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2년 6월 8일 수요일

 


[바른말 광] <962>뚱딴지같은 자막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 이진원 교열부장


①그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뚱딴지야.

②이맘때 장날이면 말린 감자나 뚱딴지가 많이 나와.

③전봇대에 쓰는 뚱딴지는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사기나 유리로 만들어야 해.

여기에 나온 세 ‘뚱딴지’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 ①은 ‘행동이나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엉뚱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②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돼지감자’, ③은 ‘전선을 지탱하고 절연하기 위하여 전봇대에 다는 기구’인 것. 소리만 같을 뿐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셋을 헷갈리지 않고 훌륭히들 가려 쓰고 있다. ‘뚱딴지’라는 낱말만 홀로 있는 게 아니라 문장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인 것. 동음이의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말무리(언중)가 이처럼 문맥을 통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동음이의어와 헷갈리는 것으로는 다의어가 있다. 두 가지 이상 뜻을 가진 말이다.

④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쳤다.

⑤이 의자는 다리 하나가 짧아 보이네.

⑥다리가 부러진 안경은 전혀 쓸모없지.

여기에 나오는 다의어 ‘다리’들은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동음이의어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음이의어는 사전에서 각각 다른 단어로 취급하는 데 반해 다의어는 한 단어로 다룬다. 다의어는 하나의 올림말에 여러 뜻풀이가 달려 있는 것.

언젠가 교육방송 프로그램 ‘한국기행’을 보는데 한 출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장독대 옆에 부추밭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요. 그거를 캐서 뿌리를 뜯어서 옮겨 심었더니 지금 굉장히 많이 벌은 거죠.”

그런데 이 말을 옮긴 자막은 이렇게 화면에 나왔다.

‘장독대 옆에 부추밭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요. 그거를 캐서 뿌리를 나눠서 옮겨 심었더니 굉장히 (돈을)많이 번 거죠.’

먼저, ‘벌은’을 ‘번’으로 고친 건 잘한 일이었다. 모든 ‘벌다’는 ‘벌고-벌어-버니-번’으로 리을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번’이 옳았다. ‘놀다’를 ‘놀은’이 아니라 ‘논’으로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돈을)’을 덧붙인 건 잘못이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벌다: 식물의 가지 따위가 옆으로 벋다.(잎이 나고 가지가 벌다.)

출연자는 이런 뜻으로 ‘벌은 거죠’라고 한 것. 부추가 많이 퍼져서 밭을 이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작진이 ‘벌다’의 뜻을 동음이의어 ‘일을 하여 돈 따위를 얻거나 모으다’로 착각해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자막을 달았던 것. 몰랐거나, 깜빡 속은 것이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