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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정 기자
- 승인 2021.11.1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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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길, 여의도서 2021 전국농민총궐기 개최
‘신자유주의 농정 철폐, 농민기본법 제정, 식량주권 실현’ 외쳐
“해방 이후 농민들이 언제 사람대접 한번 받아 본 적 있습니까. 농산물 가격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관료들 눈치만 보고 정치권에 매달리며 ‘저곡가 적폐’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농산물이 남아도는데 미국 농산물 팔아주기 위해 ‘수입개방 적폐’에도 시달렸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땅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농민을 무시하는 적폐. 이렇게 3대 적폐가 농민들을 짓눌렀습니다.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돌며 ‘저 땅이 우리 농민들의 땅이었으면’, ‘저 농산물의 가격을 우리가 정해봤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_전농 트랙터 행진단 서군 대장 위도환
‘노동자’들의 기세가 ‘농민’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이 10월20일 총파업과 지난 13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평등사회 실현, 한국사회 대전환’의 요구를 뿜어낸 데 이어, 농민들도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투쟁의 결심을 높여 서울 여의도에 모였다.
지난 8일 제주를 출발해 도시·농촌 가릴 거 없이 한반도 남쪽 구석구석을 행진한 후 서울에 도착한 트랙터가 농민들의 마음을 대신했다. 트랙터는 땅을 갈아엎는 농기계다. 이날 무대 양 옆에 자리한 두 대의 트랙터는 단순히 땅을 갈아엎는 농기구가 아니라 세상을 갈아엎는 결심을 담은 농기구였다.
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전국쌀생산자협회, 전국사과생산자협회,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농민의 길’은 17일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농업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농정대전환’의 물꼬를 트기 위한 ‘2021 전국농민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농민들은 ▲농민기본법 제정 ▲식량주권 실현 ▲농지를 농민에게 ▲기후위기 대응 ▲공공농업으로 전환 등의 구호를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을 말하다
박흥식 농민의길 상임대표가 대회사를 위해 무대에 올랐고, 박 상임대표는 먼저 대회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경찰에 막혀있는 농민들의 대회 참여를 보장하라며 쓴소리했다. 그는 “아무리 농민이 그림자 취급받지만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분개했다.
대회사에선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하고 농업적폐 청산을 위한 투쟁의 결심을 내비쳤다. 박 상임대표는 “촛불항쟁으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더니 이제 ‘촛불이 뜨겁다’고 농업과 농민을 내팽개친다. 태풍과 긴 장마, 갑작스러운 한파까지 농민들은 재난에 떠밀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잠겨있는데 농민들을 위해 정부가 한 것이 뭐가 있는가”라고 호통쳤다.
이어 “자연재해 악조건 속에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물가를 잡는다’는 이유로 검역 주권까지 포기하며 농민을 잡고 있다”고 꼬집곤 “국가의 책임 농정, 재해보상법을 통해 농사지을 환경을 만들도록, 농민이 직접 가격 결정권을 갖도록 투쟁에 나서자”고 외쳤다.
‘식량주권 실현’ 대책 없는 정부
‘쌀 수급안정대책’은 양곡관리법 제16조 2항에 따라 ‘매년 10월 15일까지 기획재정부 및 생산자단체의 대표 등과 협의해 대책을 수립·공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최근 쌀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하는 데 생산자단체 의견을 배제해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농촌은 기후위기의 여파로 흉년 중 흉년을 겪고 있다. 역대 최저 쌀 생산량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미 WEP(유엔세계식량계획)는 코로나19의 경제적 여파로 ‘급성 식량 위기에 처한 인구가 2020년 1억 3,500만 명에서 2021년 2억 7,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젠 ‘식량이 부족해도 언제든지 수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이 공표되자 농산물, 곡물 주요 수출국들은 앞다퉈 수출을 멈추고 교류를 중단한 바 있다. 이제 국가의 식량안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으며,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것은 국가를 지키는 일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대책이 없다. 이날 “현장과 괴리된 적폐농정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샀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 최장수 장관은 ‘코로나19로 인한 농민피해는 증명할 수 없다’,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농지전수조사 못한다’, ‘쌀수급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어느 것 하나 농민을 위한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식량자급률 45.8%… 역대 정권 중 최악
계속 하락하는 한국의 식량자급률도 문제다. 세계 곡물자급률은 평균 101%에 달하지만, 한국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해 OECD 회원국 중 ‘식량 수입국가 세계 5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60%에서 55.4%로 하락했다. 2019년엔 국내 식량자급률이 45.8%였다. 역대 정권 중 최저로 최악의 기록을 남긴 것.
그러나 역시 정부는 ‘수급에 문제없다’는 말로 일갈하며 산지 쌀값이 인상되는 것을 누르기 위해 시장 방출을 계획 중이다. 쌀값을 내동댕이 쳤고, 그 속에 농가 손해에 대한 대책은 역시나 없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은커녕, 농민들 굶겨 죽이는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농민들은 “코로나19이후 원유 등 원자재 값 급등으로 모든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농산물은 전체 물가지수 1000분비 중 65.4, 공업제품은 333.1, 서비스·기타는 551.5임에도 문재인 정부는 물가상승의 원인이 마치 농산물에 있는 양 여론몰이를 하며 농산물 가격 하락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지난해 농민들에게 가격안정을 약속하며 도입한 ‘쌀 자동시장격리제도’는 정부가 시행 자체를 하지 않으면서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상황이 이럼에도 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 농업은 배제됐고, 탄소를 흡수하는 유일한 산업이 농업과 임업임에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산업구조 전환 정책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에서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은 국가정책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날 대회엔 진보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이 찾아와 한국농정을 위해 노력하겠고 발언했다. 그러나 여당과 진보당을 대하는 농민들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민주당 농어민위원장을 맡은 이원택 의원이 무대에 올라 ‘민주당의 부족했고, 혁신하겠다’고 했지만 농민들은 “무대에서 내려와라”, “말로만 하지 마라” 등을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고 한 참가자는 무대 앞까지 나와 분노를 표출했다. 반면, 김재연 진보당 대선예비후보(진보당 상임대표)는 농민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 세 가지 공약을 제시해 큰 박수를 받았다.
김재연 상임대표는 “식량주권 없는 국가주권은 있을 수 없다. ▲국가책임 농정 시대를 열겠다”면서 “농민들에게 가격 결정권을 돌려드리고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 농민기본법 제정에 앞장서겠다”는 것, “국가 전력산업의 역군, 국토균형발전의 보루인 모든 농민에게 매년 150만씩 농민수당을 지급하고 식량주권을 지키는 공직자답게 대우하겠다”는 것, “재벌대기업, 토건세력의 배만 불리고 농민과 농촌을 짓밟히는 세력에 나서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위해 농민들도 함께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신자유주의 농정 철폐! 농정 대전환!”
지금까지 한국 농정은 농업을 포기하는 ‘시장경제 중심’의 정책이었다. 농민들은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 농정’으로 인해 각종 보조금 받으면서 덤핑판매로 몰아치는 값싼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농촌은 규모화됐고, 규모화한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 간의 소득격차는 12배 이상으로 벌어져 있다.
따라서, 농민들이 말하는 ‘농정대전환’은 적폐 농정, 시장경제 중심인 농정을 갈아엎고, 농업·농촌·농민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전환을 의미한다. 참가자들은 식량주권을 실현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박흥식 상임대표는 “국가가 농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농촌에서의 삶이 주체적으로 변할 수 있어야 소멸에 대응할 수 있고, 공공재인 식량의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책임져야만 전환의 시대에 국민의 식량주권이 실현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농정을 철폐하고 새로운 농정으로 대전환하자는 우리들의 주장”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민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 정치의 주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 교체’로 나가자”고 힘줘 말했다.
농민들이 주장하는 ‘농민기본법’엔 이날 울려 퍼진 당사자들의 목소리 ‘▲농업을 국가 미래전략으로, 시장 중심에서 국가책임 농정 ▲농산물의 공공재를 법으로 인정 ▲식량주권 실현 ▲농지개혁으로 농지 공공성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농민들은 ‘농민기본법 제정’ 외에도 ▲경자유전의 원칙이 실현되는 농지공개념 도입 ▲밥 한 공기 300원 보장과 식량자급률 법제화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공공수급제 실시·식량자급 체제 구축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와 권리보장, 성평등한 농업정책 실현 ▲농촌소멸 대응(농민수당 확대 등) ▲통일농업 실현 등을 이야기했다.
흙 묻은 손으로 농민 스스로 농민수당을 만들겠다며 서명운동을 나섰고, 농민의 힘으로 농민수당이 확대된 것처럼 농민기본법 제정도, 한국사회 대전환, 농정대전환도 농민들의 투쟁으로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이날 참가한 농민들의 결심이다.
노동자·농민·빈민, 1월15일 총궐기서 만난다
농민총궐기대회에 연대하러 온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대표들도 농민들의 사회대전환 투쟁을 지지하며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촛불 4년, 경부동산 불평등, 자산, 소득, 교육, 일자리 불평등, 코로나 불평등 상황이 임계치를 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 앞장서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 상황을 혁파하고 농민도 숨쉬고 살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 때가 됐다”고 강조했고,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도 “거리로 내몰린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우리 손으로 이 잘못된 사회를 바꿔야 한다. 더 이상 거리로 내몰리지 말고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이 함께 살 수 있는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힘을 보탰다.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도 “보수당을 몰아내는 대선, 지방선거에 우리 민중들이 앞장서자”고 입을 모았다.
이날 전국순회 대행진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트랙터처럼 “물가안정 운운하며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을 갈아엎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농민들과 노동자, 빈민, 민중들은 새해 1월 15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다시 모여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민중총궐기에 나서겠다고 결심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낭독한 후 행진을 시작했다. 적폐 농정,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사망을 선고하는 의미를 담아 상여, 만장행렬이 앞장섰고 행진대열은 국회 앞에 도착해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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