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의 평양-서울 나들이(3) : 2010-2011
2010년 6월, 무릎과 엉덩이관절수술을 번갈아 가며 했다. 수술하기 전에 정형외과 수련의들을 위해 과장 선생들은 환자의 X-Ray Film을 함께 보며 수술의 적절성과 관절기 선택, 수술기법 등에 대한 토론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련의들의 교육이 잘 이뤄진다. 이에 나도 참여해 도왔는데, 북과 남 그리고 영어 용어가 서로 달라서 말이 끊기는 등 재미난 웃음거리도 생기곤 했다.
수술을 끝낸 한 오후, 화일 동무를 따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시기 김일성 장군의 최고사령부에 갔더니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었다. 은퇴 노병 따라 지하로 계속 내려가며 방들도 살펴보니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었다. 한참 만에 위로 나오니 밝은 햇살과 여군의 미소가 반가웠다. 그녀가 이상한 모습의 큰 나무로 안내했다. 한 뿌리가 둘로 갈라졌다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게 오늘의 남과 북 같기도 해 화일 동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했더니 여군이 다가와 내 팔짱을 끼었다.
나중에 보니 걸작 사진 둘이 내 눈에 들었다.
남에서는 인민군의 얼굴은 언제나 고약한 표정의 모습인데 이 노병은 파안대소하고 예쁜 여군은 박수를 치고 있다. “세상에 인민군도 웃을 줄 아나?”로 제목을 달았다. 여러분들 보기엔 어느 사진이 더 멋진지 궁금하다.
마지막 날 저녁, 2006년 광주에서 만났던 안경호 6.15북측위원장, 그리고 김관기 국장, 박철 아태위원과 함께 평양교외 초대소에서 6.15해외위원의 활동에 대해 논의했다. 오래전 재미동포 선우학원, 김동수, 김현환 등이 1981년 봄, 워싱톤 [해외동포 민족통일회의]에서 유럽동포들과 분단극복을 위해 북 동포들과 만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1월, 비엔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기독자대화]를 했다. 그때 북의 안경호 박사 등 15명의 학자, 관료들과 토론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남북왕래가 없던 북과 남을 방문할 수 있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평양서 북 관료들과 만나고, 서울로 가서는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강연하며 북의 현실도 알려주며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토론하고 언론과 대담하고 글들도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2010년 영문·국문 글을 묶은 나의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와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을 출판했다.
그래서 2008년 출판한 <꼬레아, 코리아>와 함께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출판잔치를 했다.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김상근, 백낙청, 이재정, 임헌영, 문정인 등 통일 관련 관료, 학자, 운동가 인사들 90여 명이 함께했다. 참석해 준 김영동의 전통음악과 공연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소리꾼 장사익이 보내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자인 내가 파격적으로 사회를 보며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등 재미난 시간을 가졌다.
끝판에 ‘내일 아침 나는 이 세 책을 들고 평양에 간다’하니 모두 놀랐다. 남북왕래가 금지된 때였다. 평양에서 김관기 국장과 만나 김정일 총비서에 드리는 책에 서명하고 관료와 학자와 의사들에도 전했다.
2011년 6월 주말, 고려호텔에서 우연히 LA의 발 전문의 강모세 선생과 재미동포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을 만났다. 며칠 뒤 수술을 끝내고 과기대에 갔더니 강 선생은 의무실장으로, 박 총장은 대학운영, 그리고 재미동포들과 여러나라 교수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도 알려줬다. 학생들은 수재급으로 교내에서는 영어회화로 모든 게 진행되고 있어 놀랐다. 재미동포 김필주 농학 교수님은 황해도 여러 농장에서 품종개량 사업을 도우며 과기대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박 총장은 교직원의 의료문제를 평양의대 병원과 연계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해외동포들의 활약이 다양한 것을 알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Corea연구 이래 국호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조선력대국호>에 대해 연구한 사회과학원 공명성 민속연구소장을 만나봤다. 그는 옛 왕조 이름들의 의미에 대해 연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 이름들에 대한 얘기들도 들었다.
병원 의사들의 관절수술도 익숙해져 가던 중, 보리 밥알도 젓가락 끝으로 집어먹는 우리겨레의 손재주는 똑같이 뛰어나서 북 의사들은 수술을 잘 소화해 냈다. 수술 뒤 점심은 수술복을 입은 채 옆방에서 함께 하는데, 박송철 과장이 느닷없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내년에도 꼭 오신다는 약속을 하자’며 손깍지를 마주치니 박수에 따라 축배도 들었다. 어깨 비벼가며 전기톱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단단한 뼈를 자르고 망치로 두들기며 금속관절기를 뼈에 고정시키는, 대장간쟁이들 같은 정형외과의사들의 본태다.
인공관절수술을 잘 해내 신이 난 문 병원장이 수술 끝내고 평양근교 룡악산에서 야외불고기판을 벌리기로 했단다. 난 늘 대접만 받는 게 마음에 걸려 마침 중국공항에서 큰 꼬냑 한 병을 사 왔었다. 먼저 도착한 과장선생들, 간호원장과 화일 동무가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초여름 야외에서 고기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좋았다. 정형외과팀이 모두 자리에 앉자 문 원장이 나에 대한 감사의 건배사를 하고, 나는 답례로 ‘형제 의사선생들과 함께하는 보람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의 어느 강연이나 수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명’이라며 꼬냑 잔을 함께 들었다.
주식 뒤 단고기 국밥이 나왔다. 문 원장이 원래 ‘개국장’이라 불렀는데 수령께서 ‘단고기’로 부르게 했단다. 우리 조상들은 개고기가 유난히 몸에 좋아 “오뉴월 복골에는 단고기 국물이 발등에만 떨어져도 약이 된다”하니, 박송철 과장은 “남정네들에게 제일 좋은 거야 개신료리죠”라 했다. ‘개신료리? 그게 뭐야...’, ‘오 선생은 그것도 모르나?’는 말에야 짐작이 가기에 내년엔 그 맛을 꼭 보게 해달라며 술잔을 들었다. 즐거운 오후였다. 그것도 모두 우리 ‘빨갱이’ 형제들과….
수술을 마친 오후, 내 세 책을 받아본 리창덕 6.15부위원장이 초록 옷의 예쁜 여인과 함께 찾아 왔기에 곧, “북에선 이런 미녀들과 통일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일이 잘 되느냐?” 물으니… 언론담당 김성혜 위원이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왕래조차 끊겨버려 북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6.15북·남·해외측위원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마침 서울에 가면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게 돼 있어 준비한 수상기념 강연원고를 건네며 ‘북에 쓴소리도 썼으니 읽어보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이틀 뒤 둘이 찾아 왔다.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우리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거야 당연한 지적이라며 그래서 내가 북에 더 자주 오려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욕심 같아선 이렇게 7~10일 머무는 게 아니라 한 달쯤 묵고 싶다’ 했더니 곧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한다. 실은 내가 그럴 수는 없는 처지여서 한 발을 뺐다. 뒤에 김성혜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남의 통일부 차관과 판문점에서 북측 대표로 대좌해온 여장부였다. 그리고 7년 뒤 ‘2018년 남녘 동계올림픽 때 그녀가 김여정 부부장과 청와대에서도 함께 했다. 그리고 6월, 그녀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모습도 보았다. 초록 옷의 그녀가 여전히 예쁘고 또 대견했다.
리 부위원장, 김성혜 위원과 악수를 나눴다. 내일 남으로 가야 했다. 미국시민인 내가 평양에서 일을 마치고 판문점을 거쳐 직접 서울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녘 여러 대학과 시민 단체들에서의 강연 약속으로 인해 매번 번거롭게 중국 심양이나 북경을 거쳐 남으로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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