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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일 일요일

아시안게임 단일팀 경기를 통해 본 판문점선언시대의 오늘과 내일


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9월3일  안호국 시사평론가     
  • 승인 2018.09.03 09:53
9월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농구경기장 ISTORA에서 2018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결승전이 열렸다.
남북 단일팀과 중국 대표팀이 맞붙은 이 경기는 2m가 넘는 장신이 즐비한 중국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다.
경기장의 분위기도 단일팀 선수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인구 2억5000만이 훨씬 넘는 인도네시아에서 막강한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는 화교들과 중국에서 원정 온 응원단 등 수천명이 중국팀을 응원하려고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비해 단일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남측에서 온 ONE KOREA 응원단 20여명과 북측 교민 100여명이 다였다.
경기는 시작되자마자 단일팀이 3대7의 열세 전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되는 듯했다. 장신벽에 당황한 단일팀 선수들은 실수를 거듭했고 순식간에 점수는 10대0으로 벌어졌다. 중국팀은 더블스코어 차이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힘도 못 써보고 밀리는가…’ 하는 탄식이 나오려고 할 때 북측과 남측이 함께 한 응원단에서 더 강렬한 응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일팀 선수들의 투지 높은 경기가 연이어 펼쳐졌다.
38대38, 중국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었던 경기는 전반전을 마쳤을 때 동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경기는 이후에도 몇 번의 동점을 기록하며 아슬아슬하고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다. 중국 벤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결승전에 출전한 단일팀을 응원한 남측 ONE KOREA 응원단과 북측 교민들.
“중국! 중국!”을 외치는 중국 응원단과 화교들의 소리는 남과 북이 함께 한 단일팀 응원단의 강렬한 응원에 압도당해 힘을 쓰지 못하였다.
경기와 경기장의 분위기를 장악한 것은 앞서가는 중국팀이 아니라, 끈질기게 따라 붙는 단일팀이었다.
하지만 키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과 심판의 편파적 판정 때문에 박지수와 김한별 등 핵심 선수들의 파울이 쌓이고 로숙영이 일찍 5반칙 퇴장된 것, 골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 등으로 인해 끝내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최초로 꾸려진 여자농구 단일팀은 비록 승부에서 이기지 못했으나 판문점선언이 가져온 변화와 힘을 실감하게 하였다.
결승전에서 여자농구 단일팀이 발휘한 놀라운 경기력은 남과 북이 합치는 결과는 단순한 산술적인 합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여자농구 단일팀의 선전은 ‘분단비용’이니 뭐니 하는 말은 초보적인 계산도 할 줄 모르는 어리석고 불순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코리아가 강대국의 간섭에 매어 살지 않아도 될 만큼 더 강해지는 길, 당면한 경제난을 해결하고 닥쳐올 경제위기를 해결 극복할 길은 남북협력과 통일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과 북의 관계가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남측과 북측의 선수들이 친자매처럼 서로를 위하고 배려했다는 사실은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자카르타의 경기장에서 만난 남과 북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예전과 같은 어색함이나 경계심은 더 이상 없었다. 북측 사람들이 남측을 대하는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북측 교민들은 남측에서 응원 온 사람들을 살뜰히 대하였다.
남측 사람들은 불안감에 얽매이지 않고 북측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다. 이 또한 판문점선언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 중의 하나다.
이처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여자농구 단일팀은 판문점선언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판문점선언의 시대에 맞지 않는 일들도 있었다.
1996년에 열렸던 애틀랜타 올림픽 때의 일이다. 유도 여자 48kg 경기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북측 선수가 승승장구하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 선수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세계 최강자들을 매트에 메다꽂으며 한판승을 이어갔다.
한국선수 경기를 중계하다가 이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게 된 어느 방송사의 해설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질이 훌륭한 선수인데 안타깝습니다. 우리한테 보내주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줄 수 있는 데….”
8강과 준결승전에서도 해설자는 틈만 나면 이 주장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 선수가 결승전에 오르자 이 해설자는 머쓱해졌는지 말문을 닫았다. 이 선수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였던 것이다.
이후 10년 동안 3체급에 걸쳐 세계선수권대회와 국제유도대회 등을 석권한 북의 유도영웅 계순희가 바로 그 선수다.
반북의식, 대결의식에 사로잡힌 그 유도경기 해설자는 계순희가 발휘하고 있는 실력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여자농구 단일팀 결승경기가 끝난 직후 인터뷰에서 남측의 어느 기자가 북측 선수 로숙영에게 “남측 리그에서 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가 로숙영의 맵짠 답변을 들어야 했다.
이처럼 판문점선언의 시대에도 대결의식과 반북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언론계나 정치권에서 훨씬 심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경기대회가 열리면 경기운영에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이나 평창올림픽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경기장이 많이 비어있는데도 표가 매진되는 사태는 연이어 경기가 벌어지는 대회의 특성 등으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자타르카까지 온 남측 단일팀 응원단은 결승전 경기가 열리기 직전까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였다.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표가 매진된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원단 안내를 맡은 교민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갖은 애를 썼지만 20명의 응원단이 들어갈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대한민국농구협회나 인도네시아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경기시작 30분전, 응원단은 응원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나타난 북측 교민들이 도움을 주었다. 응원단은 북측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경기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도움이 없었다면 남북이 함께 펼친 단일팀 응원의 감동적인 장면은 있을 수 없었다.
단일팀 응원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이럴 때는 그저 떼로 들어가야 합네다”라며 자기 손을 잡아 끌던 북측 교민에게 받은 감동을 잊지 못하였다.
이틀 전에 벌어졌던 여자농구 단일팀의 준결승 경기가 끝나자마자 응원단까지 와서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갖은 포즈를 잡던 한국 대사는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데 자기의 직책과 지위에서 부여되는 의무와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연예인 행세나 하는 데 관심이 있는 각료들, 분단과 대결의 관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남북의 화해와 번영, 통일로 가는 길에 방해물이 되는 관료들은 아직 많다.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어떤 견지에서 해야 하는지, 남측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북측의 사업책임자도 있었다.
판문점선언의 시대를 활짝 열려면 해야 할 일이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준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경기장 주변과 거리에서 만난 단일팀 응원단을 알아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One KOREA Number One!”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단일팀 응원단이 펼치는 응원을 경탄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진정어린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판문점선언을 이뤄낸 우리 민족을 성원하는 세계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판문점선언의 시대가 역사적 격변의 시대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판문점선언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일궈내는 시대다. 자기를 얽어매고 있는 분단의 낡은 잔재들을 떨쳐버려야 한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에서 과감히 벗어날 줄 아는 용기와 실력이 필요하다.
판문점선언 시대에는 판문점선언의 높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
안호국 시사평론가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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