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적용할 최저임금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21일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부터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노사 간 치열한 공방이 본격화됐다.
이날 노동자위원들은 시급 10,890원을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으로 제출했고, 사용자위원들은 23일 6차 전원회의에서 시급 9,160원 동결안을 최초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폭등한 물가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물가는 근 14년 만의 최고치인 5.4%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급 차질이 심화하며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가져왔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로 인한 곡물 공급 차질까지 더해지며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5월 국수는 1년 전 대비 33.2%, 소금은 30.0%, 밀가루는 26.0% 가격이 상승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5월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7.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층의 물가 체감도는 더 악화한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지출에서 식품 가격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 물가는 상승하는데 생활비를 줄이려고 해도 식료품비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 소비를 줄일 수 없는 처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는 주거·수도·광열(22.7%), 식료품·비주류음료(21.7%), 보건(13.0%) 순으로 지출 비중이 높았다. 반면, 소득 5분위 가구는 음식 숙박(13.3%), 교육(13.2%), 식료품·비주류음료(13.2%) 순으로 나타났다.
필수 생계비에 대한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가구는 물가가 오르면 가만히 있어도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3.2% 증가했고,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의 소비지출은 1.7% 증가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위기… 최저임금 인상하는 국가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고물가의 경제위기 상황이 고조되면서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카고와 LA에서 법정 최저임금을 시간당 현행 14달러에서 14.5달러로 인상하였고, 캘리포니아는 2023년부터 모든 사업장 최저임금을 15.5달러(19,900원)로 인상하기로 했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시간당 14,300원(6.6% 인상), 16,000원(25% 인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일본 역시 2025년까지 전국 평균 시간당 최저임금 1,000엔(9,600원) 이상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칠레는 노사정의 합의로 14.3% 인상 추진을 결정했고, 호주는 19,000원(5.1% 이상) 인상을 추진한다.
물가폭등 시대, 소비 확대로 내수시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극적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펴는 것이다.
최저임금과 가구생계비
역대 정부를 통틀어 임기 첫해 가장 큰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첫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이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고물가 시대에 지출을 줄이고 싶어도 줄이지 못하고 더욱 늘어나는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이를 통한 소득 양극화 개선을 강조했다.
노동자위원들이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를 대표해 내놓은 최초요구안은 시급 10,890원, 월급 2,276,010원(주 소정근로시간 40시간, 월 기준시간 수 209시간)이다.
“‘최저임금’은 한 사람의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인 ‘생계비’가 가장 중요한 결정기준이 되어야 한다”면서 ‘가구생계비’가 기초로 돼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가 복수의 가구원을 두고 생활을 해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최저임금법 제4조)은 노동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이다. 하지만 이 기준을 제대로 반영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사례는 거의 없다.
권순원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간사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 5.1%는 ‘경제성장률(4%)+소비자물가 상승률(1.8%)-취업자증가율(0.7%)’로 산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임위는 지금까지 비혼단신의 실태생계비만 고려해 왔고, 최저임금 시행 35년간 가구생계비는 고려하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생계비는 여러 가구 유형 생계비 가운데 가장 적다.
최임위가 제공한 ‘가구원수별 생계비’를 보면, 생계비가 가장 낮은 비혼단신 노동자 생계비만 하더라도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월 환산 209만 원)을 훨씬 넘는 220만 원 이상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최저임금은 9,160원(월 191만 4,440원 209시간 기준)으로 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달 제출한 ‘최저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는 가구의 상당수는 비혼단신 가구가 아닌 다인‧복수의 가구원이었다. 평균 가구원 수는 2.94명이다.
비혼단신 가구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이 2.94명이 생활해 가는 노동자 가구 생계비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두말할 것이 없다.
지금까지 가구원 수는 고려되지 않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계비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적용돼 온 것이다. 현재의 최저임금(월 191만 4,440원)이 최임위가 내놓은 2인 가구 생계비 332만원, 3인 가구 451만원, 4인 가구 585만원 등 가구원 전체 평균 337만원 수준에 가닿으려면 아직 멀었다.
이에 노동계는 비혼단신 취업자 1인 가구 유형부터 외벌이, 맞벌이 부부, 한 부모, 한 자녀, 두 자녀 등 8가지 가구 유형별 적정 실태생계비를 도출했다. 그리고, 산출된 적정 실태생계비 시급 1만3608원(월 284만4070원)의 80% 수준인 시급 10,890원(월 209시간 기준 2,276,010원)을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등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세계 주요국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꺼내 들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가 내수 등 소비 진작을 통해 임금노동자들의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이며,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택한 것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지금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내수진작, 소비활성화 정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은 곧 최고임금이나 다를 바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 계속되는 물가폭등과 금리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는 더욱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이후 더욱 악화하는 저성장 고물가 시대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저소득 계층을 비롯해 모든 분위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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