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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6일 토요일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의 진짜 의미는

18.10.06 20:06l최종 업데이트 18.10.06 20:07l




지난 노무현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장동료' 노용석 교수가 최근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그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을 연구했고 유해 발굴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 과정, 피학살자들의 유해 발굴 과정,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책표지
▲  책표지
ⓒ 산지니

그는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유해발굴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여 해석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1일까지 저자와 이 책과 관련하여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 발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
 
 노용석 교수
▲  노용석 교수
ⓒ 노용석
 
- 지난 1950년 7월경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실은 국가 공권력의 명백한 잘못이었음이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 입증되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의 학살피해자들의 유해발굴은 정작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 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보나?
"국가가 가해자임에도 민간단체에 의해 발굴이 실시된 것은 외형적으로 볼 때 법적, 정치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의례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국가는 민간인 피학살자와 같은 죽음에 대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근본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가는 많은 자본을 투여해 전사자 유해 발굴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고 국가위주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학살자의 유해 발굴은 위와 같은 취지로 볼 때 국가에게는 커다란 반사이익이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방치된 죽은 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적군이라 할지라도 전사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적 조건이며 의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과정으로서의 유해 발굴이 아니라 사회의 의례를 완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유해 발굴이 필요한 것이다."

- 많은 시간 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은 사회의 밝은 부분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학살 피해자들이 어둠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보는가?
"민주화과정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유해 발굴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인 피학살자의 죽음은 개인이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게는 크나큰 아픔일 수 있지만, 국가에게 이 죽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는 미미할 뿐이었다. 민주화된 정권 역시 피학살자에 대한 유해 발굴이 큰 범주에서 볼 때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창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민주화와 반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과도하게 국가정체성만을 강화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인식은 바뀌어야 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큰 범주에서 '민주화' '반민주화'라는 카테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정체성이 자리 잡는 순간에 '개인의 기억과 위령'이 얼마나 보장되는가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그 죽음들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면, 당연히 국가는 집단성 이외에 개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의례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은 개별적 위령의 보장을 떠나 사회적으로 기념되어, 다시는 그러한 악행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기념 구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개인의 기억과 위령', 그리고 '사회적 의례'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죽음들이 아직까지 정착할 수 없는 것이다."

유해 발굴,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
 
 노용석 교수
▲  노용석 교수
ⓒ 노용석

-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민간인 학살관련 유해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해발굴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어떠한 문화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나?
"유해발굴의 상징성은 단순히 인간의 뼈를 지상으로 수습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실 유해발굴은 고고학적이고 법의인류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잊힌 소수자의 기억과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유해발굴은 의례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하여 누구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되어있던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은 비정상적 죽음을 당하여 암매장되어 있던 이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의례적 행위이며, 또한 이들의 기억과 존재를 사회적으로 승화시켜, 다시는 이러한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유해 발굴을 주도하였는데 당시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을 현장에서 직접 실시하면서 느낀 점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유해발굴을 실시하면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현재까지 한국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시스템적인 측면이 많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발굴을 실시하는 조직 및 체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유해발굴을 바라보는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싶어 하지만, 발굴된 유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기념하고 위령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유해발굴의 역사가 짧아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기념과 위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체계가 원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국적인 규모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 이후 특별히 경상남북도를 중심으로만 민간인 학살 유족회 결성과 진상규명 요청 운동이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경상남북도의 많은 지역은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은 지역이었으며, 설사 인민군이 들어왔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인민군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초반 낙동강을 중심으로 약 3개월간의 지난한 교전이 지속되었으며, 이후 1950년 9월 이후 전황이 빠르게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많은 지역은 이승만 정부가 전쟁초기 빠르게 후퇴를 하는 바람에 제법 긴 '인공' 시기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북한군에 동조하거나 '부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역혐의'는 1950년 9월 이후 다시 남한정부가 인민군 점령지역을 재수복했을 때 상당히 많은 보복과 학살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건을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라고 말한다.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다른 유형의 학살과 비교해 볼 때 개인적 원한과 보복이 짙게 깔려 있으며, 상당히 잔인한 형태의 린치가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해당 사회의 전반적 경향은 공포와 침묵으로 바뀌게 되고, 많은 경우 누구도 학살과 관련한 담론을 거론하지 않게 된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경우 1950년 9월 재수복 이후 상당수의 부역혐의자에 대한 보복이 행해졌고,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피학살자 유족 혹은 주민들은 4.19혁명이 발생했다 할지라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어떤 규탄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향후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노용석 교수는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폭력과 소통>(공저), <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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