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조선) 국방력 강화의 의미

북한(조선)은 강력한 자위력을 가지기 위해 왜 그토록 심혈을 바치는가. 김정은 총비서는 국방을 강화하는 사업이 조선의 당과 정부와 인민이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적이고 사활적인 중대 국사로 되는 근거와 이유를 ‘우리 민족사의 교훈’과 ‘조선혁명의 요구와 특수성’으로 설명한 바 있다.(2021.10.11 국방발전전람회 개막식에서의 기념연설)

북한(조선)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수난을 겪어왔으며 오늘도 세기를 이어 지속되는 적대 세력들의 항시적인 위협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열점 지대

적대 세력들은 전략전술 무기체계의 개발생산과 시험 등 조선이 취하는 조치들을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하고 이를 억제한다고 하면서 무력 증강과 전쟁 연습으로 긴장된 정세를 조성하고 있다.

이것은 흑백전도의 수법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해나가고 있는 북한(조선)의 전략적 지위와 국제적 영향력을 거세하려는 세력들의 필사적 발악이다.

전통적인 유럽-대서양지역을 대신하여 오늘 세계지정학적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지역은 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있고 역사적으로 누적된 국제적 성격의 문제들이 겹쳐있는 열점지대이다.

한(조선)반도는 유라시아대륙과 태평양 사이의 교두보에 위치한 전형적인 세계 변두리 지대이며 요충지이다.

그래서 세기를 두고 동란과 불안정이 끊이지 않았다. 구미 열강들의 문호개방 강박에 뒤이어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청일, 노일전쟁의 참화를 입었으며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조선을 대륙침략의 첫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의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한 이틀 후에 벌써 38°선을 경계선으로 한(조선)반도의 이남지역을 강점할 비밀모의를 하였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요충지를 동서대결의 축소판, 세계패권 전략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장으로 간주하였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조선 전쟁은 동서 냉전 시대의 첫 열전, 핵 대결 시대의 첫 전쟁이었다.

전쟁 발발 10개월 전에 소련이 핵시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핵독점이 허물어졌다. 전쟁 초기부터 미국은 조선은 물론 중국과 소련에 대한 핵 사용 계획을 검토하였으며 전황이 불리해지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핵 공격 위협을 가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에 핵전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 소련의 핵 보복에도 대비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미국은 핵 공격의 실행날짜를 1954년 5월로 정하였다.

그러나 10개월 전인 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핵전쟁을 포한한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조선은 그날을 ‘전승기념일’로 정하고 오늘까지 ‘전승’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한편 미국은 ‘연전연승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굴욕을 당하였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클라크는 회고록에서 “나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 되였다는 부끄러운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토로하였다.

조선의 핵보유와 세계의 세력균형

창건되어 2년도 되지 않은 청소한 나라가 전략적 요충지에서의 전쟁을 세계화, 핵 전쟁화 하려는 계략을 좌절시키는 방패가 되었다. 1950년대의 전쟁은 한(조선)반도 평화가 세계평화의 한 부분이며 전략적 요충지의 안정이 동북아시아 나아가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군사 정치적 환경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변했으나 그것은 여전히 위험을 배태하고 있다. 유명무실화된 정전체제하에서 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냉전시대 한(조선)반도는 핵전쟁의 도화선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1957년 미국의 첫 전술 핵무기들이 일본으로부터 남조선으로 이전, 배비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도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소련, 중국도 핵보유국이다. 한(조선)반도의 북측지역은 수십 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한 비핵지대, 핵무기 공백 지대로 존재하였다. 핵열강들의 군사 정치적 대결이 극도에 달할 경우 핵 전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곳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힘의 공백 지대이다.

냉전종식 후 미국은 남조선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고 표방하였지만 바로 그 시기에 ‘유사시 북을 점령하여 통일을 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작전계획 5027’을 공개하였다. ‘핵개발 의혹’을 터뜨리며 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검토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핵태세 검토(NPR)보고서’에서 조선에 대한 핵 선제 타격까지 상정하였다.

결국 조선은 미국이 ‘반테러 전쟁’의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을 감행한 시기에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나라는 전쟁터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힘의 대결구도가 크게 바뀌었다.

조선의 핵보유는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한 자위권의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화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갖추어진 전쟁억제력은 더욱 강위력한 힘으로 부각되어 세계의 세력균형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자위의 원칙, 국방력강화의 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여온 조선은 지역의 핵불균형 상태를 끝장내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판도에서 평화와 안전수호를 위한 대외활동을 주동적으로 전개해나갈 수 있는 역량으로 장성하였다.

‘제2의 6.25전쟁’을 방지하는 힘

첫 핵 시험부터 11년 후인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시켜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조선)이 먼저 달라붙은 것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과 직결된 전략적 요충지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 나오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새로운 북미 관계의 수립이 약속되었다.

그러나 미, 남은 수뇌합의를 행동에 옮겨지지 않았다.

오늘도 미국과 조선의 적대관계, 교전상태는 청산되지 않았으며 ‘5027’을 계승한 ‘작전계획 5015’에 따라 미남합동군사연습이 감행되고 있다. ‘5015’에는 조선의 핵심시설 700곳 이상에 대한 선제타격계획과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작전’이 포함되어 있다.

한(조선)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이 국제전으로 비화될 위험성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한미합동군사연습에서 검증되어온 작전의 범위는 한(조선)반도를 넘어 일본, 괌과 하와이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포함되고 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바라보면 중미대립의 격화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 등 한(조선)반도 정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조선은 전쟁의 방패가 될 최첨단 무기들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과거 5년간에 개발 생산된 전략전술 무기들이 집결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기념 연설(10월 11일)을 한 김정은 총비서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사소한 자만과 답보도 없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우려들과 위협들을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갖추는데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요충지를 겨냥한 침공 기도를 좌절시켜 전쟁의 방패가 될 힘과 수단을 갖추어나가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조선이다.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고 공언하며 ‘제2의 6.25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위적 국방력 강화에 심혈을 바치는 나라가 평화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현 시기 복잡하게 전개되는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의 실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