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를 포함하여 약 8년째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해고 사건을 다뤄봤다. 인간사가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이나 해고 사건들은 여러 사연들을 담고 있다. 노동위원회에 가기 전에 미리 검토하는 서류상의 내용은 법리적으로 복잡한 쟁점이 별로 없어서 간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심문회의에 들어갔다가 심문과정에서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 노동자들이 입은 인간적 상처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 명의 노동자가 채용되어 일을 하다가 해고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그 사람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간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기도 했다.
노동위원회에서는 기본적으로 해고에 관해 사유와 절차상 정당성이 있는지에 관해 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법리적인 검토를 꼼꼼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심문회의를 통해 당사자들의 진술을 듣다보면 당사자들 상호간에 인간적인 섭섭함이나 분노가 법리와 관계없이 문제를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들도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어떠한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도 듣기 좋을 수는 없지만, 꼭 이런 방식으로 해고할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경우들이 있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이 들어온 해고 사건 중에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했는가’, 즉,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해고의 의사표시를 했는가, 혹은 노동자가 사직의 의사표시를 했는가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도대체 해고 사실 자체가 있었는지부터 불분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아닌 중간관리자나 상사가 노동자에게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법적으로 해고의 의사표시일까, 아닐까. 상사가 노동자의 업무태도를 질책하자 노동자가 “내가 그만두면 되지 않냐”라고 말한 것은 사직의 의사표시일까, 아닐까. 이러한 쟁점들이 실제 소송에서 다퉈진다. 이 말 한마디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고 전후 사정과 여러 정황을 통해 추론해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사용자도 노동자도 해고나 사직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할 때에는 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해고는 남녀간의 이별이나 이혼과 유사한 면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관계는 법률관계이면서 인간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노동관계는 법률관계이면서 인간관계
노사 간 늘 다툼의 대상이 되는 해고 사유
인간관계처럼 잘 헤어지는 것이 중요
해고 사유는 항상 첨예한 다툼의 대상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결국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에 규정된 사유와 해고와 관련된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 노동자의 행위 등 노동자측의 사유가 문제된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관한 판례의 일관된 입장에 따르면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2015년 당시 정부는 노동자의 저성과를 해고의 사유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일반해고’의 법제화를 추진하고자 하여 노동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특히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문제되었다. 당시 일반해고가 이른바 저성과자를 해고시키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해고 개념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현행법 하에서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는 하나의 해고사유만 문제되는 경우보다는 여러 사유가 복합적, 반복적으로 문제되어 해고에 이르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해고하기에 앞서 적절한 경고조치나 가벼운 수준의 징계 등의 조치를 통해 당해 노동자가 개선할 기회를 부여했는지도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서 고려될 수 있다.
해고의 사유만큼 해고의 절차도 중요하다. 해고절차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해고에 대한 사전적 구제수단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해고의 구체적인 사유와 해고의 시기를 서면으로 기재하여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예외 없이 준수되어야 하는 원칙이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해고는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이 제도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해고 사유를 분명히 인지한 후 자신의 입장을 소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고, 사용자는 서면으로 해고 사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해고를 보다 신중하게 결정하게 하려는 취지도 있다. 향후 법적 분쟁이 발생되는 경우 이 서면은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또한 사용자는 법에 규정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한 해고대상 근로자에게 적어도 30일전에 예고를 해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동안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위에서 말한 해고에 관한 법리는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법적 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 관한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느 회사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이를 문자로 통보했던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사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이별을 통보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해고의 통보를 문자로 받는다면 인간적 상처와 배신감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겠지요?”라고 말했더니 학생들이 격하게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특히 노동법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국회의원 비서 해고 사건 보며 안타까운 심정
법리와 별도로 인간적 존중과 예의 더 생각했으면
국회노동자 처우 개선 논의 계기 되길
필자가 평소 긍정적인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던 젊은 정치인이 비서 해고 사건으로 인해 며칠째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고 사건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복잡한 사정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고용계약서나 관련 규정들을 모두 살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기에 이 사건에 대해 지금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관련 법리와는 별도로 해고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적인 존중과 예의라는 측면을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고, 소속 정당의 상징성과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기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회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의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도 되면 좋겠다.
해고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노동위원회에 출석한 사용자들이 간혹 사람 하나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정에 대해 이해가 가는 측면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사용”하여 돈을 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비인간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시스템 자체가 인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관계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적이고자 하는 생각, 말, 활동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