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장마,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은 계속 비가 내릴 거라는 현지 일기 예보.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을 오르기로 한 우리에게 기대나 설레임, 낭만과 여유같은 건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백두산에서 온통 장대비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기전부터 마음이 공연히 비장해진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천지는 꽁꽁 언 얼음 위로 눈이 덮혔다. 백두산 서파 산문은 폐쇄됐다. 2023.6.4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 [사진 제공-오현경]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천지는 꽁꽁 언 얼음 위로 눈이 덮혔다. 백두산 서파 산문은 폐쇄됐다. 2023.6.4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 [사진 제공-오현경]
천지 돌비석 위로 눈이 가득 쌓였다. 2023.6.4 백두산 서파 [사진 제공-오현경]
천지 돌비석 위로 눈이 가득 쌓였다. 2023.6.4 백두산 서파 [사진 제공-오현경]

하지만 백두산 가는 길이 어찌 그리 야박하기만 하랴. 백두산 순례에 동행하는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민족의 대단결을 염원하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또한 한평생 간직할 뜻깊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백두산 순례는 우리 민족의 시원 역사와 성스러운 산의 정기, 조상들의 숨결, 여전히 자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포들, 그리고 동포들이 지켜가는 생활문화를 체험하는 장이다.

이번 순례에서 처음으로 단체 비자를 받았다. 6월 처음 중국 땅을 밟았을 때와 달리 이번엔 사전 비자 없이 중국에 입국했으니, 변화가 많은 현지 사정을 감안하면 하나의 진전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단체비자의 함정들. 아뿔싸! 단체 비자는 숙박업소 '예약 확인서'를 요구했고 우리와 계약한 현지 가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지정한 가이드 한 명을 의무적으로 써야만 했다. 이게 뭐임!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다. 단체 비자로 중국에 입국한 여행객은 윤동주 생가, 명동촌, 봉오동 전투전적지나 청산리전투전적지, 조중접경지 등 방문이 금지되고 있었다. 아마도 지안(集安) 고구려박물관이나 환도산성, 광개토대왕비 등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우리 일행도 화룡시에 있는 청산리 전투전적비를 찾아가다가 한국인 관광객 입장금지 소식을 확인하고는 송강하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백두산. 올해는 시시각각 천변만화하는 백두산의 묘술을 직접 보고 싶었다.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에서 출발한 백두산 서파. 하늘은 맑고 햇살이 따사로운 전형적인 여름 날의 풍광이 아름답다.

천지에서 바라본 백두산. 노란 꽃무리가 아름답다. [사진 제공-오현경]
천지에서 바라본 백두산. 노란 꽃무리가 아름답다. [사진 제공-오현경]
맑은 하늘 아래와 구름을 향해 내달리듯 산줄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사진 제공-오현경]
맑은 하늘 아래와 구름을 향해 내달리듯 산줄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는 1,455개 계단. 성수기를 맞아 백두산 천지에 오르려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는 1,455개 계단. 성수기를 맞아 백두산 천지에 오르려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사진 제공-오현경]
서파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사진 제공-오현경]
서파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사진 제공-오현경]
장대비를 맞을 각오를 하고 올랐건만 다행히 맑게 드러난 천지의 장엄한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사진 제공-오현경]
장대비를 맞을 각오를 하고 올랐건만 다행히 맑게 드러난 천지의 장엄한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사진 제공-오현경]
금강대협곡 [사진 제공-오현경]
금강대협곡 [사진 제공-오현경]
금강대협곡 입구 [사진 제공-오현경]
금강대협곡 입구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숲속에서 금강대협곡을 끼고 산보를 할 수 있다. 70~80대 어른들도 거뜬히 다닐 수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숲속에서 금강대협곡을 끼고 산보를 할 수 있다. 70~80대 어른들도 거뜬히 다닐 수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이튿날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낙석과 추락의 위험이 있어 백두산 북파, 서파, 남파 산문을 폐쇄하고 입산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종일 비는 내리고...온천도 한번 하고 구경삼아 동네산책에 나섰다.

백두산 서파 매표소 앞. 새벽부터 내린 비로 관광객들이 입산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서파 매표소 앞. 새벽부터 내린 비로 관광객들이 입산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 [사진 제공-오현경]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 동네 산책로 정경 [사진 제공-오현경]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 동네 산책로 정경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동네 산책로 정경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동네 산책로 정경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산책로에 있는 여우동굴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산책로에 있는 여우동굴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재래시장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재래시장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야외 온천 [사진 제공-오현경]
송강하진 야외 온천 [사진 제공-오현경]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데... 7월 15일에도 새벽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당연히 백두산 북파, 서파, 남파 산문이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입구까지 가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이번엔 남파 산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간간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점차 잦아들더니 갑자기 해가 뜨고 날씨가 맑아졌다.

남파 산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많이 끼고 돌개바람이 불어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올라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져서 입산이 허용됐다. 

"정상까지 못올라가고 돌아와야 될 수도 있다. 백두산 정상까지 못올라도 표는 반환되지 않으니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라"는 소리가 연신 시끄럽다.

입구에서 입산을 기다리면서 이제 최소한 중턱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점점 맑아지는 걸 보니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백두산 남파 매표소 앞. 새벽부터 내린 비로 낙석과 추락의 위험이 있어 입산이 허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 매표소 앞. 새벽부터 내린 비로 낙석과 추락의 위험이 있어 입산이 허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로 오르면서 바라본 북녘의 산하. 이때까지는 날씨가 좋아 북녘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로 오르면서 바라본 북녘의 산하. 이때까지는 날씨가 좋아 북녘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사진 제공-오현경]
압록강 최상류 조중 접경지. 철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이 흐른다. 이 철책선은 백두산 정상까지 쭉 이어졌고 백두산 북쪽 영토 안으로는 초소가 많이 생겨났고 총든 군인들이 경계근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 제공-오현경]
압록강 최상류 조중 접경지. 철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이 흐른다. 이 철책선은 백두산 정상까지 쭉 이어졌고 백두산 북쪽 영토 안으로는 초소가 많이 생겨났고 총든 군인들이 경계근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정상에 설치된 철책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정상에 설치된 철책 [사진 제공-오현경]
7월 백두산 남파 정상의 온도는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이하이다. 물안개가 자욱해 시야는 1미터가 채 안되고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사람이 정상적으로 걸을 수 가 없다. [사진 제공-오현경]
7월 백두산 남파 정상의 온도는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이하이다. 물안개가 자욱해 시야는 1미터가 채 안되고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사람이 정상적으로 걸을 수 가 없다. [사진 제공-오현경]

준비한 옷이란 옷을 다 꺼내입고 체온유지를 위해 우비까지 껴입었다.

음식점은 대피소가 되었고 한 여름에 겨울옷을 3만원 정도에 팔았다.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일기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7월 중순 한 여름이 무색하게 백두산정의 강추위와 사람을 날려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 1미터도 채 안되는 시야는 말 그대로 경이롭고 두렵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백두산 남파 정상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일기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7월 중순 한 여름이 무색하게 백두산정의 강추위와 사람을 날려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 1미터도 채 안되는 시야는 말 그대로 경이롭고 두렵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백두산 남파 정상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아, 마치 지금의 남북관계를 웅변하는 듯한 백두산의 칼바람이다.

백두산 남파 정상. 뜨끈한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고 담벼락 아래에서 추위를 견뎌내고 있다. 손에는 한반도기를 들고..[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 정상. 뜨끈한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고 담벼락 아래에서 추위를 견뎌내고 있다. 손에는 한반도기를 들고..[사진 제공-오현경]
한 여름 백두산 남파 정상의 매서운 추위를 이기는 길. 가열차게 맥주를 들이키는 일이다. [사진 제공-오현경]
한 여름 백두산 남파 정상의 매서운 추위를 이기는 길. 가열차게 맥주를 들이키는 일이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정상의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내려온 남파 산문 앞. 너럭바위에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편안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정상의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내려온 남파 산문 앞. 너럭바위에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편안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조선족자치주 연길. 밤새 굵은 빗방울이 내리는 천변 풍경 [사진 제공-오현경]
조선족자치주 연길. 밤새 굵은 빗방울이 내리는 천변 풍경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순례를 마치고 연길공항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순례를 마치고 연길공항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 산문 입구에서 도시락으로 식사. 오른쪽 건물 뒤가 북측 지역이다. 초소에 총든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남파 산문 입구에서 도시락으로 식사. 오른쪽 건물 뒤가 북측 지역이다. 초소에 총든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사진 제공-오현경]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 식당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 식당에서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서파 정상에서 도시락으로 식사하는 모습  [사진 제공-오현경] 
백두산 서파 정상에서 도시락으로 식사하는 모습  [사진 제공-오현경] 

한중관계가 점점 나빠지고 있고 한국 관광객을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통일농사는 8월 23일~27일 '우리민족 대단결을 위한 백두산 순례'를 규모 있게 꾸리고 잘 준비 할 계획이다. 

또 2023년 한 해를 정리하고 2024년 새해를 백두산에 맞이할 '2024년 신년 백두산 순례'도 올해 12월 30일~2024년 1월 3일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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