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동 정세분석] 3차 대전의 시작인가, 다극화의 분기점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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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동의 안전보장을 흔들다
지난달 8일 트럼프 대통령은 공언해 온대로 이란과의 핵합의를 이탈하였다. 2015년 7월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참여해 이란과 합의한 국제적 핵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은 불과 3년도 안 돼 미국의 이탈로 결정적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안보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미국의 내셔널인터리스트(National Interest)지에 “이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한 결정”으로 미국의 안보뿐 아니라 동맹(이스라엘)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즉각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프랑스, 독일, 영국의 정상과 외교수장들이 연이어 미국을 방문해 핵합의 유지를 설득하였지만 허사였다.
이란핵합의(JCPOA)는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기적인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내용의 국제적 협정이다. 미국은 이 협정 이후에도 군산복합체와 이스라엘 등의 반발로 이행에는 소극적이었고, 핵합의 범위 밖에서 제재를 계속했지만, 그럼에도 이란은 서방의 오랜 경제제재에서 일정정도 벗어나 나라의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유럽 각국은 물론 중국도 일대일로 사업계획에 의거, 이란과의 대규모 무역과 투자거래를 활성화하였다.
보다 본질적으로 이란핵합의는 중동에서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안전보장협정의 성격을 가진다.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정상회의 의장은 “이란핵합의는 유럽과 전 세계 안보에 유익하다”며 이 협정이 가진 안전보장 성격을 강조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스라엘과 군산복합체는 당시에도 시리아 전쟁에 이어 이란 핵개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란과의 전쟁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부터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로 이어지는 연이은 전쟁에 엄청난 전비를 탕진하고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다. 수많은 인명의 희생 위에 군산복합체의 배만 불린다는 내외의 비판과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식 세계주의(Grobalism)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일으켰다. 그 결과 오바마 정부는 시리아보다 더 큰 이란과의 전면전쟁에 미국이 끌려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고, 이를 위해 이란과의 핵합의를 미국만이 아닌 국제협정으로 만들어 군산복합체와 이스라엘의 전쟁 주장을 누른 것이다. 그러나 미 의회는 친이스라엘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이 이란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이유로 90일마다 협정의 타당성을 검토, 거부할 수 있는 ‘의회 승인법’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트럼프 정부가 이란핵합의를 ‘역사상 최악의 합의’이라고 비난하고 이탈을 결정한 법적 근거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외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란핵합의 이탈을 강행한 의도에 대해 세계적인 논란이 일었다. 하나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FP)의 분석으로, 미국이 다시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켜 민중봉기에 의한 정권교체를 도모하거나 또는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도록 유도해 “예방전쟁”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를 실행하기라도 하듯 지난달 23일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에 대해 핵합의 개정 사항으로 우라늄 농축 중단, 핵 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핵 개발프로그램 관련 모든 정보 공개,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 중단, 시리아에서 병력 철수,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 중단 등 12가지 요구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아울러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기업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도 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사실상 협정에 참여한 영, 프, 독도 제재를 받기 싫거든 합의를 파기하라는 것이다. 유럽은 갈림길에 섰다.
대서양동맹의 붕괴 위험
다른 하나는 ▲미국이 사실상 중동문제에서 발을 빼려는 조치이자 ▲유럽과의 전통적인 대서양동맹(Atlantic Alliance)을 결정적으로 흔드는 조치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보여준 나토(NATO)의 방위비분담 인상 요구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세계기후협약 이탈 등 세계질서를 이루는 주요 협정, 조약으로부터 이탈은 기존 미국중심의 패권질서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 외교협회(CFR)의 리차드 하스(Richard Haass) 회장은 지난 3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죽음(Liberal World Order, R.I.P.)”이란 논문에서 이란핵합의 이탈 역시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포기의 일환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미국의 핵합의 이탈과 알쿠드스(예루살렘)로 미대사관 이전은 모두 중동문제에서 미국의 중재자적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에서의 미군철수 선언 또한 본질상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본질상 대립되는 양 측면을 갖고 있다. 만약 유럽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이란핵합의에서 이탈하고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재개한다면 이란과 전쟁 위험은 결정적으로 고조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일 환영할 일이다. 반면 유럽이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핵합의 유지를 위한 독자적 정책을 편다면 전쟁 위험은 거의 사라지고 미국만 빠진 국제협정으로 유지될 것이다. 중동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반발하겠지만 그렇다고 독자적으로 이란과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이란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첨단의 무력을 갖추고 러시아로부터 S-300, 400 등 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은 물론 시리아, 레바논 헤즈볼라 등과 연대도 강력해 포위된 쪽은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 시설과 시리아 내 이란 군사고문단에 대해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한 것은 시리아, 이란 등의 반격을 유도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의도라는 보도도 나오지만 이미 ‘세계경찰’ 포기선언을 한 미국은 참전하지 않는다. 이란과 전쟁은 그 어떤 전쟁보다 미국을 수렁에 빠뜨릴 것이고 또 러시아의 참전을 불러와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미국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핵합의 서명국인 영, 프, 독은 미국의 압박을 거부하고 이란핵합의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란 역시 유럽이 합의를 유지하는 한 핵합의에 남을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러시아, 중국이 이같은 입장을 지지함은 물론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때만 해도 영국은 앞장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옹호하고 병력도 파견하였다.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전쟁에서도 유럽은 미국의 뜻을 따랐다. 러시아, 중국도 미국의 위세에 눌려 막아 나서지 못했다. 당시 세계는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주권국을 침략해도 누구하나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미국의 패권질서에 순응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이란핵합의를 이탈해도 추종국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거꾸로 핵합의 서명국만이 아닌 EU 전체가 들고 일어나 미국을 규탄했다. 지난달 16일 28개 회원국이 모인 EU정상회의에서 도날드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미국을 “적보다 못한 친구”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핵합의 유지와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 보호를 위한 EU 차원의 독자 대책을 세울 거라고 발표하였다. 또 독일 메르켈 총리는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보호에 의존할 수 없고, 자신의 손안에 자신의 운명을 쥐어야만 한다”고 자주적 권리를 선언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18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미국이 반대해온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드 스트림(Nord Stream)2’ 공사 강행을 결정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러시아와 이란핵합의 유지에 뜻을 같이하는 등 유럽이 러시아와 화해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중심의 국제질서가 확실히 바뀌고 있다.
흔들리는 달러 기축체제
EU가 핵합의 유지를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등 유럽측이 NATO에 대한 지출을 늘리지 않을 경우 모종의 대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연이어 미국은 유럽산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 보류하였던 일괄 관세조치를 1일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하여 유럽을 분노케 하였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대서양동맹국인 유럽과도 무역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을 더욱 밀어내는 조치다. EU는 즉각 보복관세를 선언했다. 이제 유럽은 진정 대미 자립인가 아니면 계속 끌려 다닐 것인가를 가르는 분기점에 섰다. 이렇듯 미국의 이란핵합의 이탈은 단지 이란과의 전선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과의 대결전선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인터리스트(National Interest)는 <대서양동맹의 끝(The End of the Atlantic Alliance)>이란 기사에서 “미국은 세계동맹체계(the global alliance system)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너무 빨리 별 주저 없이 포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미국우선주의”는 “오로지 미국만(America only)”을 의미한다고 보도하였다. 그 결과 미국중심 패권질서의 근간인 대서양동맹이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EU가 핵합의 유지와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의 보호를 위해 내놓은 조치는 석유 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대체하고, 미국의 제재에 의한 유럽 기업의 손실분을 EU 차원에서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EU 중앙은행(ECB)이 이란 중앙은행에 석유거래를 유로화로 직접 송금해주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이란 거래기업 보호를 위해 ‘대항입법’을 발동할 것이라고 EU 집행위원회가 밝혔다. 사실 유럽의 금융시스템은 미국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EU가 이와 별개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미국의 보복 또한 거셀 것이다. EU가 이를 이겨내려면 중국, 러시아와 더 긴밀히 연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석유, 가스 거래는 유로보다는 위안화 사용이 증가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3월 금본위에 의거한 위안화 석유거래 선물시장을 개설했다. 중국의 이란 원유 수입량은 이란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석유 가스 생산국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도 달러 대신 위안과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투데이(RT)는 미국의 제재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달러보다 위안화를 더 선호하는 통화로 만들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주지하듯이 달러의 기축성은 1971년 금본위 폐지 이후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한다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합의에 의거하고 있다. 패권국인 미국과 석유부국 사우디의 합의에 세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이른바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은 각국 정부가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비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무역거래가 거의 달러로만 이뤄지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주요 산유국들이 달러 대신 다른 통화로 갈아타고, 수입국인 EU마저 석유거래에 달러를 버린다면 달러 기축체제는 심대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통화의 다극화도 촉진하고 있다.
이후 주목해야 할 점은 ▲유럽과 러시아의 화해가 기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및 NATO의 대러 적대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유럽이 미국의 제재와 압박을 이겨내고 과연 이란핵합의를 유지할 것인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연대강화로 중동 내 반(反)이란 연합이 출현할 것인가 등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제는 분야별로 90일, 180일의 유예기간이 적용되는데, 이란의 주력인 석유 관련 제재는 180일 경과 후인 올해 11월부터 실행된다. 그 사이 미국은 서명한 유럽 3국을 비롯한 EU에 압박을 강화할 것이고,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도발도 심심치 않게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러시아, 이란, 중국, 터키의 대응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렇듯 미국의 이란핵합의 이탈은 중동의 패권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미국 패권질서의 근간인 대서양동맹과 달러 기축체제마저 위태롭게 만든, 그야말로 트럼프 정부의 미국우선주의 노선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결정적 조치가 될 것이다.(3편에 계속)
손정목 편집기획위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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