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5 07:07
최종 업데이트 20.06.15 07:07
글: 이주연(ld84)
창간 20주년 기획 '지나간 20년, 앞으로 20년(20-20)'을 선보입니다. 2000년을 돌아보며 2040년을 그리려 합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지난 20년 동안 성과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또 무엇인지,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마흔 살이 됐을 때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편집자말] |
▲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만남을 하고 있다. | |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문재인 정권에서 빨리 추진한다면 '어물어물 통일'은 임기 내에 가능합니다. 민주당 정권이 재창출된다면 5년 안에 실질적 통일을 너머 국가연합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학 교수의 말이다. 그가 말한 통일은 일반론과는 결을 달리한다. '어물어물 통일'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5년부터 펼쳐온 통일론이다. 남북이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 '통일 전'과 '통일'의 경계가 불분명할 만큼 어물어물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교수 표현으로는 '21세기형 통일'이다.
"남과 북이 저마다 자기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여권 들고 남한 사람이 평양 가고 북한 사람이 서울 방문하는 정도만 돼도 통일입니다. 어느 날 '어? 남북 왕래가 자유롭게 됐네, 이거 통일 아냐?' 그런 거예요. 경의선 연결하고 개별관광만 허가해도 됩니다."
20년 간 통일 운동을 펼쳐온 이 교수는 남이랑북이랑 대표·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통일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5월 14일 만난 이 교수는 통일을 낙관하고 있었다.
통일, 이렇게 쉬운데 왜 안됐냐고요?
'어? 통일 됐네' 하고 깨달을 정도로 통일이 쉬운 거라면, 왜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은 것이냐 물었다.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왜 남과 북이 분단됐을까요?"
순간 6.25 전쟁부터 역사를 되짚어 머리를 굴리던 차,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이 왜, 언제 됐는지조차도 합의가 되지 않고 있어요. 역사 공부했다는 대학생들도 한국 전쟁으로 분단이 됐다고 답해요. 그럼 6.25 전쟁은 왜 일어났죠? 분단이 돼서 일어난 거였죠.
분단을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차로 1945년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기준으로 국토가 분단됐죠. 2차로 1948년 남쪽에 자본주의 정부가, 북쪽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체제가 분단됐죠. 그 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갈라져 분단이 굳어져 버린 거죠.
왜 20년이 흐르도록 통일이 안 됐냐고 물으셨죠. 그럼 통일은 뭘까요. 45년 8월에 쪼개진 땅덩어리가 하나 되는 게 통일인가요. 48년 갈라진 체제를 통합해야 통일인가요. 아니면 민족 간에 적대감과 원한이 사라져서 통합이 이뤄지면 통일일까요. 이 셋 중에 하나만 이뤄져도 통일일까요, 셋 다 이뤄져야 통일일까요. 일반적으로 셋 다 이뤄져야 통일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 통일은 제가 올해 65세인데 100살까지 살아도 이뤄질까 싶어요."
이 교수는 "이 통일이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통일이 안 된다"고 했다. 통일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하나의 체계로 합침)에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물어물 통일'이다.
"민족이 합쳐지는 게 제일 좋겠죠. 그걸 목표로 삼고 나아가는 과정도 통일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적으로 나라간 울타리가 무너지는 이 상황에서 꼭 남과 북이 하나의 체제를 만들어야 통일이냐? 아니라는 거죠."
"남북 약속을 깬 건 남측"
그리고 지나간 20년의 책임은 남측이 더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2000년 6.15 선언만 지켰어도 통일은 벌써 됐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합의하고 돌아오니 당시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보수 정부에서도 그 기조가 이어졌고요.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 합의 내용이 좋았지만 이후 보수 정권 10년 동안 북한에 적대적으로만 대했죠.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문은 공식적으로 종전 선언을 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일체의 무력행위를 하지 말자고 했죠. 북한은 핵무기 개발하지 말고, 우리도 첨단 무기 도입하지 말고 군사 훈련을 중단했어야 해요. 중단 못한 게 남쪽입니다. 대부분 언론은 북한이 미사일 실험한 것만 보도하는데, 남한이 지속적으로 미국 무기 구입하며 한미합동군사훈련 폐지 못한 건 보도 안 하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남쪽이죠."
그러면서 그는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통일 정책을 마련한 것이 보수 정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군사정부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때 만들어진 게 국가차원의 '통일 정책'입니다. '1단계 화해 협력, 2단계 남북연합, 3단계 완전 통일'이라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30년째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1단계 화해 협력을 하려면 '친북'해야죠. 북을 친구로 삼을 준비를 해야죠. 보수 정권은 자기들이 이런 통일 정책을 만들어 놓고 적대합니다. 말이 되나요?"
이 교수는 일각에서 '통일이 되면 사회혼란이 일어나고 천문한적인 돈이 들어간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체제 붕괴를 전제했기 때문에 나오는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 체제와 남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땅과 체제가 합쳐지는 통일을 위해 필요한 건 시간이라고 했다.
"남한이 사회주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왼쪽으로, 이건 복지 정책 확대겠죠. 북한이 자본주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오른쪽으로, 이건 개혁 개방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면서 훗날 남과 북이 만나면 혼란이 안 생기겠죠. 아무리 지금부터 교류 협력을 시작한다 해도 20년으로는 안 됩니다. 70년 헤어졌으니 두 배인 140년 정도 지나야 부작용 없이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겠죠."
"정권 유지된다면, 향후 7년간 남북관계 '돌이킬 수 없는' 발전 가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있었던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서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지난 1월 신년사에서는 "지금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발언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했다.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건 북한과의 물밑 접촉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얘기 같다"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은 것은) 북미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건데, 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하면서도 어느 정도 엇박자 놓으며 가겠다는 걸로 읽혀서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지금 추세라면) 미래통합당에 정권을 빼앗길 거 같지 않다, 향후 7년간은 남북관계가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이 기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통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개성공단에 우리 기업인들이 천 명이 돼도 그 사업을 접을 수 있을까요?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도 못 닫죠. 개성공단이 시작단계였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 변수만 아니라면 북한 개별관광은 올해 안에도 가능할 겁니다. 체제에 자신 있는 우리부터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 100명 가면 북한에서도 1명은 오지 않겠어요. 북한 관광이 일상화 되면, 돌이킬 수 없어질 겁니다. 이게 친북이죠. 결국 정부 의지가 중요합니다."
정말 2년, 혹은 7년 안에 '통일'이 우리에게 올까? 이 교수의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불만 폭발한 북한, 문재인 정부 과감한 행동 필요"
인터뷰 한 달 후, 남북은 또 다시 경색 국면이다.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한 북한은 지난 9일 부터 남북 통신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교수의 확신이 여전한 지도 궁금했다.
이 교수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간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 공동선언의 약속을 안 지킨 건 남쪽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라고 다그쳤다고 봐야죠. 미국의 반대 때문에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모두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북전단을 빌미로 남측을 향해 '미국에 종속되지 말고 자주성을 찾으라'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판을 벌릴 때가 됐다, 이미 약속한 것부터 실현하는 게 첫 발"이라고 말했다.
[요약 - 3문3답]
- 지난 20년 동안 통일-대북 정책의 대표적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1945년 8월 분단 이후 최초로 2000년 6월 역사적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 간 화해와 교류협력을 시작한 거죠. 남한의 통일정책은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살짝 고쳐져 2020년 5월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지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거든요. 그 통일방안 1단계가 화해협력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건데, 화해협력을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천하자는 게 '햇볕정책'으로, 이에 따라 남북 사이에 적대감을 줄이며 교류와 협력을 시작한 겁니다. 이산가족이 만나고, 금강산관광을 실시하며, 개성공단을 열었던 거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성과의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남한정부의 의지 부족과 약속 위반, 극우수구세력의 반발, 미국의 방해 등으로 남북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못한 거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임기를 거의 다 채운 2007년 10월에야 2차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구체적 내용을 합의하지만, 2008년 2월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남한에서는 남북 간이나 북미 간에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몹시 많은데, 잘못이에요. 2000년 1차 정상회담의 6.15합의나 2007년 2차 정상회담의 10.4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린 쪽이 남한이거든요. 소위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북미 합의도 항상 미국이 먼저 깼고요."
- 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향후 꼭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까요.
"크게 생각하고 멀리 갈 것 없어요.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보수정부에서 만들어진 통일정책 첫 단계만 실천하면 돼요. 화해협력과 평화공존. 남북 사이에 교류만 활성화하면 실질적 통일을 이루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조차 못하고 있잖아요.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2년이면 충분합니다. 미국의 간섭과 방해를 물리칠 수 있는 지혜와 배짱이 필요한데 남한의 자주성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죠.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갖고 훌륭한 합의를 많이 해놓고도 2019년 북미관계가 막히면서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뭔가 작심한 것 같은데, 4.15 총선결과도 좋게 나왔으니 코로나 위기만 잘 넘기면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무튼 미국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주독립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죠. 정부가 못 하면 민간이 이끌어야 돼요."
지난 5월 14일 만난 이 교수는 통일을 낙관하고 있었다.
통일, 이렇게 쉬운데 왜 안됐냐고요?
▲ 2016년 2월 11일,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 |
ⓒ 유성호 |
'어? 통일 됐네' 하고 깨달을 정도로 통일이 쉬운 거라면, 왜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은 것이냐 물었다.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왜 남과 북이 분단됐을까요?"
순간 6.25 전쟁부터 역사를 되짚어 머리를 굴리던 차,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이 왜, 언제 됐는지조차도 합의가 되지 않고 있어요. 역사 공부했다는 대학생들도 한국 전쟁으로 분단이 됐다고 답해요. 그럼 6.25 전쟁은 왜 일어났죠? 분단이 돼서 일어난 거였죠.
분단을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차로 1945년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기준으로 국토가 분단됐죠. 2차로 1948년 남쪽에 자본주의 정부가, 북쪽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체제가 분단됐죠. 그 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갈라져 분단이 굳어져 버린 거죠.
왜 20년이 흐르도록 통일이 안 됐냐고 물으셨죠. 그럼 통일은 뭘까요. 45년 8월에 쪼개진 땅덩어리가 하나 되는 게 통일인가요. 48년 갈라진 체제를 통합해야 통일인가요. 아니면 민족 간에 적대감과 원한이 사라져서 통합이 이뤄지면 통일일까요. 이 셋 중에 하나만 이뤄져도 통일일까요, 셋 다 이뤄져야 통일일까요. 일반적으로 셋 다 이뤄져야 통일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 통일은 제가 올해 65세인데 100살까지 살아도 이뤄질까 싶어요."
이 교수는 "이 통일이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통일이 안 된다"고 했다. 통일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하나의 체계로 합침)에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물어물 통일'이다.
"민족이 합쳐지는 게 제일 좋겠죠. 그걸 목표로 삼고 나아가는 과정도 통일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적으로 나라간 울타리가 무너지는 이 상황에서 꼭 남과 북이 하나의 체제를 만들어야 통일이냐? 아니라는 거죠."
"남북 약속을 깬 건 남측"
▲ 이재봉 원광대 교수 | |
ⓒ 이재봉 제공 |
그리고 지나간 20년의 책임은 남측이 더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2000년 6.15 선언만 지켰어도 통일은 벌써 됐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합의하고 돌아오니 당시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보수 정부에서도 그 기조가 이어졌고요.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 합의 내용이 좋았지만 이후 보수 정권 10년 동안 북한에 적대적으로만 대했죠.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문은 공식적으로 종전 선언을 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일체의 무력행위를 하지 말자고 했죠. 북한은 핵무기 개발하지 말고, 우리도 첨단 무기 도입하지 말고 군사 훈련을 중단했어야 해요. 중단 못한 게 남쪽입니다. 대부분 언론은 북한이 미사일 실험한 것만 보도하는데, 남한이 지속적으로 미국 무기 구입하며 한미합동군사훈련 폐지 못한 건 보도 안 하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남쪽이죠."
그러면서 그는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통일 정책을 마련한 것이 보수 정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군사정부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때 만들어진 게 국가차원의 '통일 정책'입니다. '1단계 화해 협력, 2단계 남북연합, 3단계 완전 통일'이라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30년째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1단계 화해 협력을 하려면 '친북'해야죠. 북을 친구로 삼을 준비를 해야죠. 보수 정권은 자기들이 이런 통일 정책을 만들어 놓고 적대합니다. 말이 되나요?"
이 교수는 일각에서 '통일이 되면 사회혼란이 일어나고 천문한적인 돈이 들어간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체제 붕괴를 전제했기 때문에 나오는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 체제와 남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땅과 체제가 합쳐지는 통일을 위해 필요한 건 시간이라고 했다.
"남한이 사회주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왼쪽으로, 이건 복지 정책 확대겠죠. 북한이 자본주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오른쪽으로, 이건 개혁 개방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면서 훗날 남과 북이 만나면 혼란이 안 생기겠죠. 아무리 지금부터 교류 협력을 시작한다 해도 20년으로는 안 됩니다. 70년 헤어졌으니 두 배인 140년 정도 지나야 부작용 없이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겠죠."
"정권 유지된다면, 향후 7년간 남북관계 '돌이킬 수 없는' 발전 가능"
▲ 2018년 12월 18일, 남북철도현지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귀환했다. 개성 판문역에서 열차를 인수해 온 기관사가 방북증을 제출하고 있다. 남북은 2018년 11월 30일부터 18일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있었던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서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지난 1월 신년사에서는 "지금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발언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했다.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건 북한과의 물밑 접촉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얘기 같다"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은 것은) 북미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건데, 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하면서도 어느 정도 엇박자 놓으며 가겠다는 걸로 읽혀서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지금 추세라면) 미래통합당에 정권을 빼앗길 거 같지 않다, 향후 7년간은 남북관계가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이 기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통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개성공단에 우리 기업인들이 천 명이 돼도 그 사업을 접을 수 있을까요?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도 못 닫죠. 개성공단이 시작단계였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 변수만 아니라면 북한 개별관광은 올해 안에도 가능할 겁니다. 체제에 자신 있는 우리부터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 100명 가면 북한에서도 1명은 오지 않겠어요. 북한 관광이 일상화 되면, 돌이킬 수 없어질 겁니다. 이게 친북이죠. 결국 정부 의지가 중요합니다."
정말 2년, 혹은 7년 안에 '통일'이 우리에게 올까? 이 교수의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불만 폭발한 북한, 문재인 정부 과감한 행동 필요"
▲ 자매의 대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018년 8월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강후남(79) 할머니와 북측의 언니 강호례(89) 할머니가 식탁에 둘러앉아 그간의 소식을 전하며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인터뷰 한 달 후, 남북은 또 다시 경색 국면이다.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한 북한은 지난 9일 부터 남북 통신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교수의 확신이 여전한 지도 궁금했다.
이 교수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간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 공동선언의 약속을 안 지킨 건 남쪽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라고 다그쳤다고 봐야죠. 미국의 반대 때문에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모두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북전단을 빌미로 남측을 향해 '미국에 종속되지 말고 자주성을 찾으라'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판을 벌릴 때가 됐다, 이미 약속한 것부터 실현하는 게 첫 발"이라고 말했다.
[요약 - 3문3답]
- 지난 20년 동안 통일-대북 정책의 대표적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1945년 8월 분단 이후 최초로 2000년 6월 역사적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 간 화해와 교류협력을 시작한 거죠. 남한의 통일정책은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살짝 고쳐져 2020년 5월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지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거든요. 그 통일방안 1단계가 화해협력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건데, 화해협력을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천하자는 게 '햇볕정책'으로, 이에 따라 남북 사이에 적대감을 줄이며 교류와 협력을 시작한 겁니다. 이산가족이 만나고, 금강산관광을 실시하며, 개성공단을 열었던 거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성과의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남한정부의 의지 부족과 약속 위반, 극우수구세력의 반발, 미국의 방해 등으로 남북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못한 거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임기를 거의 다 채운 2007년 10월에야 2차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구체적 내용을 합의하지만, 2008년 2월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남한에서는 남북 간이나 북미 간에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몹시 많은데, 잘못이에요. 2000년 1차 정상회담의 6.15합의나 2007년 2차 정상회담의 10.4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린 쪽이 남한이거든요. 소위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북미 합의도 항상 미국이 먼저 깼고요."
- 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향후 꼭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까요.
"크게 생각하고 멀리 갈 것 없어요.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보수정부에서 만들어진 통일정책 첫 단계만 실천하면 돼요. 화해협력과 평화공존. 남북 사이에 교류만 활성화하면 실질적 통일을 이루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조차 못하고 있잖아요.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2년이면 충분합니다. 미국의 간섭과 방해를 물리칠 수 있는 지혜와 배짱이 필요한데 남한의 자주성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죠.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갖고 훌륭한 합의를 많이 해놓고도 2019년 북미관계가 막히면서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뭔가 작심한 것 같은데, 4.15 총선결과도 좋게 나왔으니 코로나 위기만 잘 넘기면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무튼 미국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주독립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죠. 정부가 못 하면 민간이 이끌어야 돼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