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수를 가서 추태를 부린 것은 현역 국회의원뿐만이 아닙니다. 경북 예천군의회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군의원은 ‘접대부 불러달라, 보도방은 없냐.’라며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의원들은 소수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해외연수를 다녀온 후 제출했던 출장보고서를 보면 대다수 의원들의 일정도 꼭 필요한 의정 활동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짜깁기에 표절로 만든 해외연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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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의회가 펴낸 국외연수 보고서(좌) 경제 분야는 거의 나무위키 (우)를 베껴 작성됐다.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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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강남구의회 의원들은 일본 오사카와 히로시마 등을 방문하는 국외연수를 했습니다. 연수를 다녀온 뒤 발간된 구의회의 국외공무연수 보고서를 보면 나무위키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베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외연수 보고서를 보면 오사카 지역의 경제 현황은 나무위키의 경제 항목을 거의 통째로 베꼈습니다. 히로시마에 대해 설명한’역사상 최초로 핵폭탄을 맞은 도시’라는 부분도 나무위키 내용을 그대로 복사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서초구 의회가 다른 구의회의 보고서를 어미와 조사만 바꿔 짜깁기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 보고서를 베낀 곳은 서초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국민의 세금으로 연수는 제대로 하지 않고 와서, 인터넷에 나온 정보를 대충 베끼거나 남의 보고서를 확인도 하지 않고 짜깁기해서 국외연수 보고서라고 올린 것입니다.
뉴질랜드 방문 출장 일정을 SNS로 보고했던 표창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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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은 뉴질랜드 방문 당시 만났던 사람이나 견학했던 장소의 사진과 글을 계속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표창원 의원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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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뉴질랜드를 방문한 경위와 어디를 갔는지를 자세히 적은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2월 11일부터 표창원 의원은 뉴질랜드 정부가 우방국 정치인을 ‘수상의 친구, Prime Minister’s Fellow’로 선정해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뉴질랜드를 방문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의 초청이었지만, 표 의원은 먼저 국회 사무처와 국민권익위, 중앙선관위 등에 현행 법과 국회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표 의원은 문제가 없자, 국회가 열리지 않는 설 연휴 등을 이용해 뉴질랜드를 다녀왔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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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를 방문한 표창원이 올린 일정표. 관광보다는 정치인과의 만담이나 오찬, 의회, 대법원 등의 견학이 대부분이었다. ⓒ표창원 의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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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의원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2월 11일부터 2월 16일까지의 일정표가 그대로 올라가 있습니다. 일정표를 보면 수상과 면담, 제1야당 당대표와 면담, 의원단과 오찬 면담, 국회 본회의 참관 등으로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뉴질랜드 대법원, 국립박물관, 한국대사관 방문 등이었고, 관광 일정은 몇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계속되는 오찬이나 면담 등의 일정 속에 휴식을 위한 관광 수준에 그쳤습니다.
표창원 의원의 일정은 관광 위주였던 다른 의원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또한, 자신의 일정을 전부 공개했기에 국민들은 그가 해외를 방문해 어디를 다니고 누구를 만났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습니다.
번지르한 보고서보다 훨씬 깊이 있던 뉴질랜드 방문 출장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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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창원 의원이 뉴질랜드 대법원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표창원 의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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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보면 그저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제대로 보고 듣고 왔구나 할 정도로 자세하면서도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통해 시사하는 바를 조목조목 적어놨습니다.
보고서의 문장이 길어 읽기 힘들지만, 내용을 보면 뉴질랜드 대법원과 우리나라 법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아래 글은 해외출장 보고서 일부 내용입니다.
자세한 보고서는 표창원 의원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년 전까지 뉴질랜드의 대법원은 영연방 종주국인 영국 최고심이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사법독립을 의미하는 대법원의 신설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반도보다 약간 큰 면적에 인구 500만, 우리 1/10에 해당하는 나라라서 항소법원에서 대법원에 상고 요청되는 사건 수는 연간 채 200건 도 안되지만, 5명의 대법관이 심도 깊게 심의하는 상고심은 이 중에서도 10% 정도만 받아들여집니다. 상고 요청의 90%는 기각 내지 각하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지방법원 1심에서 항소법원 2심으로 항소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엄격하게 법률상 오류나 심각한 사실관계 오인 등 사유가 인정되어야만 항소, 상고가 허용되어 사법비용이 무척 절감되고, 사건 하나하나마다 매우 신중하고 깊이 있게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확인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급심 판단을 받고 싶어 하는 피고인 혹은 피해자 등의 재판받을 권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제 질문에 대해 기본적으로 뉴질랜드 시민들은 사법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서 1심 지방법원 (District Court) 및 각 특별법원 (가정법원, 소년법원, 마약 및 알코올 중독 법원 등)의 재판 결과 및 항소 상고 사유에 대한 심의 판단 결과를 존중한다고 합니다.
물론, 재판 결과 및 항소 상고 불승인에 대한 불복 심리로 난동, 욕설, 폭언 등을 행하는 경우들도 발생하지만 언론과 여론은 합리적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존중한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판사들도 뉴질랜드 대법원을 방문, 이런 제도와 상황을 듣고 확인하고 갔다고 합니다.
최근 전직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등이 연루된 사법농단 재판거래 스캔들 및 우리나라의 사법불신 풍조, 검사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수사 및 준사법 권한 등을 설명하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설치된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의 의미와 활동, 공수처와 감경수사구조 개혁 및 법원 개혁 방안 등을 설명하니 뉴질랜드 역시 과거 많은 문제와 논란, 불신을 극복하고 지난한 개혁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추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뉴질랜드 법정은 개방적 구조로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방청인뿐 아니라 지나는 모든 사람이 원하면 들여다볼 수 있고, 기자들의 취재 및 판사의 사전 승인을 득하면 방송 카메라 한 대도 들어와 촬영을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 등 민감한 사건의 피해자는 법정에 나오지 않고 인근에 설치된 별도의 방에서 카메라 및 마이크를 통해 판사의 질문에 답합니다. 신원 보호가 필요한 목격자 및 참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 및 목격자 등 참고인이 법정에 출석할 경우 원한다면 피고인 석과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됩니다. 주차장 및 현관 입구로부터 법정에 이르는 통로는 판사, 피해자 및 목격자, 피고인, 일반 방청객 및 언론 등 4 갈래로 엄격히 구분됩니다. 서로 만나거나 마주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대법원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라 피해자나 피고인 등 사건 당사자가 출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주로 지방법원과 특별법원 및 항소심 법정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표창원 의원 뉴질랜드 방문 출장 보고서)
해외연수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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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의회를 방문했던 표창원 의원은 사진과 함께 의회 구성이나 보수 야당의 모습을 글로 올렸다. ⓒ표창원 의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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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이 뉴질랜드 의회를 방문하고 올린 글을 보면 의회 구성과 보좌관 제도, 본회의와 상임위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의외인 점이 보수 야당 대표가 표창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수상이나 정부, 여당 비판을 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표창원 의원의 보고서를 보다 보면 표지와 제목만 그럴싸했을 뿐 표절과 짜깁기로 만들어진 다른 의원들의 해외출장보고서와는 달라서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국민들이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비판하는 이유는 피 같은 세금으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표창원 의원 같은 뉴질랜드 방문 일정으로 이와 비슷한 수준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의원이라면 충분히 해외연수를 다녀올 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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