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고양 저유소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언론은 앞다퉈 속보를 내놓았고, 관련 기사만 수백 건이 넘게 보도됐습니다.
같은 사건 다른 제목
– 외국인 국적을 부각한 연합뉴스
– 부실한 관리를 부각한 한국일보
박대용 기자의 글처럼
연합뉴스와
한국일보의 고양 저유소 화재 보도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연합뉴스가 제목에서 강조했듯이 누가 불을 냈느냐를 중심으로 보도했다면, 한국일보는 왜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언론이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실화가 아닌 고의적 방화처럼 보도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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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는 속보를 통해 고양저유소 화재 용의자가 저유소 불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용의자는 불이 난 것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
CCTV를 보면 용의자 A씨가 풍등을 쫓아가다 서 있는 장소 주변에는 높은 나무와 담장이 있었습니다. 좌측에 화재 모습이 보이지만, A씨 편에서는 나무 때문에 가려진 상태였습니다. 화재 현장에 접근하고 싶어도 높은 담장 때문에 불가능해 보입니다.
Q. 피의자가 풍등을 날린 경위는.
A. 10월 6일 오후 8시쯤 인근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아버지 캠프 행사에서 풍등 날리는 행사가 있었다. 산 뒤에서 풍등 2개가 날아왔는데, 피의자가 호기심에 풍등 1개에 불을 붙였고 순식간에 그게 올라가는 바람에 벌어진 그런 상황이었다.
Q. 이후 상황은.
A. 풍등이 날아가는 걸 보고 쫓아가다가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놀라서 도망간 것은 아니고 날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지를 하려고 했다가 못한 것이다. 잔디에 떨어지는 장면은 못 봤어도, 떨어지는 건 확인했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고양경찰서 형사과장의 질의응답을 보면 용의자 A씨는 풍등을 쫓아가 떨어지는 것은 확인했지만, 불이 난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용의자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이 난 사실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을 보면 화재 현장을 지켜본 것처럼 묘사됩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할 수 있는 보도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연달아 보도한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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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이승륜 기자가 20분 간격으로 송고한 기사. 기자의 억지스러운 주장이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승륜 기자는 소방기본법 제12조 1항을 언급하며 스리랑카인이 불법 풍등 날리기 혐의로 벌금형을 피하기 어렵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자는 소방기본법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작성한 듯 보입니다.
제12조(화재의 예방조치 등) ①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은 화재의 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나 소화(消火) 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는 물건의 소유자ㆍ관리자 또는 점유자에게 다음 각 호의 명령을 할 수 있다. <개정 2017. 12. 26.>
1. 불장난, 모닥불, 흡연, 화기(火氣) 취급, 풍등 등 소형 열기구 날리기, 그 밖에 화재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행위의 금지 또는 제한
소방기본법
제12조를 보면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풍등 날리기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했지, 풍등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용의자 A씨가 실화 혐의와 손해를 책임질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귀향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자의 예상이지 법의 판결은 아닙니다. 마치 기자가 판사처럼 법적 처벌까지 내린 셈입니다.
관련 기사를 20분 간격으로 송고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동남아 부처님 오신 날 인기’라는 문장이 굳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도 듭니다.
언론사가 사건만 터지면 관련 기사를 여러 개 보도하는 이유는 포털사이트에서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포털 뉴스를 보면 언론은 이번에도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비슷하거나 억지스러운 기사를 여러 차례 송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널리즘을 강조했던 손석희 사장마저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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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1부와 2부에서 용의자를 다르게 표현했다. 그러나 자막은 여전히 국적을 표기했다. |
“풍등 날리다 고양 저유소 화재 유발 혐의 스리랑카인 체포”
“풍등 날리다 고양 저유소 화재 유발 혐의 용의자 체포”
이주민 지원센터 ‘친구’라는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활동하는
조영관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목에서 꼭 국적을 밝히지 않아도 보도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국적을 표기했고, 댓글에는 ‘테러’라는 단어와 함께 외국인 혐오 발언들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난민, 불법체류자들 제대로 관리 안하더니 드디어 우리나라도 테러 발생했네. ㅉㅉㅉ 갈수록 더 심각한 테러들 많이 일어날거다.’
‘이러고도 난민들 더 수용할거냐???’
‘외노자 아웃’
‘외국인들 함부로 들이지마라 다문화니 뭐니 하면서 이래저래 혜택만 주고있으니’
‘국가시설에 어떻게 스리랑카인이 들어갈수가 있나요? 이해가 않되네요.테러가능성도 조사해야할듯.’
조영관 변호사는 ‘ 독일언론협회의 보도준칙에 따르면 소수자 보호와 선입견 방지를 위해 범죄 용의자의 국적과 종교는 보도금지를 원칙으로 한다’며 ‘우리나라의 범죄 관련 보도에서는 국적, 종교가 제일 먼저 등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변호사는 ‘외국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외국인이 증가하면 범죄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게 조사되는 데는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라며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언론의 보도 방식에 따라 시민들의 반응도 여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백 건의 고양 저유소 화재 기사를 보면, 대한민국 언론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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