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교육감’들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손석춘 칼럼]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서울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원로 사학자’ 이인호는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KBS 이사장 자격으로 국민이 나서야한다며 특정 세력을 부추긴 ‘입장문’의 수준은 놀랍다.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제하의 글은 “정부가 ‘적폐 청산’이라는 포괄적 구호 아래 옛 공산당의 ‘정적 숙청’을 상기시킬 정도로 국가권력을 무소불위로 동원하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도 민노총의 산하기구인 ‘언론노조 KBS 본부’ 일명 새노조는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 상황”이라고 부르댔다.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한 반민주적 행태엔 모르쇠로 일관하며 적폐 청산을 ‘공산당식’이라고 몰아치는 미천한 사고는 접어두자. 공영방송을 온전히 세우려는 파업을 두고 “새 정권의 홍위병”으로 훌닦는 작태는 이른바 ‘국가 원로’로 대접받는 서양사학자조차 노동조합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단숨에 드러내주었다.
▲ 지난 9월4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진행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KBS를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놓겠다는 문구를 새긴 손수건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여기서 80대 ‘석학’ 이인호의 선동 글과 정반대로 10대 고교생의 선한 글을 나누고 싶다. 한겨레에 기고한 “‘노동’도 배우면 안 되나요?” 제하의 고교 1년생—실명을 밝히고 싶지만 이 칼럼에 이름을 담기가 부담스럽다. 못난 어른이다—글은 “노동 교육이야말로 정말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이라고 호소했다.
[관련기사 : 한겨레 “‘노동’도 배우면 안 되나요?” ]
고백컨대 나는 학생의 글을 읽으며 콧잔등이 시큰했다. 바로 이어 전국 곳곳의 ‘민주 교육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기실 몇몇 노동‧인권운동가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청소년들에게 노동 교육이 절실하다는 칼럼과 책을 써왔고 강연도 해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노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기고한 고교생도 밝혔듯이 “외부 강사가 와서 1~2시간 정도 짧은 교육”에 그친다.
‘김상곤 교육감’을 비롯해 다수의 ‘민주 교육감’들이 당선된 지 오래인데 이 순간까지 “교과서에서도 ‘노동’교육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중·고 12년간의 교육 과정에서, ‘노동’에 대해 배울 기회는 거의 전무한 것”이라며 ‘노동 교육’을 고교생이 요청한다면 문제 아닐까. 조희연이 서울시교육감이 된 직후 조선일보는 ‘진보 교육감들의 회동’을 불온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곧장 나는 오히려 ‘민주 교육감’들이 더 자주 회동해 머리를 맞댈 것을 주문하는 칼럼을 썼다. 본란의 지난 글에서 언론귀족(기레기)과 정치귀족(국레기)들의 터무니없는 ‘색깔 공세’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장관과 수석들이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고 촉구한 뜻과 같다.
[관련기사 : 미디어오늘 기레기·국레기와 문재인 정부]
청소년들에게 노동교육은 단순히 ‘찾아가는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된다. 초중고 사회 과목에서 적어도 한 달은 가르칠 정도로 교과서를 개편해야 옳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인호가 스스로 폭로하듯이 노동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 수준이 결코 높지 않아 더 그렇다.
한국은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학 4년생 가운데 노동삼권을 정확히 답할 학생의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학의 병은 중등보다 훨씬 더 깊음을 민주교수협의회 의장을 역임한 김상곤 부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 11월10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물론, 한국 교육이 풀어갈 과제는 적폐처럼 쌓여 있을 터다. 그럼에도 고교 1년생의 노동 교육 요청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노동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진전은 물론 소득중심경제 성공의 열쇠다. 부총리와 민주 교육감들의 지금 자리가 교육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절실한 시대적 요청 앞에 정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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