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극우인사 지만원을 앞세운 ‘5.18 공청회’를 주최하여 자당(自黨) 소속 국회의원들이 5.18 망언을 할 장(場)을 열어준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에 대해, 지역구인 춘천시 시민들이 강한 규탄과 분노의 뜻을 표현했다.
21일 저녁 6시 50분 경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퇴계사거리) 인근에서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범시민운동본부(이하, 범시민운동본부) 주최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영하의 날씨에도 400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집회 시작 30분 전부터 현장에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퇴근길에 바로 온 듯 보이는 40~50대 직장인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30대 부모, 10대 청소년들과 20대 청년들이 성별 상관없이 고루 모였다. 60~70대 노년층도 적지 않았다. 혼자 온 사람부터 삼삼오오 함께 온 이들까지 집회 참석자들의 구성은 다양했다.
21일 저녁,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범시민운동본부 주최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촛불집회에서 사용된 종이컵에 김진태 추방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2019.02.21ⓒ민중의소리
이들은 범시민운동본부가 붙인 ‘김진태를 점지한 삼신할매 규탄한다!’, ‘이 나라에 버릴 곳 없다. 김진태를 화성탐사선에~’ 등 위트 넘치는 현수막 문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부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다가가 ‘김진태 추방’이라고 쓰인 빨간 스티커를 촛불용 종이컵에 붙이는 등 촛불집회 준비를 도왔다.
집회에 참석한 김설훈(남, 28) 씨는 “화가 나서 나왔다”며 “김진태 의원 관련 기사가 나오면 이제 열 받는다. 그 밑에 춘천 욕하는 댓글이 달린다. ‘닭갈비, 막국수 안 사먹겠다’부터 ‘시민들이 어리석어 투표 잘못해가지고 김진태 같은 사람을 의원으로 뽑았다’는 것까지 갖가지 내용이 달린다”고 한탄했다.
춘천에서 30년째 거주중이라는 50대 여성 김 모 씨는 “박근혜 탄핵 촛불은 안 나왔었는데, 김진태 추방 촛불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집회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5.18을 북한군이 내려와서 한 걸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남편에게 말했다가 혼이 났다. 남편은 고향에서 이 일을 다 본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망언’한 게 맞더라. 그런 말은 제정신이라면 하면 안 된다”고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21일 저녁,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범시민운동본부 주최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집회 장소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현수막이 걸려있다. 2019.02.21ⓒ민중의소리
집회가 시작되며 처음 무대에 오른 이는 최윤 강원지역 5.18민주화운동 동지회 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이 시기에 김진태가 왜 5.18 폄훼를 했나. 그 의도가 불순하다. 전당대회 나오면서 태극기부대의 지지를 받기 위해 그런 것 아니냐. 자신의 정치적 야욕 위해선 어떤 것도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야비하고 비열한 사람이 춘천 대표인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전당대회 하면서 5.18 폄훼하는 것뿐만 아니라 박근혜 탄핵까지 부정한다. 5.18은 대법원에서 전두환 군부에 맞선 국민들의 정당한 저항이라고 판결했다. 박근혜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한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을 무시하는 김진태는 국정혼란을 야기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김진태를 비롯한 망언한 자들은 반드시 사퇴시켜야 한다”며 “이 같은 인사들을 제명 안 시키면 자유한국당도 해체해야 한다. 김진태 의원은 시민에게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 그리고 춘천을 떠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춘천망신 김진태추방 범시민운동본부 주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집회 무대에 오른 최윤 강원 5·18 민주화운동동지회 회장이 김진태 의원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2019.02.21.ⓒ사진 = 뉴시스
김진태 의원이 촉발한 ‘망언 논란’은 춘천 시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을 단결하게 했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 노동당 지역위원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도당위원장은 “김진태 의원은 더 이상 춘천시민의 일꾼이 아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조차 부끄럽다. 신군부 총칼에 목숨을 잃고, 마음을 다치고, 자식을 잃은 모든 5.18 광주시민들께 춘천시민을 대표해 제가 이 자리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다”며 시민들과 취재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른미래당 조성모 춘천지역위원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공인인 국회의원이 저러면 우리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상식이 있는 정치, 미래가 있는 정치를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역사 왜곡하는 정치인은 춘천시민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묵 민중당 춘천시당위원장은 “박근혜 퇴진 촛불 든 지 만 2년이 됐다. 우리가 그때 김진태 사퇴 촛불도 들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춘천 촛불은 미완의 촛불”이라며 “이번에 김진태 사퇴로 완성되도록 하는 게 우리 모두에 어깨에 달려있다”고 이날 촛불집회의 의미를 짚었다.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춘천망신 김진태추방 범시민운동본부 주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춘천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2019.02.21ⓒ사진 = 뉴시스
이날 집회에는 춘천시민들의 문화 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춘천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일곱시반’은 이날 무대에 올라 감미로운 노래를 연이어 부르며 집회 분위기를 훈훈하게 했다. 보컬 김재헌 씨는 “이런 곳에서 불러주시면 나와서 노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이 요새 망언 논란에 이어 ‘의원 총사퇴’ 이야기도 하시더라. 그 말 꼭 지켜주셨으면 한다”고 말해 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5.18때 광주에 있었고, 현재는 춘천에 거주중이라는 한 50대 시민은 “당시 저는 광주상업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전두환이 군사반란 일으켰다고 할 때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깡패나 살인자보다 더 나쁜 살인마였다. 광주의 5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살인마가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데 어떻게 이것을 끝났다고 말할 수 있냐”고 통탄했다.
이어 “대한민국에 3가지 가장 큰 거짓말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전두환이 전 재산이 29만원이라 하고 30여년 가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두 번째는 5.18 때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는 것이다. 제가 당시 매일 도청에 갔지만 그런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시민들이 오히려 의심스럽게 선동하는 사람을 계엄군이나 시민대책위에 넘겼다. 마지막으론 아직도 자유한국당 같은 적폐원조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이 지나면 박물관의 유물이 되게 하자”고 말해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발언 중에 ‘광주출정가’를 불렀고, 현장에 모인 시민들도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에서 춘천망신 김진태추방 범시민운동본부 주최 5.18 망언 춘천망신 김진태 추방 촛불 집회가 열렸다. 사회자 엄재철 씨가 무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02.21ⓒ민중의소리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김호연 씨도 무대에 올라 최근 ‘5.18 망언 사태’를 바라보는 심경을 전했다. 그는 친정어머니가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분노하며 오늘 집회를 꼭 가라고 당부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김 의원에 발언에 화가 나신 이유가 있다. 고향이 나주신데, 당시에 분명히 진압군들이 광주 사는 친척오빠들을 짓밟는 걸 보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하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역사의식, 인권의식 없는 정치인은 더 이상 춘천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그게 부모로서 우리 애들을 위해 제가 해야 하는 일 같다. 부끄러운 걸 아는 게 어른이다. 부끄러운 걸 안다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 것을 원한다. 우리가 힘을 모아 망언하는 국회의원을 내쫓자!”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춘천지역 6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범시민운동본부는 이날 결의문을 낭독하며 행사를 마무리 했다.
이들은 “김진태는 민주시민들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당신 입으로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촛불이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다. 이제 그 촛불이 다시 살아나 김진태의 망언망동을 심판할 것”이라며 “우리는 김진태가 5.18 망언에 대해 사죄하고 국회의원에서 물러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김진태 의원에게 ▲ 망언에 대해 사죄할 것 ▲ 즉각 국회의원 사퇴할 것 ▲ 춘천을 떠날 것을 요구했고, 국회에는 ▲ 5.18 망언 국회의원 즉각 제명을 촉구했다.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석사동 김진태 국회의원 사무소 앞에서 춘천애국시민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맞은 편에서는 춘천망신 김진태추방 범시민운동본부 400여명이 촛불 집회(도로 오른쪽)를 열고 망언 논란이 인 5.18 공청회를 주최한 김진태 의원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2019.02.21.ⓒ사진 = 뉴시스
한편, 이날 춘천애국시민연합 등 보수단체들도 집회를 열고 촛불을 든 시민들에 맞섰다. 촛불집회가 열린 장소 길 건너편에는 김진태 의원의 지역 사무소가 위치해 있다. 보수단체들은 해당 건물 앞에서 오후 6시 경 집회를 열어 8시 20분까지 집회를 계속했다.
50~70대 100여명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들고 힘차게 흔들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도로변에 ‘진실알리기운동본부’ 명의 현수막을 여러개 달고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했다. 현수막에는 ‘5.18 유족에게 보상되는 특혜와 보상금 공개하라’, ‘불법유공자 색출해 처벌하고 환수하라’,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김진태가 망언을 언제 했냐? 공청회만 주최했을 뿐”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공청회도 할 수 있다”고 외쳤다. 또 “우리는 김진태의 지지자가 아니다. 김진태가 억울하니까 도와주러 왔다”고 주장했다.
이날 경찰은 집회 현장에 경찰 300여명을 배치해 양측의 충돌에 대비했으나, 어떤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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