 환율 변동구간을 정해놓고 환율이 구간 안에서 움직이면 가입기업이 이익을 보고, 환율구간보다 올라가면 손해를 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공황 이후 터졌다. 한국경제는 대외의존경제로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원화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져 환율이 상승하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 때는 원달러환율이 1800원대까지 상승했고, 2008년 금융공황때는 1600원대까지 상승했다. 최근 원자재 가격폭등, 무역적자, 금리인상 등 위기로 1300원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한다는 것은 한국돈의 가치가 똥값된다는 이야기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이 터지자 원화가치가 폭락했다. 이 급격한 원달러환율 상승으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그 피해액이 3조 2천억 원에 이르고 235개 수출중소기업이 폐업하거나 워크아웃 등을 당했다. 달러팽창과 금융산업 팽창 과정에서 사실상 외국자본 수중에 들어간 은행들이 ‘부자되세요’ 놀음을 하면서 중소수출기업을 상대로 대형사기를 치고 양털깍기를 감행한 것이다.
2008년 금융공황 여파는 심각했다. 어마어마한 경제충격을 가하면서 세계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다. 금융 공황 직후 한국에서는 462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1400선 주가가 900대로 폭락하면서 경제성장율도 –4.5%로 주저앉았다. 러시아는 한때 주식 거래가 중단되고, 이후 경제침체에 따른 유가하락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등 금융으로 먹고살던 국가들은 국가부도상태에 처했다. 2008년 금융공황은 이후 그리스 경제위기를 비롯, 유럽 재정위기로 번졌다. 잘 성장하던 브라질 경제가 침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위기를 전 세계에 전가하면서 위기를 넘겼고,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월가의 금융자본들은 다시 전 세계에서 폭락한 자산들을 헐값에 사들였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세계에 위기를 떠넘긴 미국은 전세계적 장기침체속에서 나홀로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채의 바벨탑을 쌓는 새로운 과정에 불과했다. 마침내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22년 금리인상과 스태그플레이션 복합위기
최근 다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강세가 형성된다. 아직까지는 달러가 강력한 기축통화이고, 가장 안전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까지 겹친 현 상황에서는 세계 곳곳의 자금이 모두 미국으로 몰리게 된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덩달아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자본 이탈이 시작되면 다시 가장 피해를 입는 곳은 신흥국들이다.
이미 경제체력이 취약한 국가들에서는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브라질 화폐 헤알화와 칠레 페소화 가치는 달러 대비 9%나 하락했다. 24개 신흥국 주가지수는 지난 일주일 동안 4.7%나 내려 앉았다. 이미 아르헨티나는 2018년에 이어 올해 3월 추가로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였다. 스리랑카는 이미 지난 5월 디폴트를 공식화했고, 잠비아, 레바논, 파키스탄은 IMF 구제금융 등을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2008년 금융공황과 코로나19사태 이후 초저금리와 막대한 양적완화로 인해 엄청난 거품이 형성되고 전 세계에서 가계부채, 기업부채,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는데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부동산 거품이 지나치게 형성되어 있고, 가계부채, 기업부채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한국의 금리인상은 자산거품의 붕괴와 부채의 뇌관을 터뜨릴 수 있다. 2022년의 위기는 97년 IMF시기와 같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빨간등이 켜진 상태이다. 어느 시점에 폭발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양털깍기가 시작된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IMF같은 경제위기가 이번에는 가계부채위기, 스태그플레이션 등 복합위기로 하마처럼 달려오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또 금모으기를 할 것인가?
* ‘양털깎기’라는 용어는 <화폐전쟁>의 저자 중국의 쑹홍빈이 사용한 용어이다. 미국 로스차일드 등 금융투기세력이 다른 나라에 거품경제를 일으켰다가 거품을 빼면서 자산을 하락시켜놓고 헐값에 매입하는 짓을 주기적으로 자행한다고 비판하면서 사용하였다. 쑹홍빈의 주장은 음모론으로 비판받기도 하였지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달러제국의 양털깍기는 음모론보다는 금융독점자본주의, 달러 제국주의체제의 모순이 빚어낸 필연적인 경제현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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