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78] 영감과 마누라
여인들이 남편을 부를 때 ‘영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남편이나 ‘○○ 아빠’라고도 하지만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은근히 친근감이 가고 무게감도 느껴진다. 영감(令監)은 ‘1.나이 많은 남자를 홀하게 부르는 말 2.나이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자기 남편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3.군수·국회의원·판사·검사 등 지체 있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요즘도 판·검사를 부를 때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내가 영감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남편을 높여 주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마누라라는 말이 ‘마노라’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아내에게는 세자빈이나 궁궐의 비빈에 해당하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남편에게는 당상관에 해당하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내에게는 궁궐의 귀부인에 해당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남편에게는 그보다 약간 낮은(?)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마누라라는 것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세자빈’을 부르던 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기분 나쁜 용어인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낮추고자 하는 겸양의 뜻에서 거부하는 게 아니라면 마누라라고 하는 것도 허(許)하면 어떨까 한다.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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