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영수회담의 '영수'는 '옷깃과 소매'에서 유래
입력2023.10.16 10:00 수정2023.10.16 15:47 지면S18
영수회담의 '영수(領袖)'는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를 이른다.과거 대통령이 여당 당수를 겸하고 있던 시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다.
최근 ‘영수회담’이 불거져 나와 정쟁의 빌미가 됐다. 영수회담은 아주 가끔 언론을 통해 등장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는 없고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다. 일상의 언어가 아니기에 더 낯설다. 이 말이 정쟁을 부르는 까닭은 그 쓰임새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영수는 정당이나 큰 집단의 ‘우두머리’
영수회담의 ‘영수(領袖)’는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를 이른다. 사전에 따라 풀이가 미세하게 다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쓰고, <연세 한국어사전>은 “정당이나 큰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썼다. 연세사전 풀이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한편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선 영수회담을 “한 나라에서 여당과 야당 총재들의 회담”으로 설명했다. 이런 풀이는 최근 정치권에서 회자된 영수회담이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영수(領袖)는 어떻게 우두머리란 뜻을 갖게 됐을까? 말의 생성 과정을 알고 나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긍심도 한층 더 높아진다. 요즘 ‘요령(要領)’이라고 하면 적당히 잔꾀를 부리는 짓으로 통한다. 그것은 반은 맞는 얘기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뜻이 있다.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가 요령의 본래 의미다. 要(요)는 애초에 허리, 즉 여성이 잘록한 허리에 두 손을 댄 모습을 그린 글자다. 이후 허리가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중요하다’란 뜻을 갖게 됐다. ‘령(領)’ 역시 주로 ‘거느리다, 다스리다’란 뜻으로 쓰이지만 본래는 ‘옷깃’을 뜻하는 말이다. 옷깃은 저고리에서 목에 둘러대어 여밀 수 있게 한 부분이다. 이 ‘옷깃’은 옷 전체의 중심이라, 여기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나 ‘통솔하다, 이끌다’ 등의 뜻이 나왔다.
그 ‘요’와 ‘령’이 합쳐져 사물의 핵심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요령(要領)이란 말이 나왔다. ‘요령부득(要領不得)’이라 하면 ‘사물의 주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 즉 ‘말이나 글의 줄거리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은 ‘요령’이 무언가를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로 주로 쓰인다. ‘핵심’과 ‘잔꾀’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다. 우리말 변천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인 셈이다.
그 ‘요’와 ‘령’이 합쳐져 사물의 핵심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요령(要領)이란 말이 나왔다. ‘요령부득(要領不得)’이라 하면 ‘사물의 주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 즉 ‘말이나 글의 줄거리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은 ‘요령’이 무언가를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로 주로 쓰인다. ‘핵심’과 ‘잔꾀’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다. 우리말 변천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인 셈이다.
‘영수회담’ 대신 ‘대표회담’이 적절
‘옷깃을 여미다’란 관용구가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옷차림과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현충원 같은 곳을 참배하거나 국민의례 등을 치를 때 우리는 옷깃을 여민다. 이때 ‘여미다’란 바로잡아 단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옷의 여러 부분 중 왜 특별히 ‘옷깃’을 여미었을까? 그만큼 목둘레를 감싸는 옷깃을 중요시했다는 뜻이다. 우리말 관용구가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영수회담의 ‘수(袖)’는 소매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역시 옷을 입을 때 상징이 되던 부분이다. 본래 우리 한복에는 지금처럼 소지품을 넣는 주머니가 따로 없었다. 그 대신 간단한 소지품을 윗저고리 소매에 넣었다. 윗옷의 좌우 팔 끝에 있는 ‘소매’는 주머니 역할까지 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한복 소매가 둥글고 크게 나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요(要)’와 ‘령(領)’과 ‘수(袖)’의 공통점은 모두 의복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중요한 곳이라는 점이다. 그 가운데 옷깃과 소매, 즉 ‘령’과 ‘수’가 어울려 ‘우두머리’란 뜻을 이루었다. ‘영수회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요즘 일반 언중(言衆) 사이에선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에 권위주의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은 과거 대통령이 여당 당수를 겸하고 있던 시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다. 언론사(史)로 보면 1990년대 전후 이 말의 사용이 급증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라는 말처럼 영수회담이 나올 때 늘 따라붙는 게 ‘회동’이다. ‘~와 회동했다’ ‘이날 회동은’ 식으로 잘 쓰이는 이 표현 역시 권위주의 표현의 잔재다. 우리 사회 특정 계층, 가령 정치권이나 재계의 유명 인사, 영향력 있는 인물에만 이 표현이 쓰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와 만났다’ ‘이날 만남은’ 정도면 충분하다. 일상에서 ‘회동했다’란 말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요즘 일반 언중(言衆) 사이에선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에 권위주의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은 과거 대통령이 여당 당수를 겸하고 있던 시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다. 언론사(史)로 보면 1990년대 전후 이 말의 사용이 급증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라는 말처럼 영수회담이 나올 때 늘 따라붙는 게 ‘회동’이다. ‘~와 회동했다’ ‘이날 회동은’ 식으로 잘 쓰이는 이 표현 역시 권위주의 표현의 잔재다. 우리 사회 특정 계층, 가령 정치권이나 재계의 유명 인사, 영향력 있는 인물에만 이 표현이 쓰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와 만났다’ ‘이날 만남은’ 정도면 충분하다. 일상에서 ‘회동했다’란 말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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