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리퍼브? 외국어 범벅 보도자료
- 김희곤 강해중 기자 (hgon@idomin.com)
- 2022년 06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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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용어 순화 노력에도
용어 설명 없이 외국어 쓰기
"공공 언어 순화 안 하면
국민과 소통 막힐 수도"
일상생활에서 외국어·외래어가 익숙해진 탓에 우리말로는 뜻이 무엇인지 퍼뜩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처럼 외국어·외래어 홍수 속에서 우리말을 잊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문·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는 여전히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원인 중 하나는 공공 기관에서 내는 '보도 자료'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올해 <경남도민일보>는 올바른 공공 언어 사용을 위해 12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리퍼브센터, 스마트폴리스, 워케이션. 무슨 뜻일까. 여전히 언론 매체에는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곤란한 단어가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리빙랩, 팸투어, 포토존, 에듀테인먼트, MOU, 이벤트 등 우리말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고, 그러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뜻을 전달하기 좋은데도 그렇지 않은 매체 언어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신문·방송과 공공 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공공 언어'와 관련해 외국어, 외래어, 한자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국어문화원연합회가 지난해 7∼8월 만 19세 이상 성인 1100명에게 공공 언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물었더니 '낯선 한자어 등 어려운 단어(63%·중복응답)', '외국어·외래어(37.6%)'를 꼽은 응답이 1∼2위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언론 보도 등으로 접할 수 있는 '정책 용어(69.6%)'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응답 비율도 높았다.
설문 조사자에게 공공 언어 중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꼽아 달라고 했더니 리빙랩, 매뉴얼, 언택트, 벤치마킹, 크리에이터, 채무·채권자, 교부, 차상위 등을 쉽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남지역 매체 살펴보니 = 도내 주요 일간지와 방송 보도 등을 살펴보면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거나,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외국어·외래어·한자어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MBC경남은 창원시 정책을 전달하면서 '수소모빌리티', 여성 농업인 출산 지원과 관련해 '바우처', 항공우주청 사천 유치 추진과 관련해 'TF 출범' 등 자막을 썼다. 순서대로 수소 이동·교통수단, 이용권, 전담반 출범 등으로 고쳐 쓸 수 있는 단어다.
KBS창원 등 여러 언론사는 김해시가 중고 로봇 등을 수리·수선해 새로운 제품 수준으로 복원하는 사업 추진과 관련해 '리퍼브센터 구축' 표현을 썼다.
리퍼브(refurb)는 '새로 꾸민다'는 뜻을 가진 '리퍼비시(refurbish)'의 준말이다. 가전·가구 등 유통업계에서 흠이 있거나 반품된 제품 등을 다시 손질해 싸게 되파는 것을 말한다. '새활용센터 구축'으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최근 남해군이 추진하는 '워케이션' 사업도 여러 언론사에서 보도했다.
워케이션은 일하다 뜻의 'work(워크)'와 휴가·방학 등을 뜻하는 'vacation(베이케이션)'의 합성어다. 최근 회사 사무실 같은 고정된 장소가 아닌 휴가지 등에서 업무를 보면서 휴가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업무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휴가지 원격 업무' 정도로 쓸 수 있을 텐데 <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남일보> 모두 그런 표현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3곳 언론사 모두 워케이션이 "포스트 재택근무의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 속에는 트렌드, 크리에이터 등 외국어도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공공 기관이 각종 정책이나 소식을 보도 자료로 전하면서 신문·방송 등 매체를 통해 외국어, 어려운 한자어 등이 그대로 전달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워케이션 소식과 관련해 남해군 보도 자료를 찾아보니 워케이션, 포스트, 트렌드, 크리에이터 등 단어가 나왔다.
◇공공 기관도 한몫 = 2017년 3월 국어기본법이 바뀌면서 공공 기관은 공공 언어를 쉽게 쓰기 위한 노력을 점차 체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도 자료 속에는 여전히 외국어, 외래어, 한자어가 많다.
하동군은 지난 7일 보도 자료로 하동국민체육센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출입 인증 체계를 도입·운영한다고 알리면서 'With(위드)-코로나', 'AI' 등 표현을 썼다.
국가적으로 공공 기관에서 위드 코로나 대신 '단계적 일상 회복'이나 '생활 속 방역' 표현을 쓰는 것과 차이가 났다. 또 보도 자료에는 AI가 인공지능을 뜻한다는 내용이 어디에도 없었다.
올 상반기 경남도·경남교육청, 18개 시군 등 공공 기관 보도 자료를 살펴보면, 원스톱, 캠페인, 챌린지, 인프라, 커뮤니티, 거버넌스, 로드맵, 라이브커머스, 마케팅, 컨설팅, 스토리텔링, SNS, 업로드, 이벤트, 인센티브, 시너지, 로비, 아카이브, R&D 등 외국어를 우리말로 설명하지도 않고 쓴 사례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해당 보도 자료가 바탕이 돼 같은 외국어를 사용한 기사 보도도 적지 않다.
도내 여러 공공 기관이 보도 자료를 내면서 누리집(홈페이지), 누리소통망(SNS) 등 우리말 순화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면도 있어 아쉬움이 더 크다. 올해 들어 '찾아가는 공공 언어 교육(경남교육청)', '공공 언어 바로 쓰기 운동(남해군)' 등을 하는 공공 기관도 있다.
공공 기관은 우리말 사용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2021 공공 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조사> 연구 보고서에서 "공공 언어가 쉬운 말로 순화되지 않을 때 기관과 국민 간 소통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민은 응당 누려야 하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곤 강해중 기자 hgon@idomin.com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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