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열심히 가계부를 쓰는 주부였다. | |
ⓒ pixabay |
신혼 초기의 나는 다른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가계부를 열심히 기록했다. 남편이 혼자 벌 때여서 한 달의 살림 규모를 알아야 했다. 매일 나가는 금액을 확인하는 것이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에 얼마를 써야 합리적으로 지출하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했다. 그렇다고 저축을 전혀 하지 않고 쓰는 것만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관념이라고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출생과 성장, 가족의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살림이 빡빡해질 것이 눈에 훤히 보였지만 수입의 절반 정도는 저축을 해야 그 모두를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한 달의 비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저축을 시작했다.
수입이 크지 않았기에 절반의 저축은 힘들었다. 생활비가 빠듯했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주머니가 비었다. 매일 장을 봐서 조금씩 반찬을 만들고 아껴 썼지만 늘 부족했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없으면 쓰지 않았다. 있는 김치로, 누군가가 준 반찬으로, 지금 하는 말로 냉장고를 파먹으며 버티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축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개의 통장으로 쪼개어 들어가는 적금은 자주 연체됐다. 비록 연체될지언정 통장이 있다는 든든함은 마음까지 초라하지는 않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숨이 막히거나 지쳐서 다 포기했을 것 같은데, 살림을 처음 시작한 주부의 파이팅이 넘쳤던 것 같다. 당장의 상황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했다. 조금씩 나아지겠지, 조금씩 달라지겠지,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가족이 모이면 웃었고 매일 조금씩 크는 통장을 보며 힘을 냈던 것 같다.
복지국가, 내게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변했고 저축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저축을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어지간히 요령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이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금융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테니.
저축을 열심히 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가진 돈이 곧 복지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엔 더욱더 내가 모은 돈이 미래의 안정을 보장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받은 적이 없다. 교육비도 식비도 미래에 대한 준비와 만약의 불행을 가정한 준비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나라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표방했지만 그 혜택은 나를 잘도 피해 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벌 수 있으니 벌어서 쓰고 벌어서 준비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비교하며 세세히 따져보지도 않았다.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고 크게 불만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고,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1차로 국가와 지자체가 주는 혜택도 받았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적은 금액도 아니라고 느꼈다. 어려운 시기, 먹을 것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매일 주머니에서 모래시계처럼 술술 새어 나가던 것이 그것으로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도 받았다. 국가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감동도 있었다. 적은 돈에 큰 가치를 부여했고 흡족했다.
다시 경기도에서 재난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나의 소소한 취향에 딱 맞는 금액(인당 10만 원)이었다. 금액은 적었지만 만족감은 컸다. 명절 시작 전 가족 모두 첫 주에 온라인으로 빠르게 신청했고 이틀 뒤 입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에게 할당된 것으로 정말 열심히 명절 준비를 위한 장을 보는 데 썼다. 대목이라 물건의 값이 올랐으면 오른 대로, 값이 싸면 싼 대로 명절을 보내는 마음이 무겁지 않게 쓰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꼈던 것 같다.
우리 부부의 재난 기본소득은 명절을 쇠고 난 지금 1/3쯤 남았다. 전적으로 재난 소득만으로 명절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 마음껏 써도 되는 뒷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현금으로 주로 거래하던 재래시장에서 공공연하게 카드를 쓸 수 있는 기회.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상황은 카드를 내미는 마음도 편하게 해 준 것 같다.
불안 없이 '최소한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재난 기본소득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지켜낼 수 있는 해법'(이재명 지사)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많이 가진 사람들은 모를 것 같다. 최소한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재난 기본소득을 두고 벌이는 설전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카데미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은 많은 장면이 온통 이야깃거리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하 방에 물이 차는 장면이었다. 계단을 타고 무섭게 쏟아지는 물이 방에 차오르는 장면에서, 하수구에서 물이 올라오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 만나 방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의 옛날 집을 떠올렸다.
당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쓰고, 할 수 있는 기도도 다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모든 일은 아름다운 추억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그것이 상처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KBS 프로그램 <동행>을 자주 시청한다. 매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도 살아가려는 의지, 노력을 보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방송에 출현한 가족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선의로 다시금 삶의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이웃의 선의에만 기대야 하는지 항상 의문이 든다.
왜 나라가 국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할까. 최고의 엘리트만 모아 놓는 행정 집단에서 일 년 500조 원이 넘는 예산으로 왜 국민을 불행하게 방치할까. <동행>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매번 지난주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스스로의 삶을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는 보편적 재난지원을 지지한다. 액수가 어떻든 그 돈은 위로를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숨이 막히거나 지쳐서 다 포기했을 것 같은데, 살림을 처음 시작한 주부의 파이팅이 넘쳤던 것 같다. 당장의 상황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했다. 조금씩 나아지겠지, 조금씩 달라지겠지,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가족이 모이면 웃었고 매일 조금씩 크는 통장을 보며 힘을 냈던 것 같다.
복지국가, 내게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변했고 저축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저축을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어지간히 요령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이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금융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테니.
저축을 열심히 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가진 돈이 곧 복지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엔 더욱더 내가 모은 돈이 미래의 안정을 보장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받은 적이 없다. 교육비도 식비도 미래에 대한 준비와 만약의 불행을 가정한 준비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나라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표방했지만 그 혜택은 나를 잘도 피해 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벌 수 있으니 벌어서 쓰고 벌어서 준비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비교하며 세세히 따져보지도 않았다.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고 크게 불만은 없었다.
▲ 우리에게 할당된 것으로 정말 열심히 명절 준비를 위한 장을 보는 데 썼다. | |
ⓒ pixabay |
다시 경기도에서 재난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나의 소소한 취향에 딱 맞는 금액(인당 10만 원)이었다. 금액은 적었지만 만족감은 컸다. 명절 시작 전 가족 모두 첫 주에 온라인으로 빠르게 신청했고 이틀 뒤 입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에게 할당된 것으로 정말 열심히 명절 준비를 위한 장을 보는 데 썼다. 대목이라 물건의 값이 올랐으면 오른 대로, 값이 싸면 싼 대로 명절을 보내는 마음이 무겁지 않게 쓰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꼈던 것 같다.
우리 부부의 재난 기본소득은 명절을 쇠고 난 지금 1/3쯤 남았다. 전적으로 재난 소득만으로 명절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 마음껏 써도 되는 뒷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현금으로 주로 거래하던 재래시장에서 공공연하게 카드를 쓸 수 있는 기회.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상황은 카드를 내미는 마음도 편하게 해 준 것 같다.
불안 없이 '최소한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 영화 <기생충>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재난 기본소득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지켜낼 수 있는 해법'(이재명 지사)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많이 가진 사람들은 모를 것 같다. 최소한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재난 기본소득을 두고 벌이는 설전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카데미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은 많은 장면이 온통 이야깃거리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하 방에 물이 차는 장면이었다. 계단을 타고 무섭게 쏟아지는 물이 방에 차오르는 장면에서, 하수구에서 물이 올라오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 만나 방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의 옛날 집을 떠올렸다.
당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쓰고, 할 수 있는 기도도 다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모든 일은 아름다운 추억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그것이 상처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KBS 프로그램 <동행>을 자주 시청한다. 매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도 살아가려는 의지, 노력을 보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방송에 출현한 가족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선의로 다시금 삶의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이웃의 선의에만 기대야 하는지 항상 의문이 든다.
왜 나라가 국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할까. 최고의 엘리트만 모아 놓는 행정 집단에서 일 년 500조 원이 넘는 예산으로 왜 국민을 불행하게 방치할까. <동행>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매번 지난주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스스로의 삶을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는 보편적 재난지원을 지지한다. 액수가 어떻든 그 돈은 위로를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 소외' 위기에 대응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경제적 기본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사람을 위한 복지적 경제정책인 기본소득이야말로 다가올 미래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 책 <이재명과 기본소득> 중, 이재명 지사의 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