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보도 117건 중 6건 실형, 법안 145건 중 35건 통과… 피해자 2차피해 보호할 법 국회 계류 중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9년 02월 03일 일요일
미투 운동은 제도 밖에서 진행했다. 성범죄를 학교 안에서, 사내에서, 심지어 사법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불신 탓에 여론에 호소했다. 지난해 1월29일 JTBC에 나온 서지현 검사는 그 불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서 검사의 고백은 사실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검사조차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체계를 이탈했다.
미투 운동의 문제의식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다음 단계다. 법이 문제면 이를 개정하고,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미투 관련 법안 처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관련법 145건 중 35건(24.1%·부분 통과 포함)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머지는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등에 계류 중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판결 이후 재판에서 이슈가 된 ‘비동의 간음죄’(폭행·협박이 없어도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처벌)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논의도 없었다는 지적은 언론에 많이 나왔다. 미디어오늘은 그 외에도 미투 운동 이후 한국사회에 필요하지만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법안을 살펴봤다.
▲ 서지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그의 고백이 1년 지났다. 사진=연합뉴스 |
누구든지 성희롱하면 안 된다는 법
현행법에선 사실상 성추행 이상만을 범죄로 본다. 이는 법에서 성희롱·성차별을 제한적으로만 금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의 성인지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성희롱·성차별 제재를 강화할 법이 필요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양성평등기본법·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을 보면 ‘직장 내’ 성희롱만 규정했고, 피해자의 범위도 법마다 다르다. 또한 국가기관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언급하지 않아 권리구제에 미흡하다.
성차별의 경우도 헌법 11조에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법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꼴이다. 게다가 지난 2005년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를 폐지한 이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실체법이 없는 상태다.
이에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성별에 의한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다. 성차별·성희롱 금지를 다룬 일반법으로 19대 국회 때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누구든 성희롱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고, 인권위가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명시했다. 또한 여성가족부장관이 피해자 상담을 지원하고 실태조사에 적극 나서도록 규정했다. 성희롱·성차별 신고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성폭력 신고자도 공익신고자로 보호하는 법
“지난 1년간 입을 연 피해자·공익제보자로 살며 느낀 고통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미투 1년을 맞아 서지현 검사가 29일 국회에서 한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옥죄는 2차 피해는 직장·언론·수사당국 등에서 광범위로 벌어진다. 신고자가 사적인 욕심으로, 특정인을 해하려 문제를 제기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시대”(서 검사)를 끝내려면 성폭력 피해자를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이치열 기자 |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발의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일부개정안에는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에 남녀고용평등법을 포함했다. 같은 문제의식으로 지난해 12월 고용진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일부개정안에는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에 남녀고용평등법 뿐 아니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포함했다.
공익신고자법을 보면 사용자는 공익신고자 등이 인사조치를 요구할 때 요구내용이 타당하면 우선 고려해야 하며 공익신고자가 불이익 조치를 받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 원상회복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공익신고자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손해에 대해 3배 이하의 배상책임을 진다. 현행법상 약 200개의 법률에 규정된 공익침해행위만 보호한다.
채 의원은 “성희롱·성폭력 범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건강을 해치고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중대한 공익침해 행위”라며 “성폭력 신고자를 법으로 두텁게 보호해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자를 제재할 수 있게 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고 의원은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불이익을 받을 경우 구조금 등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 광주지역 예술인들과 여성단체는 지난 17일 오후 5·18민주광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진행하고 있는 #Me_Too 운동에 함께하는 #With_You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차 가해자 처벌 강화법
비슷한 맥락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경우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은 더 있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인사 등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형법상 범죄가 아니므로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요청했는데도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기존 500만원의 과태료가 아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4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같은 법 개정안을 같은 취지로 대표발의했다. 직장 내 성희롱 은폐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성희롱 가해자를 처벌할 때 2차가해 여부도 고려하도록 했다.
또한 사업주가 사실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경우 제재수위를 현행 과태료에서 벌칙으로 상향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정보가 퍼질 경우 또 다른 2차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성차별·성희롱으로 손해를 입힐 경우 3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2월부터 약 1년간 언론에 알려진 미투 117건을 본 결과 가해자가 구속돼 실형을 받은 사례는 6건에 불과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등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등장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법 제도의 미비를 여론의 힘으로 보완했다는 뜻이다. 계류 중인 법 통과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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