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2019년 이후 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하는 이 협상은 미국이 새롭게 제시한 전략자산 전개 비용 분담 요구를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는 얼마 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한반도가 정전이후 60여년 만에 대 지각변동을 시작하고 세계가 이를 주시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미 방위금 분담금 협상(이하 협상으로 표기)은 향후 한반도 상황은 물론 한국민의 혈세 사용과 관련해 주목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협상은 △남북한과 미국 등이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평화체제 달성이후에도 주한미군 계속 주둔 등 한미동맹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미국이 한미연합 훈련 등을 계기로 한반도 및 그 주변으로 전략자산(핵추진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 장거리 전략 폭격기 B-1B와 B-52 등)을 전개하는 비용을 한국이 분담하라며 방위비분담 항목에 ‘작전지원’을 신설하고 그에 따라 분담액 증액을 요구해왔고 한국은 ‘방위비 분담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협상의 중요성을 살피기 위해 그 근거부터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이 협상은 미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 성격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하위법인 방위비분담금협정(SMA)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SMA의 성격은 그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특성을 담고 있어 미국이 갑, 한국이 을인 한미동맹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은 그 4조에 담겨 있다. 미국에 일방적인 특혜를 부여하는 조항인 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로 되어 있다. 이 4조의 첫 부분 ‘상호합의에 의하여’는 SOFA에 의한 합의를 가리킨다.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고 단지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협상이나 보완 등의 규정도 없고 폐기되지 않는 한 미국의 ‘권리’를 행사하는 조건에서 무기한 주둔이 가능하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 1953년에 만들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21세기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조약으로 그 집행 과정에서 수반되는 주한미군 시설과 구역을 한국이 제공하기 위해 SOFA가 1967년 발효되었다. 이어 SOFA에 포함되지 않았던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경비를 한국이 일부 부담토록 예외조치로 SMA이 만들어졌다. SMA는 한국에 부담을 가중시키기 위해 서면협상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SOFA, SMA 등을 통해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특혜를 누릴 수 있는 핵심적인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의 군사적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등에 대한 합당한 의무조차 지지 않으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도 매번 증액되어 한국은 2018년 현재 1조원 가까운 천문학적인 액수를 부담하고 있다.
SOFA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즉, 주한 미군이 한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한국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적 편리를 제공하는 사항을 규정한 한·미 간의 협정이다. 당연히 미국이 슈퍼 갑이다. 평택 미군 기지가 세계 최대가 된 근거의 하나다.
SOFA는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한미는 1991년 SMA를 만들어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유지비용의 일부를 한국이 부담토록 해왔다. SMA는 SOFA 5조 1항(미측은 한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부담한다)의 예외적, 특별 조치를 규정한 협정이다.
SMA에 의해 2018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은 9천602억 원으로 책정돼 있다. 한미 두 나라는 1991년 제1차 협정을 시작으로 총 9차례 특별협정을 맺었으며 2014년 타결된 제9차 협정은 오는 12월31일로 마감되기에 2019년 이후분에 대해 연내에 타결을 봐야 한다. 미국과 SMA를 맺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제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만 동원되는 게 아니라 미국 본토의 병력과 자산도 증원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미국의 전략자산전개 비용 등을 구조적으로 한국에 분담시키는 항목 신설을 수용토록 요구하면서 고 있다. 미국의 이런 요구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규정된 ‘권리’를 근거로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은 SMA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에 관한 비용 문제이기 때문에 작전지원 항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있으나 법리적, 현실적 이유 등으로 미국의 요구 일부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와 SOFA, SMA에 이어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하게 되면서 미국이 한국의 군사주권을 상당부분 대행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미국이 대북 카드로 기회만 있으면 내미는 선제공격 카드도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100% 부담하라’고 한 발언도 한미동맹관계의 특수성을 근거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불평등한 군사동맹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앞세워 주한미군기지의 오염 책임을 인정하고 조치에 나선 적이 2009년 이후 없다. 이는 불평등한 SOFA,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공동환경평가절차(JEAP) 때문이다. SOFA, LPP 등이 한국에서 볼 때 너무 불평등한 것은 이들 협정 등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 때문이다. 용산미군기지 오염 문제를 규탄할 때 SOFA를 들먹이지만 사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지적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50년대 말부터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하는 등 맘먹은 무기는 다 남한에 들여왔다 빼가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군이 2017년 상반기 군산비행장에 배치한 무인폭격기 등이 그런 예다. 논란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도 미국이 이 조약 4조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었고 한국은 ‘허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한미 간에 사드 배치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는 언론보도나 정치권의 설명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기만적 언사에 불과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은 필리핀, 일본의 미국과의 군사동맹 내용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방위협정은 1991년, 1947년에 합의된 기지 협정이 폐기되면서 미군이 필리핀에서 전면 철수했다. 그러나 9.11사태이후 미국과 필리핀의 안보조약이 재건되어 2014년 두 나라는 조약이 아닌 협정의 형식으로 12개 항의 방위협력강화협정(ECDA)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필리핀에 영구적인 군 주재나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핵무기의 필리핀 진입은 금지된다. 미군은 이 협정에 따라 필리핀 정부가 허가하는 지역, 주로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군은 환경 보호 조치 등은 필리핀 법규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 협정은 미국, 필리핀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에서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두 나라 외무장관이 이 조약의 적용문제 등을 협의한다. 무력을 동원한 공격 등이 두 나라에 의해 취해졌을 경우 이를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한다. 이 협정은 10년이 시한이며 어느 한 쪽이 종료의 의사를 통보한 뒤 1년이 지난 뒤 폐기될 때까지 유효하다.
국가 간 관계는, 서로 상대방의 손바닥 안에 있는 협상 카드를 확인하면서 벌리는 게임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의 경우 남측 정부가 트럼프와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한반도 비핵화 추진의 큰 판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과거 정부가 취했던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언론이나 통일운동권은 어떤가? 언론과 운동권은 정치권이 아니다. 정치권이 하지 못하는 논리를 펴야 한다. 그러면서 정치권을 리드라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한미군에 대해 한국 정치권과 운동권, 언론이 침묵하는 것을 미국, 중국 등이 깔보면서 업신여길 것이라는 점을 상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남북한 정상이 실질적 종전선언과 군축 조치에 대한 합의를 하자 주한미군은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평화체제가 합의된다 해도 그 철수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을 연일 내놓고 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군 또는 철수 가능성을 내비치자 미 의회는 주한미군을 2만2천명 이하로 감축할 경우에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트럼프를 제외하고 여야나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한미동맹과 지속과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합창하고 있다.
미국 조야가 주한미군을 결사적으로 챙기는 것은 그 전략적 중요성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을 겨누는 비수이면서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고 한국군의 대북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등 그 효용성이 엄청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은 한미간에 진행되고 있는 제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반영되어 한국의 부담이 경감되어야 한다. 분담금 인상은 절대 불가하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의 우월적 지위와 한국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앞세워 한미군사훈련이나 대북선제 공격 카드를 대북협상 용으로 휘두르고 있다. 만약 한미동맹관계를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 관계 수준으로 정상화시킨다면 대북 선제공격 카드를 미국이 활용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의 대북 협상 태도가 정상적이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하는 등 믿을 수 없는 군사대국으로 국제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 비핵화 합의이후 이를 이행치 않는 등의 방식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다. 한미군사관계의 정상화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급선무다. 중국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능력을 지녔고 지금도 사드로 취했던 관광 제한을 다 풀지 않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형식의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역행한다.
한미동맹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할 필요성은 미국의 20세기 초 한반도 정책이었던 카스라-테프트밀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1905년 7월 카스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한 뒤 그해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국방권을 일제가 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미국은 1919년 3.1항일운동이 발생하자 미국 공관이 일제의 만행을 외면하고 미국 언론의 보도를 철저히 통제해 일제를 실질적으로 지원했다.
미국은 일제가 항복한 이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문제를 제외함으로써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정책에서 카스라-테프트밀약을 참고하거나 준수한 결과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현재와 같이 유지할 경우 미국은 그 특권을 양보하거나 포기할 것으로 생각키 어렵다. 정치권이 이를 외면한다 해도 언론, 통일운동진영은 반드시 그 문제점을 지적해 시정토록 견인해서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최근 남북한 관계개선에 대해 엇박자를 놓는 일이 벌어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는데 주한미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철도 및 도로 개설 작업에 제동을 거는 것과 같은 작태는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은 남북한 관계 개선이 진전된다 해도 한미군사동맹을 앞세워 그것을 무력화시킬 개연성이 적지 않다. 국가 간 관계에서 궁극적인 근거는 조약이나 협정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 불가를 외친다 해도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인 ‘권리’를 행사하려 덤벼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한미군사관계의 정상화는 사드 논란이 심했던 2016-17년에 그것을 추진할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였지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학계는 이를 놓쳐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전후의 시기에도 한미군사동맹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최근의 사드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치권, 시민단체, 학계가 적극 나서서 한미동맹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적으로 여론화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한국의 정치권이나 학계, 통일운동 진영 등이 한미군사동맹에 대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모습은 19 세기 말 조선 시대보다 더 심각하다. 지금은 한국이 정보강국이라고 하는데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는 불평등한 한미군사관계에 대해 침묵하는 비정상은 시급히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군 철수를 주장할 때 미 대사관이 아닌 청와대 앞에서 하는 식으로 시각 교정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관계의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때를 놓친다. 시급히 한미동맹을 정상화시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구축하고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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