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덕의 암중모색] 위기에서 긴축재정, 알아서 살라는 건가
▲ 지난 5월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안철수 인수위원장으로부터 인수위가 준비한 국정과제를 전달받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도움이 필요한 곳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상생의 근로환경을 만들겠다."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5월 3일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발표 중
"민생 현안과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 7월 7일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 발언 중
시시각각으로 발표되는 경제 정책은 혼란스럽다. 잘못된 수학 문제를 내놓고 답을 구하는 것 같다. 법인세를 축소하고 부자들의 세금을 줄이면서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것, 이해하기 힘들다.
또 긴축재정을 하겠다면서 국민들에게 더 두터운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것도 가능한 일인지 회의적이다. 두터운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나 나라의 통 큰 지출이 필연적이다.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깎고 허리띠를 졸라맨다면서, 복지를 두텁게 하겠다는 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없는 정책으로 보인다.
긴축재정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향후 5년간 재정운영방향으로 긴축재정으로 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정부가 정책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재량지출뿐 아니라 법적으로 지출이 명시된 의무지출까지, 줄일 수 있는 건 모두 줄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런 긴축재정을 통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향후 5년간 50% 중반 정도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긴축재정의 선언 이후 부처의 예산 절감 방안도 속속 발표되었다. 우려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12일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정부운영인력 운영 방안만 해도 그렇다. 매년 공무원 정원 1%씩 감축하고, 신규 채용보다는 인력 재배치를 우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찰 인력과 교원 수급도 재배치나 인력의 효율적 운영을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2∼3만 명선, 문재인 정부에서 13만 명 늘어났던 공무원 신규 채용은 아예 없어지거나 극히 적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이나 교사의 신규 임용도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다.
공무원 경찰 교사 임용을 준비하던 취업준비생들은 생각지도 않는 악재를 만난 셈이다. 당장 노량진 고시촌이 혼란스럽다. 공무원 시험 정보를 공유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원 광고를 흉내 내 "♪공무원시험 합격은 권성동"이라며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과 공무원 신규 채용 축소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철밥통 공무원 군살빼기라는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새로운 인력이 필요한 부서에 폐지와 축소로 남는 인력을 재배치하겠다는 건 신규인력을 아예 뽑지 않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그들만의 철밥통 지키기며 취업준비생들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다.
청년들에게 일자리 문제 해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이다. 정부가 앞장서 신규 임용을 축소하고 기업에 임금인상을 자제하라는 요구하는 마당에 청년들은 아직 그 공약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격리 생활지원금 지급 대상이 축소됐다. 소득과 상관없이 1인가구 10만 원, 2인가구 15만 원 지급하던 격리 생활지원금이 중위소득 100% 이하에만 지급하는 걸로 변경됐다. 재택 치료나 외래·비대면 진료 시 진료비와 약값도 본인 부담으로 전환되었다. 격리·입원 환자가 발생한 기업에 주던 유급 휴가비는 종업원 30인 미만 기업으로 축소됐다.
코로나19 재유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지원 제도의 축소가 검사와 격리의 회피로 이어져 방역 체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온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모범국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건 국민의 헌신적 희생과 정부의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 격리 지원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 방역을 한다고 하지만 정부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다.
긴축재정의 또 다른 우려는 경기 악화를 더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돈줄을 조이고 기업이 임금을 동결이나 삭감하면 가계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비 위축과 실업 증가, 내수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세계적 위기 앞에서 정부가 먼저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이겠다며 긴축재정을 천명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결단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제대로 세금을 걷어 재정 건정성을 유지하고 일자리와 복지, 경제 회복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금 시기에 필요한 정부의 역할이다.
국민 기만
▲ 1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대출상품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오르며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이 약 12년 만에 6%를 넘어섰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주택금융공사보증·2년만기)는 지난 16일 현재 연 4.010∼6.208% 수준이다. 작년 말(3.390∼4.799%)과 비교하면 상·하단이 각 0.620%포인트, 1.481%포인트 뛰었다. ⓒ 연합뉴스
지난 13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월례포럼 모두발언에서 재정이 너무 망가져 빨리 방향을 전환해야 된다며 긴축재정 정책을 정당성을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이 국가부채를 키워 재정건전성을 해쳤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한 셈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관련 재정 지출은 GDP 대비 3.4%로 선진국 평균인 12.7%에 비해 크게 못 미쳤다. 국가 부채도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 119.8%(2021년 1분기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0.7%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 언론의 반대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확장재정이 아니라 소극적 확장정책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 재정 정책이 나라 살림을 빚더미에 올려놨다는 주장은 전 대통령 망신주기이자 긴축재정을 이유를 끼워맞추려는 꼼수다.
확장재정이 낭비의 동의어가 아니듯 긴축재정이 나라살림 절약이라고 단순히 정의하기 어렵다. 재정건전성 강화는 돈줄을 죄는 것보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 나라 살림살이는 얼마나 절약하는가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관건이다.
재정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면 청년들의 취업 문을 닫고 코로나19 생활 지원금까지 축소할 게 아니라,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관저 조성을 위해 혈세 496억 원을 쏟아붓는 헛튼 돈 쓰기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구중궁궐에 나와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를 벗겠다고 집무실을 옮겼지만 측근에 둘러싸여 국민과의 담장은 더 높아 보인다. 오랫동안 회자될 예산 낭비 사례다.
위기의 징후는 전방위적이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의 위협은 파도처럼 국민의 밥상에서 출렁거린다. 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 같은 금 모으기 운동이 필요하다는 억측까지 나온다. 양심도 없는 나쁜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나라 살림을 망가뜨렸다고 주장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가 재정의 역할조차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기업과 부자 감세, 재정 건정성 강화, 두터운 복지, 같이 담을 수 없는 정책들이다. 윤석열 정부는 모순되고 상치되는 정책과 공약을 내놓고도 여전히 복지를 앞세우고 일자리 창출을 운운한다. 국민 기만이다.
불황 중에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긴축재정은 우리 경제의 답이 아니라 독이다. 대기근 흉년에 나라 곳간부터 걸어 잠그겠다는 정부라니. 고래로 이런 정부가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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