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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4일 월요일

“씨알은 죽지 않습니다”


4일 함석헌 선생 서거 30주기 추모회 열려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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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4  20: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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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기념사업회’(이사장 문대골)는 4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함석헌기념사업회 강당에서 ‘함석헌 선생 서거 30주기 추모회’를 열었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씨알. 엄혹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이 곧 씨알이라고 설파한 사상가. 씨알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한 혁명가. 흰 수염 쓸어내리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사회 곳곳을 누빈 민주주의자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4일, 30년이 흘렀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이사장 문대골)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함석헌기념사업회 강당에서 ‘함석헌 선생 서거 30주기 추모회’를 열었다.
이날 추모회에서 문대골 이사장은 “나는 함석헌을 잘 모른다. 함석헌을 논리적으로나 철학적, 사상적으로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 문대골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이 30주기를 맞아 추모의 말씀을 하고 있다. 문 이사장의 뒷편에 함석헌 선생의 생전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문 이사장은 “함석헌에 붙일 이름이 없다. 교수도, 신부도, 목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갖다 붙일 이름이 없다. 철저하게 바닥으로 사셨다”며 “공부해서 만날 분이 아니다. 연구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함석헌은 민중신학자가 아니다. 민중철학자도 아니다. 그냥 민중”이라며 “요즘 함석헌의 혼이 필요하다. 우리도 함석헌의 과제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름 없이 살아야 한다. 갖다 붙일 이름이 없는 나, 실패하면 어떠한가. 실패해도 그 길에 뜻이 있다면 품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박선균 ‘씨알의 소리’ 편집주간은 함석헌 선생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고인의 유언을 세 가지로 요약해 전했다. “씨알은 죽지 않습니다. 이제 씨알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씨알 뒤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함석헌읽기모임 김형근 씨는 함석헌 선생의 생전 글을 모아 읽었다.
“자기가 자기 속의 전체를 자기로서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참 혁명입니다. 참 혁명의 원리는 죽어서 삶입니다. 죽인다는 것은 이 작은 나를 나 아니라 부정함입니다. 참 혁명은 오직 자기 혁명, 인간혁명입니다. 혁명은 누가 하느냐. 사회에 새 바람은 누가 불어 넣느냐? 내가 해야합니다. 나 아니고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러한 개성적인 하나가 됩시다. 그럼 생각합시다! 그럼 꿈틀거립시다! 그럼 겁을 내지 말고 속에 있는 대로 외칩시다! 자, 이젠 일어섭시다! 일어섰습니다!”
  
▲ 함석헌 선생의 손녀 함정해 씨가 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가족을 대표해 함석헌 선생의 손녀 함정해 씨가 자리했다. 함 씨는 “할아버지께서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고 하셨다. 저희 가족들이 제자와 가족을 구분해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며 “할아버지와 뜻을 같이하고, 가족보다 할아버지 뜻을 지켜주신 선생님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없다고 하신 말처럼, 선생님들은 저의 가족이고 가족들은 도반이 되어서 할아버지 말처럼, 뜻처럼 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은 김선보 ‘씨알사상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김조년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시인 이상현, 함석헌읽기모임 김형근 씨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함석헌 선생이 작사한 성가 ‘내 님을 가까이’와 그가 즐겨 부른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추모식장에 울려 퍼졌다.
  
▲ 이날 추모식은 김선보 ‘씨알사상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김조년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시인 이상현, 함석헌읽기모임 김형근 씨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고 함석헌 선생은 1901년 3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오산학교에 편입해, 스승인 유영모 선생을 만났다. 해방 후 월남한 선생은 줄곧,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그가 발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는 당시 언론 자유의 상징이었다.
민족과 통일에 대한 발언에도 거침이 없던 그가 ‘씨알의 소리’에 남긴 글 ‘5천만 동포 앞에 눈물로 부르짖는 말’ 중 일부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 남북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의미는 어디 있습니까? 대표가 오고 가는 것은 그 실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민족통일은 하나의 물리적인 운동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정신운동이요 생명운동입니다...통일이라 하면 갈라졌던 것을 다시 합하는 하나의 복귀운동같이 알기 쉽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생명에서 엄정한 의미의 복귀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이 통일은 하나의 혁명입니다. 하나의 자람이요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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