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진단] 제재 해제된다고 해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갈 수 없다
대북 제재와 비핵화 협상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경제적 압박과 불이익을 주어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여러 겹의 대북 제재를 촘촘하게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11건의 안보리 결의는 대량살상무기 통제에서 경제일반에 대한 타격까지 망라하고 있다. 북한의 수출비중 1위-4위 품목인 석탄, 의류, 수산물, 철광의 대외거래는 금지되었고, 원유 수입도 민생용에 한해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되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이틀간 소비량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개별국가 차원의 제재가 가세하고 있으며, 미국은 제재를 위반하는 제3국을 대상으로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북한경제에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압박하는 치명적인 외부요인이 된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낸 것이라면 협상에 거시적 진전이 있을 때까지 이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장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응했다고 보는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회담 이후에 '적대세력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며 미국 태도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경제는 특수한 역사 경험 속에서 대북 제재라는 경제 외부요인의 도전에 대해 나름의 내성(耐性)을 다지면서 대응해 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애초 북한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매우 낮으며 에너지 구조도 석탄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비록 최근의 제재로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과거에 해본 것처럼 내핍생활로 힘들게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출이 막힌 석탄을 내수시장에 돌리면 오히려 연료사정이 나아질 수도 있다. 특히 민주화되지 않은 북한체제에서 경제적 고통을 하층 인민에게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전가할 수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야말로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완화 문제에 집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 외교의 전술적 실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의 다급해진 사정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대북 제재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북한경제
고난의 행군 이후 20여 년간 북한경제는 핵개발 비용의 부담과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온 국제적 제재 압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나름 생존을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악착같이 적응력을 키워 왔다.
수해로 망가진 탄광과 농수로를 복구하고 소수력 발전소를 여기저기 만들며, 비료와 철강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수입대체품의 개발, 생산자원의 절약, 소비생활의 내핍을 강조하며 대응해 왔지만 한번 망가진 사회주의 계획경제(공적 경제)는 다시는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었다.
결국 인민경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만으로는 불가능해져 자생적인 장마당 경제가 확산됐고 시장의 역할이 경제생산과 경제관리 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차 북핵 위기 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첫 대북제재(UNSCR 825호, 93년 5월) 이후 26년이 흘러가는 동안 북한경제가 환경변화에 적응해 온 경과를 시장의 역할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전기(轉機)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전기는 2002년 '7.1 조치'이다. 이 시기에 장마당 경제가 등장한다. 공급 부족으로 배급이 어려워지자 식량을 구하는 유일한 통로로 10일마다 열리던 농민시장에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었다. 여기서 공산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필품이 거래되면서 장마당이 형성되었다. 부족한 상품의 조달을 위해 중국 국경의 통상구가 개방되고, 무역기관이 아닌 기관 기업소도 대외거래에 참여했다. 공급부족으로 물량지표 대신 금액지표를 부여받은 사업소와 기관들이 독립채산을 하도록 떠밀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마당을 합법화한 조치가 2002년 '7.1 조치'이다. 북한당국은 장마당 거래를 용인하였고, 생산단위의 계획목표를 물량단위에서 금액지표로, 분배기준도 생산실적에서 벌어들인 수입(번수입)으로 변경했다. 사업장 고유의 생산품과 상관없이 다양한 품목의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한 생산단위는 당·정·군의 힘 있는 기관과 뒤섞여서 국내유통망과 대외무역망에 뛰어들었다. 내부공급 증가보다는 암시장과 밀거래를 통해 외부공급이 늘어 그럭저럭 인민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외부원조 물품들도 한몫 했다.
이렇게 공식경제는 정체된 상태에서 오히려 비공식경제로 모든 물자가 유통되자 위기위식을 느낀 북한당국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장마당 경제에 점진적으로 통제를 가하고 이런 저런 단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갑자기 화폐교환 조치를 단행해 장마당을 통해 축적된 화폐를 강제 회수하고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로 회귀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장마당을 대신해야 할 공적부분이 정상화되지 못한 것이 뒤늦게 판명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고 경제부총리가 처형되었다. 이때가 두 번째 전기다.
화폐교환의 실패는 이제는 계획경제로 회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북한경제에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교훈삼아 오히려 장마당 기능을 이용해 북한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장마당 돈주들의 자금력을 이용하여 평양시가지의 재건축이나 관광지 개발 등 여러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 번째 전기를 맞았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경제적 압박과 불이익을 주어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여러 겹의 대북 제재를 촘촘하게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11건의 안보리 결의는 대량살상무기 통제에서 경제일반에 대한 타격까지 망라하고 있다. 북한의 수출비중 1위-4위 품목인 석탄, 의류, 수산물, 철광의 대외거래는 금지되었고, 원유 수입도 민생용에 한해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되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이틀간 소비량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개별국가 차원의 제재가 가세하고 있으며, 미국은 제재를 위반하는 제3국을 대상으로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북한경제에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압박하는 치명적인 외부요인이 된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낸 것이라면 협상에 거시적 진전이 있을 때까지 이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장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응했다고 보는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회담 이후에 '적대세력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며 미국 태도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경제는 특수한 역사 경험 속에서 대북 제재라는 경제 외부요인의 도전에 대해 나름의 내성(耐性)을 다지면서 대응해 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애초 북한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매우 낮으며 에너지 구조도 석탄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비록 최근의 제재로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과거에 해본 것처럼 내핍생활로 힘들게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출이 막힌 석탄을 내수시장에 돌리면 오히려 연료사정이 나아질 수도 있다. 특히 민주화되지 않은 북한체제에서 경제적 고통을 하층 인민에게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전가할 수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야말로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완화 문제에 집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 외교의 전술적 실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의 다급해진 사정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대북 제재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북한경제
고난의 행군 이후 20여 년간 북한경제는 핵개발 비용의 부담과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온 국제적 제재 압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나름 생존을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악착같이 적응력을 키워 왔다.
수해로 망가진 탄광과 농수로를 복구하고 소수력 발전소를 여기저기 만들며, 비료와 철강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수입대체품의 개발, 생산자원의 절약, 소비생활의 내핍을 강조하며 대응해 왔지만 한번 망가진 사회주의 계획경제(공적 경제)는 다시는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었다.
결국 인민경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만으로는 불가능해져 자생적인 장마당 경제가 확산됐고 시장의 역할이 경제생산과 경제관리 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차 북핵 위기 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첫 대북제재(UNSCR 825호, 93년 5월) 이후 26년이 흘러가는 동안 북한경제가 환경변화에 적응해 온 경과를 시장의 역할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전기(轉機)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전기는 2002년 '7.1 조치'이다. 이 시기에 장마당 경제가 등장한다. 공급 부족으로 배급이 어려워지자 식량을 구하는 유일한 통로로 10일마다 열리던 농민시장에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었다. 여기서 공산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필품이 거래되면서 장마당이 형성되었다. 부족한 상품의 조달을 위해 중국 국경의 통상구가 개방되고, 무역기관이 아닌 기관 기업소도 대외거래에 참여했다. 공급부족으로 물량지표 대신 금액지표를 부여받은 사업소와 기관들이 독립채산을 하도록 떠밀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마당을 합법화한 조치가 2002년 '7.1 조치'이다. 북한당국은 장마당 거래를 용인하였고, 생산단위의 계획목표를 물량단위에서 금액지표로, 분배기준도 생산실적에서 벌어들인 수입(번수입)으로 변경했다. 사업장 고유의 생산품과 상관없이 다양한 품목의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한 생산단위는 당·정·군의 힘 있는 기관과 뒤섞여서 국내유통망과 대외무역망에 뛰어들었다. 내부공급 증가보다는 암시장과 밀거래를 통해 외부공급이 늘어 그럭저럭 인민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외부원조 물품들도 한몫 했다.
이렇게 공식경제는 정체된 상태에서 오히려 비공식경제로 모든 물자가 유통되자 위기위식을 느낀 북한당국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장마당 경제에 점진적으로 통제를 가하고 이런 저런 단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갑자기 화폐교환 조치를 단행해 장마당을 통해 축적된 화폐를 강제 회수하고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로 회귀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장마당을 대신해야 할 공적부분이 정상화되지 못한 것이 뒤늦게 판명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고 경제부총리가 처형되었다. 이때가 두 번째 전기다.
화폐교환의 실패는 이제는 계획경제로 회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북한경제에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교훈삼아 오히려 장마당 기능을 이용해 북한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장마당 돈주들의 자금력을 이용하여 평양시가지의 재건축이나 관광지 개발 등 여러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 번째 전기를 맞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4년 경제일꾼과 담화를 하며 나온 이른바 '5.30 조치' 2016년 7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우리식 사회주의 방법' 등이 이어지면서 농업분야에서는 분조관리제하에 포전담당제가 확대되어 초과생산량에 대한 분배단위를 쪼개서 영농의욕을 높이고, 국영기업소의 책임 관리제를 확대해 소매단위의 직거래와 가격협의 권한과 자율권을 허용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공급이 원천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에서 각급 경제단위의 의욕을 높이고 경제 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여기에 국산기술을 이용한 수입대체노력과 증산절약 및 부정부패 척결노력을 병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의 최대압박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시장을 억압하여 계획경제를 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을 이용하여 계획경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외부공급이 차단된 상황에서 돈주의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기관들의 권한만 강화되고 반면 인민경제 전반의 성장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 집권이후 중앙과 지방에 지정한 26개의 경제개발구가 파리를 날리고 있고, 북한이 10년 만에 유엔대표부를 통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공식 요청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북한)는 적대세력들의 항시적 제재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왔고...(중략) 장기간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을 자립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한 것처럼 앞으로도 북한경제는 제재라는 외부요인의 도전을 이런저런 대응책으로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버텨 나갈지도 모른다.
제재완화도 지금의 북한경제 상황에서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상황에서나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어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국경이 없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인민경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강력한 국내시장의 역할이 필요하다.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로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타고 성장 발전해 나가기 어려운 시대다.
북한이 비핵화로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 해도, 현재 시장의 힘을 계획경제의 회복에 이용하려는 북한경제의 환경에서는 대규모 외부투자도 어렵거니와 자금이 들어와도 권력기관의 부정부패 속에 휩쓸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주동력을 시장의 자율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이용하기보다 육성하는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면서 시장에서 약자 처지에 몰린 사람들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제재해제도 오히려 북한경제에 큰 충격과 도전이 될 수 있다.
최근 5월초 단거리 발사체 훈련 참관 이후 거의 한달 만에 현지시찰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은 민생 현장에서 당 간부들의 '일본새'를 질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과 대립하면서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 총력전을 펴는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경제의 활력은 야단맞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실질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런 인센티브는 당 간부의 권한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질서로 제공되어야 경제가 성장 발전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재 해제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만일 제재 해제에 매달려 비핵화 협상을 진행한다면 약점을 잡혀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뿐 아니라, 해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담아낼 그릇이 없어 자생력은 더욱 떨어지고 말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하고 인민경제 향상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장 친화적인 시스템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협상을 촉진하고 제재 해제를 이끄는 힘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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