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와 사슴이 ‘동업자’가 된 이유는?
사슴 주변 맴돌며 하룻밤 흡혈 곤충 수백∼수천 마리 사냥
» 박쥐가 흰꼬리사슴 주변을 맴돌며 사슴에 꼬인 말파리 등 흡혈 곤충을 사냥하고 있다. 메레디스 팔머 외 (2019) ‘동물행동학’ 제공.
손이 없는 동물에게 피부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 말파리나 진드기를 잡아먹어 주는 다른 동물은 고맙기 짝이 없다. 기생충을 잡아먹는 동물도 손쉽게 먹이를 확보하니 득이다. 이처럼 청소를 통해 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청소 공생’의 새로운 사례가 발견됐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대형 초식동물이나 가축의 등에 올라타 진드기 등을 잡아먹는 찌르레기과의 소등쪼기새와, 열대 산호초에서 대형 물고기의 피부에서 기생충을 잡아먹는 청소부 놀래기가 이루는 청소 공생은 널리 알려졌다.
» 임팔라 머리에 피부 기생충을 잡아먹는 공생을 하는 쇠등쪼기새가 앉아 있다. 찰스 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새로 밝혀진 공생은 박쥐와 사슴 사이에서 벌어진다. 청소부 노릇을 하는 새의 사례는 많지만, 박쥐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자들은 미네소타주에 있는 시더 크리크 생태계 과학보호구역에서 직접 관찰과 무인 카메라 촬영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동물행동학’ 최근호에서 밝혔다. 이곳의 흰꼬리사슴은 수십종의 말파리 등 흡혈 곤충의 표적이 되는데, 곤충의 번식기에는 한낮에도 사슴 주변에 수백∼수천 마리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사슴은 파리가 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자니 먹이가 부족하거나 천적이 들끓고, 버티자니 곤충을 쫓을 긴 꼬리도 없어 속수무책인 상태이다.
» 사슴은 몰려든 흡혈 곤충(흰 점)을 피하는 일이 큰일이다. 메레디스 팔머 외 (2019) ‘동물행동학’ 제공.
연구자들은 밤중에 큰수염박쥐 등 여러 종의 박쥐가 사슴 주변을 선회하며 말파리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무인카메라로 촬영한 결과 박쥐와 사슴의 조우가 드문 일이 아니며, 박쥐는 오랜 시간 사슴 주변에 머물며 흡혈 곤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메라에 찍힌 박쥐의 94%는 사슴 주변에 있었다.
연구자들은 “박쥐는 하룻밤에 곤충 수백∼수천 마리를 잡아먹는데, 사슴에 몰려든 곤충을 사냥한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며 “사슴도 해충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혜택을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청소를 통해 상생하는 공생 사례가 라쿤-사슴, 아프리카자카나(물꿩의 일종)-하마, 다윈 핀치-육지 거북과 이구아나, 물떼새-나일악어, 새우-물고기, 물고기-물고기 등 다양하다고 밝혔다.
» 아메리카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 흰꼬리사슴. 제리 시그레이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또 “포식과 경쟁 등 종 사이의 적대적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호혜적 공생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며 “공생 관계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은 만큼 이 분야에 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eredith S. Palmer et al,Bats join the ranks of oxpeckers and cleaner fish as partners in a pest‐reducing mutualism, ethology, DOI: 10.1111/eth.1284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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