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0-06-20 15:04수정 :2020-06-20 22:05
[토요판] 커버스토리
여성들의 ‘기술 자립’ 교실 현장
강사·학생 다 여성인 기술 수업
수공구·전동드릴·전등·배관·타일
모여 기술 배우는 20~50대 여성
“돼, 돼!” “엄청 쉬워” “정복 끝!”
전동드릴 막연히 두렵던 여성들
구조·작동법 알면 하루 만에 배워
“기술 자체보다는 두려움이 문턱
강한 공구 만나고 내면도 강해져”
여성들의 ‘기술 자립’ 교실 현장
강사·학생 다 여성인 기술 수업
수공구·전동드릴·전등·배관·타일
모여 기술 배우는 20~50대 여성
“돼, 돼!” “엄청 쉬워” “정복 끝!”
전동드릴 막연히 두렵던 여성들
구조·작동법 알면 하루 만에 배워
“기술 자체보다는 두려움이 문턱
강한 공구 만나고 내면도 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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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매주 모여서 망치와 전동드릴을 든다. “물의 심판”(싱크대 고장)을 받은 여성, 수리기사를 부르려면 휴가를 써야 했던 1인가구 여성, 집수리법을 배우려고 무작정 유튜브를 찾아 헤매던 여성들이 모여든다.
여성 기술교육 협동조합 ‘여기공’ 문하(임주희·왼쪽부터), 인다(이현숙), 자베(박소연) 이사가 지난 15일 각도절단기와 전동드릴을 사용해 대형 목재 플랜터를 제작하는 모습.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강사도 여성이고 수강생도 여성인 드문 ‘기술 수업’이 열리고 있다. 여성 기술교육 협동조합 ‘여기공’이 개설한 교육과정 ‘집 고치는 여성들: 주택수리과정 입문반’(5월9일~7월23일)이 그것이다. 반응이 폭발했다. 수강생 정원 14명이 일찌감치 차고, 대기 인원도 100명에 이르렀다. 여기공은 반을 1개에서 3개로 늘려 매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42명의 참가자와 집수리 기술을 나누고 있다. 공구의 기초(수공구·전동드릴)와 전등, 콘센트, 커튼, 타일, 실리콘, 배관, 수전에 대해 10회에 걸쳐 배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 562번지에서 열린 ‘집 고치는 여성들’ 수업 현장을 지난 7일과 14일 찾았다. “이이이잉~ 이이이잉~” “드릉드릉~” 드릴링 소리를 뚫고 20~50대 여성들의 ‘기술 자립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에도 샌들을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꺼운 운동화 안에 양말까지 신었다. 공구나 기계가 작업대에서 떨어지는 사고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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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명적인 ‘드릴의 손맛’
전동드릴 수업이 열린 지난 7일, 작업대마다 다양한 상표의 전동드릴이 놓였다. 널리 쓰이는 몇몇 회사의 전동드릴을 인다(이현숙) 여기공 대표강사가 하나씩 소개했다. “아임삭(한국)과 보슈(독일)는 가장 무난하게 믿고 쓸 만해요. 디월트(미국)는 힘이 좋아요. 마키타(일본)는 섬세한 작업에 용이하고요. 300g짜리 가벼운 것부터 2㎏까지 다양한 무게의 전동드릴이 있어요. 브랜드마다 내 몸이 받아들이는 감각도 다르고요. 내 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드릴이 뭔지 오늘 한번 찾아보세요.”
‘집 고치는 여성들’ 수업은 이론으로 시작해 실습으로 넘어간다. 이날 참가자들은 드릴 종류를 구분하고 드릴의 구조를 보는 눈부터 떴다. “전동드릴은 회전 방향이나 사용 목적에 따라 전동 드라이버, 전동드릴 드라이버, 해머드릴, 임팩트드릴 등 여러 종류가 있어요. 전동드릴을 쓰면 스스로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나무나 콘크리트에 쉽게 구멍을 뚫고, 나사못을 박거나 뺄 수 있지요. 공구는 여러분이 하는 일을 쉽게 만들어줄 거예요.”
듣고 보니 전동드릴은 여성에게 훨씬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이든 별 차이 없이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니. 이런 ‘여성 친화적인’ 도구가 어째서 여성의 삶엔 그렇게 낯설었을까.
전동드릴로 목재에 피스(나사못)를 박아보는 실습을 하기 전, 강사 인다가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다. “드릴링을 할 땐 수직으로 일정한 힘을 주는 게 포인트예요. 소리로 확인하셔야 해요. 드릴에서 이잉, 이, 잉, 이이잉~ 이런 소리가 나면 안 돼요. 이이이잉~ 이렇게 안정적인 소리가 나야 합니다. 피스가 들어갈수록 몸에 힘을 더 싣는 게 좋아요. 일정하되, 조금씩 묵직하게 들어가는 거죠.”
이날 수업에 참여한 13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다와 보조강사, 스태프들이 작업대마다 붙어서 실습을 함께했다. 어느 작업대에선가 “무서워”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거침없이 드릴을 들고 피스를 박기 시작했다. 드릴링 소리가 지체 없이 울렸다.
“돼, 돼!” “엄청 쉬워” “오~” “손맛이 아주 중독성 있네” “정복, 끝!”
작업대마다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경쾌한 드릴링과 함께 즉흥 연주를 했다. 드릴을 스스로 놓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강사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여러 브랜드를 돌려 써가며 자기에게 맞는 드릴을 찾고 또 찾았다.
30대 초반 박누리씨는 이날 전동드릴을 처음 잡아봤다. “집수리를 해야 할 때마다 일일이 기사님을 찾아서 해결했어요. 혼자 있을 때 남자가 집에 들어오는 게 편하지 않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그렇게 했죠. 그런데 막상 기사님이 오시면 생각보다 간단하고 쉽게 고치시는 거예요. 대부분의 기사님이 전동드릴을 쓰시고요. 나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드릴까지는 아니고, 도어락이 고장 났을 때 직접 교체를 해봤어요. 드라이버랑 육각렌치, 두 개만으로 설치가 되더라고요. 기술 자체가 문턱이 아니라 두려움이 문턱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전동드릴을 써보니 아주 재밌어요.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강하고 견고한 도구를 쓰는 동안 저까지 단단해지는 기분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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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래, 집수리 이상의 기술까지
자신의 전동드릴을 장만해 직접 집수리를 해온 사포(26)씨는 “드릴의 희열”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전동드릴은 아주 유용한 집수리 도구인데도 제대로 배울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아요.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공구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전압이 약한 12볼트로 문을 뚫으려 하질 않나… 수공구나 드릴을 쓰고 있으면서도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길이 없었던 거죠. 이런 수업을 통해 제대로 기술을 배워서 자기 확신을 갖고 싶어요.”
20·30대 여성인 박누리·사포씨는 모두 기술에 대한 갈증이 컸다. 누리씨는 서울시 집수리아카데미, 한국주택환경연구원 주택시설관리 교육과정 등 집수리를 배울 만한 곳을 두루 찾아보다가 여기공 수업을 선택했다. “다른 교육과정은 도배 같은 과목을 빼면 강사가 거의 남성이더라고요. 이 수업은 선생님도 여성이고 수강생도 여성이라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환경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5개월 전부터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 사포씨는 현재 목공과 집수리 수업을 병행할 만큼 기술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제가 다니는 목공 교습소도 강사는 남성이고, 학생 중에 여성은 저와 제 친구 둘뿐이거든요. 이렇게 기술이 남성의 공간이 돼버린 건, 기술과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랜 편견이 만든 현실일 거예요. 회사(무역업)에서 기술 배운다는 얘길 했더니 ‘여자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싫어서 기술을 마스터할 때까지 배울 계획이에요.”
집수리 이상으로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길 원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건축설계사인 전유진(33)씨가 그런 경우다. “건설 현장에서는 목공, 금속 기술자들 입김이 세요. 대부분 남성이죠. 설계한 대로 건물이 지어지려면 현장 일을 좀 알아야겠다 싶어서, 기술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로 이 수업부터 받아보기로 했어요. 기술자들과 소통이 잘 안 될 때, 남성 건축설계사는 직접 공구 들고 현장에 뛰어들기도 하거든요. 여성이라고 못할 것도 없지요. 기회가 된다면 기술을 마스터 수준까지 배우고 싶습니다.” 30대 초반 수학강사 최정희씨는 기술을 배워서 아예 직업을 바꿔볼 의향도 있다. “공구를 다뤄보는 건 처음인데 되게 재밌어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고, 용접도 해보고 싶고요. 전업을 한다면 기술자나 헬스 트레이너가 되고 싶은데, 기술이 적성에 맞으면 끝까지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드릴을 배우고 용기가 생겨서, 25㎏짜리 창문형 에어컨을 혼자 설치해봤어요. 드라이버 하나 가지고도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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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못 고치는 걸 아는 것도 기술
여성들의 높아진 ‘기술 욕구’에 비해, 여성이 기술 전문가로부터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집수리 정보를 대부분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이를 방증한다. “저희 집은 여자만 사는데요, 페인트칠·선반 달기·톱질 같은 건 인터넷 검색하면서 제가 다 해요. 셀프 집수리를 꽤 해나가는 편이지만, 콘센트나 전등 교체는 전기와 관련된 것이어서 인터넷만 보면서 따라 하기엔 겁이 나더라고요. 그럴 땐 엄마도 그냥 철물점 아저씨 부르래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적어서 ‘무능’해지는 게 억울한데도, 남성 기술자가 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 건 또 사실이니까, 그들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이 자꾸 생겨요.”(사포)
14일 수업의 주제는 전등이었다. 다시 이론부터 출발이다. 발전소에서 생성된 전기가 변전소를 거쳐 가정에 오기까지 과정과 송전·배전·변전, 전류(암페어)·전압(볼트)·전력(와트)을 거쳐 누전의 개념까지 훑었다. “누전이란 전선 속으로 흘러야 할 전기가 전선 밖으로 새어나와 주변 도체로 흐르는 현상이에요. 주원인은 손상된 피복, 습기의 침입 등입니다. 누전이 의심될 땐 어떻게 고칠까요? 여러분, 고치지 마세요. 이때는 전문가를 부르자!”(인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 역시 중요한 자립의 기술이다.
이근정(50)씨는 “판단의 근거가 돼줄 첫 지식”을 쌓으러 이 수업에 왔다. “그동안 집수리 할 일이 있으면 일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했어요. 그런데 속 시원히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무슨 문제가 원인이냐고 물어보면 ‘낡아서’ 그렇대요. ‘어떻게 됐어요?’ 물으면 ‘고쳤어’가 끝이에요.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내가 잘 모르고 사는 거죠. 집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잖아요. 집이란 공간의 의미가 큰 만큼 집수리에 관한 첫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정말 낡아서 고장 난 건지, 어떻게 고쳐진 건지, 내가 고칠 수 있는지, 고칠 수 없다면 어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다 강사는 전등 갈기의 첫 단계를 강조했다. “전등 교체하기 전에는 안전을 위해 두꺼비집(분전함) 안에 있는 누전 차단기를 꼭 내려주세요. 이게 전등 가는 순서 1번입니다. 그런 다음 검전기로 전선에 남아 있는 전기가 있는지까지 확인하세요. 남아 있는 전기가 없는 걸 꼭 확인하시고, 안전하게 작업에 들어가주세요.”
센서등, 직부등, 엘이디등, 일반 형광등, 벽등 등 여러 형태의 전등을 해체하고 전기장치를 전선으로 연결하는 배선 실습이 이어졌다. 전동드릴로 플러그에 박힌 피스를 분리하는 참가자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능숙하다. 이어서 펜치와 니퍼도 들었다. 해체한 플러그와 배선하기 위해 전선을 일부 벗겨야 하기 때문이다. 까만 전선을 벗기면 색색의 접지선과 중성선 3가닥이 들어 있다. 마치 “김밥같이 생긴” 전선을 펜치로 ‘썰면서’ 전등 종류는 달라도 배선 원리는 같다는 걸 참가자들은 알아갔다. 조금 장난스러워도 좋았다. 그만큼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 집은 ‘연장된 몸’이다. 휴식하고 회복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거공간은 무엇보다 안전해야 하고, 우리 몸한테 그래야 하듯 잘 돌봐줘야 하는 곳이다. ‘집 돌봄’이라 할 수 있는 집수리는 이렇듯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여성들에겐 꽤나 먼 세계였다. 여성 수리기사는 희귀할 지경이고, 스스로 집을 수리하는 기술을 갖춘 여성도 드물었다. 권력의 매체이기도 한 기술은 역사적으로 남성이 장악하면서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기술을 배우고 직접 공구를 들어 집을 고치려 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자기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려 한다. 모두를 위한 기술을 익히고 보급하는 여성 기술교육 협동조합 ‘여기공’이 있고, ‘여기공’에서 기술을 배우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이 손발을 맞춘 공간에서 기술과 공구라는, 강하고 견고한 세계는 부드럽고 단단한 쓰임새를 얻는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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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0202.html?_fr=mt1#csidx8a601a7cf2e42cea79244cb3ffa2545
이토록 치명적인 ‘드릴의 손맛’
‘집 고치는 여성들’ 수업에 참가한 20~50대 여성들이 전동드릴 사용법을 배워보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집 고치는 여성들’ 수업에 참가한 20~50대 여성들이 전동드릴 실습을 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인다(이현숙) 여기공 대표강사가 지난 14일 ‘집 고치는 여성들’ 참가자들에게 전동드릴의 구조와 사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가볼래, 집수리 이상의 기술까지
2018년 10월 여기공 ‘용접 워크숍’에 참가한 여성이 슬러그(용접 불똥)를 제거하는 모습. 여기공 제공
때론 못 고치는 걸 아는 것도 기술
전등을 갈아보는 실습 시간, 전동드릴로 플러그에 박힌 피스를 분리하는 ‘집 고치는 여성들’ 참가자들. 장철규 선임기자
전등 수업에서 여러 종류의 전등을 해체 및 교체하고 전구를 갈아보는 여성들. 장철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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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0202.html?_fr=mt1#csidx8a601a7cf2e42cea79244cb3ffa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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