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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7일 월요일

석연찮은 이유로 아동 성폭행범 면죄부…법원은 ‘황당’ 해명뿐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9-06-18 10:50:31
수정 2019-06-18 10: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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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10세 아동을 성폭행한 35세 남성의 형량이 2심에서 대폭 감형돼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누리꾼들은 2심 재판부 재판장의 이름과 사진을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아동 성폭행범 감형 판사를 기억하자’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습학원 원장 이 씨(35)는 지난해 4월 채팅앱으로 만난 초등학생 A 양(10)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소주 2잔을 마시게 한 뒤, 취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3일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는 이 씨의 항소심에서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를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미성년자의제강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이 씨의 정보를 5년간 공개하고,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의 취업제한과 보호관찰 5년을 명령했다.
1심과 2심의 형량을 가른 것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 인정 여부다. 이 씨는 애초 해당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은 이를 유죄로 봤다. 해당 혐의는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다.
그러나 2심은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씨가 A 양을 ‘폭행·협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신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면 폭행·협박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 혐의를 인정했다. 형법은 해당 혐의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선고 직후 각종 SNS는 한규현 판사의 이름과 사진으로 도배됐다. ‘자기 자식이어도 그랬을까’, ‘국민 법 감정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등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음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 파면하라”라는 제목으로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청인은 “어떻게 아동과의 관계를 합의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라며 “가해자들의 감형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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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안 때렸으니 강간 아니다?
35살 남성이 10살 여아 눌렀는데 ‘폭력’ 아니라는 법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고법은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사후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해명에 나섰다. 선고와 동시에 판결문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일은 종종 있으나, 논란이 된 판결 내용에 대해 사후에 해명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원은 피해자 진술만으로 이 씨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시 피해자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만으로 ‘이 씨가 손으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영상물 속) 피해자는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고 진술했는데, 조사관이 ‘이 씨가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는 취지로 묻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라며 폭행 여부 관련 경찰 조사가 불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나이가 만 10세 불과하다는 사정을 염두에 놓고 살펴봐도, 이 씨가 피해자의 몸을 누른 행위가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법정 진술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지만, 피해자가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혀 무산됐다고 법원은 덧붙였다.
법원의 이러한 해명은 상식적으로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35세 성인 남성이 10세 여아의 몸을 눌렀다면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법체계는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죄를 인정한다. 이른바 ‘최협의설’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로 폭행·협박을 가장 좁게 해석해 현실 속 성폭력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두 사람의 물리력 차이를 생각한다면 최협의설로 판단해도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강간죄 구성요건인 ‘폭행’은 주먹 등으로 신체를 때리는 행위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물리력까지 모두 폭행으로 간주한다.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는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이 씨의 강간 혐의에 면죄부를 준 법원이 비판받는 이유다.
가해자 의심한 1심은 유죄
피해자 의심한 2심은 무죄
2심 판단이 잘못된 이유는 1심과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강간죄를 판단할 수 없다던 2심과 달리,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이 씨의 강간 혐의를 유죄로 봤다.
1심은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자연스러워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다. 2심이 강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로 든 ‘이 씨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라는 피해자 진술에 대해, 오히려 1심은 “솔직하다”라고 평가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증언임에도 피해자가 숨기지 않고 말해 진술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 등을 생각하면 가해자가 몸을 누르는 행위만으로도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씨의 폭행을 인정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가해자의 진술 번복을 고려하지 않았다. 1심은 이 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진술 신빙성을 따졌다. 조사 과정에서 처음 이 씨는 피해자와의 성행위 자체를 부인하다가 DNA 증거가 나오자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력은 아니다’로 말을 바꿨다.
이번 판결에서 사법부가 여전히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형식적인 법리에만 치우쳐져 있음이 드러났다. 13세 미만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를 무조건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할 때, 직접적인 폭행·협박 여부가 아동·청소년 성폭행범의 형벌을 결정하는 중대한 기준이 된 이번 판결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다.
폭행·협박은 가중 처벌의 요소일 뿐, 그것이 없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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