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복직 촉구’ 희망 뚜벅이 400㎞ 도보행진 34일만에 마무리
7일 오전 11시께 서울시 동작구 흑석역에서 출발한 희망 뚜벅이는 한강대교, 한진중공업 본사, 서울역, 광화문 등을 거쳐 오후 2시 40분께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이날 행진에는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KO, LG트윈타워, 아사히글라스, 쌍용자동차,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등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 1,300여명이 함께했다. 행진 출발 당시 700여명 정도였던 행진 인원은 청와대에 도착할 당시엔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의 손에는 '복직 없는 정년 없다', '김진숙 복직' 등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손 피켓이 들려 있었다.
다만 흑석역부터 서울역까지만 행진 허가가 났던 만큼 김 지도위원을 비롯한 행진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청와대까지 걸어야 했다.
청와대에 도착한 김 지도위원은 가장 먼저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에 있는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송경동 시인, 신영섭 신부 등 7명으로 구성된 '리멤버 희망버스 단식단'은 지난해 12월 22일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지난 36년간 나는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단식단 한명 한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김 지도위원은 34일간 도보행진을 마치는 기자회견에 단식단과 함께 나섰다.
김 지도위원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잘렸으며, 쌍차와 한진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라며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천릿길을 걸어 여기에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난 36년간 나는 유령이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나는 유령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이 김진숙이 보이십니까"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과거를 배반한 자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태워버린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민주주의"라며 "뼈를 깎고 살을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고생 많으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 포기하지 말다"고 당부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6년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안내 글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3차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당시 회사는 이를 무단결근이라고 주장하며 김 지도위원을 해고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김 지도위원의 해고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한진중공업 노사는 김 지도위원 복직을 두고 첫 교섭을 벌였지만, 사측이 복직 대신 재입사 뒤 임원들이 모은 위로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김진숙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과 복직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
리멤버 단식단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는 "단식농성의 하루하루가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연대자들이 말하는 빚진 부채감에 미안한 마음, 헌신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마음, 딱 제 마음이었다"며 "굴복과 굴종을 모르는 삶, 패배와 후퇴를 모르는 삶, 자신의 온 삶으로 연대의 소중함 일깨우는 김진숙 동지에 고맙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편견과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색깔을 하나로 통합하고 하나로 만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을 이번 투쟁 속에서 깨달았다"며 "동지 여러분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맙시다. 힘차게 전진하고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노동종교시민사회를 대표해 참석한 송경용 신부는 김 지도위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송 신부는 "오늘 이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회복, 복직 위해 금속노조 대표자들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협상했다"면서 "최소한 김 지도위원이 경기도 입성하기 전에 끝내자고, 그리고 마지막엔 서울 입성하기 전에 끝내자고 혼신의 힘 다했지만 부족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노동시민사회는 김진숙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과 복직 통한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국가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대한 사과, 복직, 그에 합당한 보상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앞으로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36년은 더 건강하게 걷고 싸우고 활동할 거로 믿는다. 오늘의 미안함이 내일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34일간 행진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은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단식단은 이 날을 끝으로 단식농성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앞서 농성장을 찾은 김 지도위원은 단식단에게 단식을 멈춰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고, 단식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단식단은 기자회견 종료와 함께 김 지도위원의 배웅을 받으며 구급차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 발언 전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틔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짤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짤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웩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존중 사회에서 차헌호는 김수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짤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짤렸으며 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먼길 함께 걸어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 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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