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은 어휘에 관한 총체적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동사 부류에는 '에/에게, 을, -기, -게' 등과 같이 조사나 어미 정보가 덧붙는데 이를 문형 정보라 한다. 문형 정보는 그 단어의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쓰임을 잘 보여주므로 글을 쓰거나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활용하면 좋다.
그런데 단어의 쓰임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듯 문형도 단어의 쓰임에 따라 변화한다. 옛 문헌을 읽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문형 정보를 갖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비롯하다'이다. 비롯하다의 어원은 '비릇다/비ᄅᆞᆺ다'와 연결되는데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는 '비릇다' 형만 쓰였고 18세기에 비롯하다가 처음 등장해 현재까지 쓰인다.
현대의 비롯하다는 '에서, 을'을 주로 취하는데 20세기 초의 소설에서 '-기'와 어울리는 용례가 종종 보여 오늘날과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에도 '-기'와 어울려 사용된 예가 일부 있지만 '에서, 을'과 어울리는 빈도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현대국어에서 '-기 비롯하다'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기 비롯하다' 문형은 1930년대 잡지 '삼천리'에 "한문을 배우기 비롯하여 이제는 선생이 아니라도"와 같은 예가 확인되지만 현재는 쓰임이 줄어 낯설어졌다.
'-기 비롯하다'가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롯하다'의 의미 변화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시작하다'와의 연관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뜻이 비슷한 단어인 '비롯하다'와 '시작하다'의 어휘 경쟁으로 '-기 비롯하다'보다 '-기 시작하다'가 우세하여 '-기 시작하다'의 문형이 정착하고, '-기 비롯하다'는 쓰임이 밀려난 것이 변화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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