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기웃 청설모, 흰눈썹황금새의 ‘잔인한 6월’
“뭔가 잘못됐다. 수컷은 자꾸 빈 둥지를 들여다본다.”
» 황금빛 깃털이 화사한 흰눈썹황금새 수컷.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국립수목원)을 해마다 방문하는 이유는 오랜 숲의 맑고 상쾌한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마다 같은 곳에서 번식하는 새들과 만나는 일은 큰 기쁨이다.
6월 1일 흰눈썹황금새를 만났던 국립수목원의 한적한 숲길을 찾았다. 흰눈썹황금새의 지저귐이 반갑게 맞았다. 이 새는 부모가 자신을 낳은 장소를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찾아와 번식한다.
» 흰눈썹황금새가 번식하는 국립수목원 안 계곡.
» 흰눈썹황금새가 지저귀며 영역을 알린다.
» 수컷이 부지런히 지키는 영역 안에 둥지가 있을 것이다.
수컷 황금새가 숲 주변을 맴돌며 울어댄다. 둥지가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컷의 울음소리는 알을 품는 암컷을 안정시키기도 하고, 다른 새들의 접근을 막는 경고이자 영역을 알리는 소리다.
분명히 주변에 둥지가 있는데 찾기가 힘들다. 흰눈썹황금새는 몸길이 13㎝ 정도의 작은 새다. 볼수록 앙증맞은 아름다운 새로 날아다니며 곤충을 잡아먹는다.
» 알을 품는 암컷을 위해 수컷 흰눈썹황금새가 해야 할 일은 주변 경계다.
» 암컷 흰눈썹황금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이다.
암컷의 깃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마에서 등까지 연한 녹색을 띤 갈색이며 허리는 노란색이다. 멱과 가슴, 배는 노란색을 띤 흰색이다. 수컷은 몸 윗면이 대부분 검은색이고 흰색 눈썹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정면에서 보면 흰 눈썹이 사나워 보인다. 검은 날개에 흰 깃털 무늬가 새 모양과 비슷해 몸에 새가 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흰눈썹황금새 수컷은 작은 몸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침입자를 매몰차게 몰아붙인다. 배짱이 두둑하다.
» 정면에서 보면 수컷의 흰 눈썹이 사나워 보인다.
» 둥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5월과 6월은 흰눈썹황금새의 번식기다. 주로 산기슭의 아주 얕은 계곡 주변에서 번식한다. 국립수목원엔 번식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조성돼 있어 해마다 흰눈썹황금새가 구역을 나누어 찾아온다. 올해도 대여섯 쌍이 찾아왔다.
흰눈썹황금새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번식한다. 한 쌍의 번식 범위는 대략 6000~7000㎡ 정도가 된다. 사냥도 둥지에서 반지름 40~80m 이내인 가까운 거리에서 한다. 새끼를 보호하며 사냥하기에 적합한 거리다.
» 깃털을 고르는 흰눈썹황금새
» 검정, 노랑, 흰색의 조화가 완벽한 흰눈썹황금새 수컷.
최찬영 국립수목원 생태해설가가 흰눈썹황금새를 5월 초에 관찰했고, 5월 19일 전후 짝짓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귀띔해 주었다. 5월 20일부터 4개의 알을 낳았다고 가정하면, 5월 23일에 알을 품기 시작했을 것이다. 알을 품는 기간을 11~12일 잡으면, 부화 예정일은 6월 2~3일께일 것이다.
» 갑자기 나타난 흰눈썹황금새 암컷.
» 흰눈썹황금새 수컷은 온종일 둥지 주변에서 울어댄다.
6월 2일이 되었다. 수컷이 어제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암컷을 잠깐 봤지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먹이를 물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포란 중이라고 생각했다.
수컷만 주변 숲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울어대고 둥지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둥지를 찾지 못했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둥지가 있는 것이 확실한데 찾을 길이 없다.
» 암컷이 아주 작은 먹잇감을 물고 있다.
» 수컷 부리에도 마찬가지로 작은 먹이가 물려있다.
6월 4일 흰눈썹황금새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조용하다. 지금까지 울어댄 것은 유인책이었고 원래 둥지가 있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뭇가지 사이로 움직임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흰눈썹황금새 암컷이다. 암컷을 만난 것은 좋은 징조다.
알이 부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암컷이 먹이를 물었다. 그런데 암컷이 날아가자 수컷 흰눈썹황금새가 나타나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두리번거린다. 자세히 보니, 1㎜ 정도의 아주 작은 거미를 물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처음에 줄 매우 작은 먹잇감이다.
» 흰눈썹황금새 부부가 둥지 가까이와 주변을 살핀다.
주변을 신중하게 살피며 눈치를 보더니 마침 필자가 서 있던 썩은 벚나무 구멍으로 재빨리 들어간다. 그동안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그럴듯한 둥지만을 찾느라 눈앞에 있는 썩은 벚나무를 못 봤다.
6월 3일쯤 새끼가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은 월요일, 국립수목원 휴관 일이었다.
» 수컷이 벚나무 구멍에 튼 둥지의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흰눈썹황금새는 서너 개의 지정석이 있어 그 횃대만 사용한다.
하루에 열 번 정도 먹이 사냥을 하는 암컷은 새끼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둥지에서 자주 나오지 않는다. 흰눈썹황금새의 행동과 주변의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여 예측하면 둥지를 떠나는 날짜 추측이 가능하다.
흰눈썹황금새의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는 시기는 11~12일 후인 6월 13~14일이 된다. 그런데 청설모가 둥지를 기웃거린다. 어디선가 수컷이 쏜살같이 나타나 달려들자 화들짝 놀란 청설모가 도망친다. 몸은 작지만 용감하기 짝이 없다.
» 내 영역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6월 6일은 날씨가 흐려서 흰눈썹황금새를 관찰할 수 없었지만, 최찬영 해설가로부터 흰눈썹황금새가 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6월 8일 오전 9시, 수목원이 개장하자마자 흰눈썹황금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3시간을 지켜봐도 흰눈썹황금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휑한 느낌이 든다. 지금쯤이면 새끼에게 한창 먹이를 물어다 줘야 하는 바쁜 시기인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쳐 갔다.
» 암컷 흰눈썹황금새가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뭔가 잘못됐다. 수컷은 자꾸 빈 둥지를 들여다본다.
둥지를 기웃거리던 청설모한테 당한 것 같다. 청설모는 한 번 어린 새의 냄새를 맡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둥지의 구멍이 청설모의 침입을 막기에 좀 컸던 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멀리서 흰눈썹황금새 부부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새를 관찰하다 보면 이처럼 허망한 경우가 많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자연의 순리다. 청설모도 배고픈 새끼를 먹여야 했을지 모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 황금빛 깃털이 화사한 흰눈썹황금새 수컷.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국립수목원)을 해마다 방문하는 이유는 오랜 숲의 맑고 상쾌한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마다 같은 곳에서 번식하는 새들과 만나는 일은 큰 기쁨이다.
6월 1일 흰눈썹황금새를 만났던 국립수목원의 한적한 숲길을 찾았다. 흰눈썹황금새의 지저귐이 반갑게 맞았다. 이 새는 부모가 자신을 낳은 장소를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찾아와 번식한다.
» 흰눈썹황금새가 번식하는 국립수목원 안 계곡.
» 흰눈썹황금새가 지저귀며 영역을 알린다.
» 수컷이 부지런히 지키는 영역 안에 둥지가 있을 것이다.
수컷 황금새가 숲 주변을 맴돌며 울어댄다. 둥지가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컷의 울음소리는 알을 품는 암컷을 안정시키기도 하고, 다른 새들의 접근을 막는 경고이자 영역을 알리는 소리다.
분명히 주변에 둥지가 있는데 찾기가 힘들다. 흰눈썹황금새는 몸길이 13㎝ 정도의 작은 새다. 볼수록 앙증맞은 아름다운 새로 날아다니며 곤충을 잡아먹는다.
» 알을 품는 암컷을 위해 수컷 흰눈썹황금새가 해야 할 일은 주변 경계다.
» 암컷 흰눈썹황금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이다.
암컷의 깃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마에서 등까지 연한 녹색을 띤 갈색이며 허리는 노란색이다. 멱과 가슴, 배는 노란색을 띤 흰색이다. 수컷은 몸 윗면이 대부분 검은색이고 흰색 눈썹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정면에서 보면 흰 눈썹이 사나워 보인다. 검은 날개에 흰 깃털 무늬가 새 모양과 비슷해 몸에 새가 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흰눈썹황금새 수컷은 작은 몸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침입자를 매몰차게 몰아붙인다. 배짱이 두둑하다.
» 정면에서 보면 수컷의 흰 눈썹이 사나워 보인다.
» 둥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5월과 6월은 흰눈썹황금새의 번식기다. 주로 산기슭의 아주 얕은 계곡 주변에서 번식한다. 국립수목원엔 번식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조성돼 있어 해마다 흰눈썹황금새가 구역을 나누어 찾아온다. 올해도 대여섯 쌍이 찾아왔다.
흰눈썹황금새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번식한다. 한 쌍의 번식 범위는 대략 6000~7000㎡ 정도가 된다. 사냥도 둥지에서 반지름 40~80m 이내인 가까운 거리에서 한다. 새끼를 보호하며 사냥하기에 적합한 거리다.
» 깃털을 고르는 흰눈썹황금새
» 검정, 노랑, 흰색의 조화가 완벽한 흰눈썹황금새 수컷.
최찬영 국립수목원 생태해설가가 흰눈썹황금새를 5월 초에 관찰했고, 5월 19일 전후 짝짓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귀띔해 주었다. 5월 20일부터 4개의 알을 낳았다고 가정하면, 5월 23일에 알을 품기 시작했을 것이다. 알을 품는 기간을 11~12일 잡으면, 부화 예정일은 6월 2~3일께일 것이다.
» 갑자기 나타난 흰눈썹황금새 암컷.
» 흰눈썹황금새 수컷은 온종일 둥지 주변에서 울어댄다.
6월 2일이 되었다. 수컷이 어제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암컷을 잠깐 봤지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먹이를 물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포란 중이라고 생각했다.
수컷만 주변 숲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울어대고 둥지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둥지를 찾지 못했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둥지가 있는 것이 확실한데 찾을 길이 없다.
» 암컷이 아주 작은 먹잇감을 물고 있다.
» 수컷 부리에도 마찬가지로 작은 먹이가 물려있다.
6월 4일 흰눈썹황금새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조용하다. 지금까지 울어댄 것은 유인책이었고 원래 둥지가 있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뭇가지 사이로 움직임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흰눈썹황금새 암컷이다. 암컷을 만난 것은 좋은 징조다.
알이 부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암컷이 먹이를 물었다. 그런데 암컷이 날아가자 수컷 흰눈썹황금새가 나타나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두리번거린다. 자세히 보니, 1㎜ 정도의 아주 작은 거미를 물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처음에 줄 매우 작은 먹잇감이다.
» 흰눈썹황금새 부부가 둥지 가까이와 주변을 살핀다.
주변을 신중하게 살피며 눈치를 보더니 마침 필자가 서 있던 썩은 벚나무 구멍으로 재빨리 들어간다. 그동안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그럴듯한 둥지만을 찾느라 눈앞에 있는 썩은 벚나무를 못 봤다.
6월 3일쯤 새끼가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은 월요일, 국립수목원 휴관 일이었다.
» 수컷이 벚나무 구멍에 튼 둥지의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흰눈썹황금새는 서너 개의 지정석이 있어 그 횃대만 사용한다.
하루에 열 번 정도 먹이 사냥을 하는 암컷은 새끼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둥지에서 자주 나오지 않는다. 흰눈썹황금새의 행동과 주변의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여 예측하면 둥지를 떠나는 날짜 추측이 가능하다.
흰눈썹황금새의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는 시기는 11~12일 후인 6월 13~14일이 된다. 그런데 청설모가 둥지를 기웃거린다. 어디선가 수컷이 쏜살같이 나타나 달려들자 화들짝 놀란 청설모가 도망친다. 몸은 작지만 용감하기 짝이 없다.
» 내 영역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6월 6일은 날씨가 흐려서 흰눈썹황금새를 관찰할 수 없었지만, 최찬영 해설가로부터 흰눈썹황금새가 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6월 8일 오전 9시, 수목원이 개장하자마자 흰눈썹황금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3시간을 지켜봐도 흰눈썹황금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휑한 느낌이 든다. 지금쯤이면 새끼에게 한창 먹이를 물어다 줘야 하는 바쁜 시기인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쳐 갔다.
» 암컷 흰눈썹황금새가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뭔가 잘못됐다. 수컷은 자꾸 빈 둥지를 들여다본다.
둥지를 기웃거리던 청설모한테 당한 것 같다. 청설모는 한 번 어린 새의 냄새를 맡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둥지의 구멍이 청설모의 침입을 막기에 좀 컸던 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멀리서 흰눈썹황금새 부부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새를 관찰하다 보면 이처럼 허망한 경우가 많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자연의 순리다. 청설모도 배고픈 새끼를 먹여야 했을지 모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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