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저널리즘 #파일럿06. 정상회담 재 뿌리는 조선일보
# 오프닝
신문을 모아 책처럼 읽고 분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이따위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신문을 모아 분석해보니 50퍼센트의 그릇된 희망과 47%의 그릇된 예언, 3%의 진실 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얘기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지면 신문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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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저널리즘
지금 시작합니다.
# 거들떠보자
대통령으로 3번째 방북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까지. 판문점에서 봄에 약속한 ‘가을 평양 방문’은 약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의 방북뿐 아니라 누가 수행단에 포함돼 함께 방문하는지도 이슈였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평양 방문 이틀 전인 16일 청와대가 공식 수행원 14명과 특별 수행원 52명 등 66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다음 날 17일 월요일의 주요 일간지 1면 헤드라인은 바로 이 명단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헤드라인만 두고 본다면 조선일보는 벌써 ‘재 뿌리기’ 바빴습니다.
조선일보를 먼저 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대북제재로 경협 불가능한데’라는 말을 헤드라인에 넣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 4대 대기업 대표가 포함됐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서 경협이 어렵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합니다.
한겨레와 동아일보는 각각 ‘한반도 신경제 힘 싣는다’, ‘경협 확대 시동 건다’라는 문구를 헤드라인에 넣었습니다. 주요 대기업 인사들이 포함된 점을 ‘남북 경제협력’에 힘을 싣기 위함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일보는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방북 동행’이라는 제목을 1면에 담았습니다. 얼핏 보면 경제전문지로 볼 수 있을 정도의 헤드라인입니다.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한겨레는 첫 문단 마지막 문장에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별수행원 명단에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고 적었습니다. 지난 두 차례 평양 정상회담에서 대기업 대표자가 함께했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명단에 포함될지 여부는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제 와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하기에는 ‘논란이 생기기 위한’ 뻔한 문장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비핵화가 잘 진행되고 남북관계가 많이 진전되면 ‘평화가 경제다. 경제가 평화다’라고 생각한다”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과 “본격적인 남북관계 발전에서 경제 비중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준비 차원”이라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대북 제재 상황에도 대기업 대표자가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경제협력 확대’에 중점을 뒀습니다. 첫 문단에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끝장 협상’에 들어가는 동시에 비핵화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남북 경제협력 확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또 경제인 17명이 포함된 것에 대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당시 경제인 수행단과 같은 규모다. 이번 방북단 규모가 2007년보다 100명가량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경제인 비중은 더욱 커진 셈이다’라며 경제협력을 위한 방북 명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계속해서 ‘실제로 방북 수행원에는 철도, 도로, 관광, 전력 등 남북 경협 관련 장관과 기업인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을 적으며 대기업 대표자 외에도 남북 경협과 관련한 관계자가 많이 방북한다는 점을 짚어줬습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특별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대기업 총수들이 포함된 데는 북측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첫 문단에서 적었습니다. 하지만 확인된 정보는 아닙니다. 늘 이야기하듯 ‘재계’, ‘정부 관계자’의 소식입니다. 실제로 지난 두 차례 평양 정상회담에도 4대 그룹 대표자들이 참석한 적 있습니다. 그런 반론에 대응하기 위해서인지 이어서 ‘재계에선 “대북 제재가 없었던 과거 1.2차 평양 정상회담과 달리 현재는 대북 제재로 인해 기업들의 경협 사업 추진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남북 회담의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라고 썼습니다. ‘얘기가 나오고, 전망이 없지 않지만’ 역시 확인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이렇게 첫 두 문단에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은 후 나머지는 보도자료와 별 다를 바 없는 소식을 담았습니다.
2000년과 2007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매번 두 정상은 ‘다음 정상회담’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무려 5개월 사이에 3번이나 만났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올해 안에 서울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만나기도 전에 걱정입니다. 언론이 매번 트집만 잡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대통령도 안 갔으면 하는 평양에, 대기업 대표자들까지 따라가서 배가 아픈 것일까요?
#제대로써보자
남북 정상회담 속에서 많은 뉴스가 나왔습니다. 많은 언론 기사 속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른 북한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에서 ‘수뇌 상봉’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역사적인 조미 대화 상봉의 불씨를 문 대통령께서 찾아줬다. 조미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나 노동신문의 성명 등에서 나오는 표현이기에 언론에서는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지만 수뇌라는 표현은 우리 언론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표현입니다. 역시 북한에서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수뇌’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떤 조직, 단체,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리의 인물’을 뜻한다. 여기에서도 ‘북한어’라고 표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능률교육의 한영사전에 따르면 ‘수뇌’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로는 ‘head, leader, chief’가 있습니다.
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에 있었던 포츠담 회담은 공식적으로 ‘연합국 수뇌회담’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수뇌’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실제로 군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을 모두 일컬어 ‘군 수뇌부’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많은 일반적인 단어들이 우리나라 언론뿐 아니라 곳곳에서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언어부터 함께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단일팀도, 아시안게임 단일팀도 사용하는 표현이 달라 작전 수행 당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이팅 대신에 힘내자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어쩌면 영어의 화이팅보다 우리말인 힘내자가 남과북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북한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배제하기보다는 남북이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언어를 언론이 앞장서서 보도했으면 합니다.
#오보의 역사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북한 기자와 남한 기자들이 함께 취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생소하면서도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매번 내보냈던 북한 관련 오보 때문입니다.
2015년 언론은 인민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당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은 현영철 무력부장이 수백 명이 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처형 이유가 군 일꾼 대회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불경죄’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영철 무력부장은 남한 언론 보도 다음날에 조선중앙TV에 나왔습니다. 죽었다는 사람이 부활한 것일까요?
남한 언론의 오보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비공개 현안보고에 나왔던 내용을 검증 없이 받아쓰면서 나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단순히 졸았다는 이유 만으로 처형됐다는 국정원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보도한 것입니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는 1면에 김일성 주석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주말의 동경 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김일성 암살 보도는 조선일보 동경특파원이 들은 카더라 통신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언론은 조선일보 특종을 검증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문이 나오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호외를 냈습니다.
김일성 피격 사망, 김일성이 열차에서 총을 맞았다, 폭탄에 당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카더라 식의 보도가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사망했다는 김일성은 조선일보의 보도 사흘 만에 평양공항에 등장했습니다. 몽고 주석을 만나는 김일성의 모습을 본 시민들은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오보, 그리고 검증 없이 기자의 상상력으로 만든 언론사 기사들이 무려 사흘 동안 대한민국 여론을 조작한 셈입니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는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 애인이며, 김정은과 가졌던 고려호텔 밀회 몰카가 들통나 기관총으로 처형됐다고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8월 말부터 12월까지 ‘음란물’,’공개 총살’,’기관총 처형’,’화염방사기로 잔혹 처형’,’김정은 옛 애인 섹시 댄스 영상’ 등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제목의 기사 여러 건을 보도했습니다.
공개 처형 이유도 사망 날짜도 증인도 다 나와 죽은 줄만 알았던 현송월은 2018년 1월 15일 판문점에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로 등장했습니다. 죽었다는 현송월이 등장했는데도 조선일보는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현송월의 ‘협상 이미지’ 전략, 2015년 중국 때와는 달랐다”라며 그녀의 화장과 머리 스타일을 연예인보다 더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북한 관련 오보가 나올 때마다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국정원의 이야기를 받아 썼을 뿐이다’,’ 북한의 폐쇄성이 만들어 낸 오보이다’라고 변명만 늘어 놓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할 말로는 참으로 구차해 보입니다.
모르면, 검증되지 않았으면 쓰지 않고 보도하지 않으면 됩니다. 기사는 기자의 상상력으로 쓰는 소설이 아닙니다.
# 클로징
자유한국당 정용기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이 너무 황폐화돼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자 출신인 이낙연 총리는 2018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180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60위, 70위 등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은 미국보다도 더 높은 39위였습니다.
언론의 황폐화는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을 포기한 언론사와 기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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