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상규 기자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는 반드시 반응한다"윤수현 기자 승인 2018.06.28 08:45
편집자주 = 경제에 위기가 없던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널리즘은 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호황은 있어도 저널리즘 호황이라는 말은 없다. 다른 영역이기 때문일 게다. 방금 전까지 저널리즘은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터널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는 질문의 방식을 묻는다. 정해진 결론은 없다. 미디어스는 질문의 방식을 묻고 있다고 판단되는 언론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의 방식은 다양하며 다양함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박상규 기자는 원 직장인 오마이뉴스를 나온 후 더 유명해졌다. 국가권력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가짜 살인범’으로 살아온 희생자들을 조명한 ‘재심’ 시리즈를 기획했다. 변호사, 전직 경찰 등과 함께 기획한 재심 시리즈는 스토리펀딩에서 5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금했다. 그가 취재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가짜 범인 희생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중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재심>으로 재탄생해 호평을 받았다. 오마이뉴스를 나온 후 무직자 신분에서 이뤄낸 일이다.
박상규 기자가 기획한 <재심 시리즈> 스토리펀딩(위)과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재심(아래) (스토리펀딩 홈페이지, 영화 포스터 캡쳐) |
박상규 기자는 재심 시리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창간했다. ‘왓슨’이라 불리는 후원자가 셜록에 후원하고, 후원금을 기반으로 사회에 감춰진 진실을 찾겠다는 포부로 만든 언론이다.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로 유명한 이명선 기자(전 채널A 기자)를 영입했다. 광고 없이 탐사보도, 르포만으로 지속성을 가지는 언론을 꿈꾸고 있다.
창간 후 1년이 지났다. 박상규 기자는 “너무 순진했고, 이상적이었다”라고 고백했다. 2017년 2월 셜록을 창간할 당시 꿈꿨던 ‘1년 후의 셜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0여 명의 기자를 꿈꿨지만 기자 수는 창간 때보다 줄었다. 자금 상황도 획기적으로 좋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박상규 기자는 “창간 때 가진 초심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많은 언론계 종사자가 “후원자 모델의 언론이 생존할 수 있을까, 좋은 기사가 회사의 지속성을 담보해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셜록을 지켜보고 있다. 이에 미디어스는 22일 셜록의 박상규 기자를 만나 셜록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상규 기자는 “상황이 어려운 건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는 반드시 반응한다”고 확신했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미디어스) |
Q.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어떤 매체인가
A. 시대에 역행하는 매체다. (웃음) 짧은 동영상, 색다른 형식으로 독자의 눈길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셜록은 긴 호흡의 기사를 쓴다. 이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찾는 탐사보도를 지향한다. 진실과 사실은 속보로 전달이 안 된다.
사건의 이면과 맥락을 분석해야 진실이 보인다. 진실이 드러나면 시민이 숙고할 수 있고 권력이 바뀔 지점이 만들어진다. 셜록은 그런 측면에서 진실을 보도하려는 매체다.
Q. 왓슨(후원자)이 셜록을 특별하게 만든다
A. 왓슨은 <셜록>에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내는 독자를 뜻한다. 종이신문으로 따지면 구독자 개념이다. 물론 왓슨에게만 따로 제공되는 기사는 없다. 다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터디 모임 기회, 기자들의 강의 수강권을 준다. 독자가 셜록에 후원하고, 우리는 후원금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Q.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A. 왓슨의 후원금과 스토리펀딩 모금액 외에는 수익 모델이 없다. 아직 셜록의 치수가 작으므로 현재까지는 무리가 없다. 뉴스타파나 셜록처럼 후원자가 언론에 돈을 기부하는 구조가 언론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가 반응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
Q. 실제로 독자가 좋은 기사에 반응하고 기꺼이 돈을 내는가
A. 그동안 독자들이 기사에 돈을 내지 않은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가 기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후원하려는 마음이 생겨야 가능한 일이다. 후원자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언론사가 있다면 “당신들이 그만한 가치의 기사를 쓰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Q. 셜록이 탄생한 지 1년이 넘었다. 회사 운영에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다
A. 우선 운영을 하면서 여러 실수가 잦았다. 경험이 없었고, 경영자 정신이 부족했다. 쉽게 생각한 경향도 있었다. 막연하게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심 프로젝트’처럼 잘된 경험을 두고 오만함에 빠진 것 같다. 순진했고,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한다. 1년 동안 어려웠던 것은 우리가 좋은 기사를 생산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상황이 어려워도 기자들의 연봉은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 적은 급여를 주고 기자를 부리는 것은 기사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올해 열심히 해서 작지만 강한 매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셜록이 지향하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Q. 셜록이 집중하고 있는 취재원은 누구인가
A. 셜록이 중앙권력이나 고급 정보에 접근하는 건 제한적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사실 기성 언론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협소하다. 사대문 안에 있는 권력자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는데, 일반 시민과는 크게 상관없는 주제다.
그래서 셜록은 그동안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시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는 소외된 피해자들에게 있다.
Q. 셜록은 스타트업 매체면서도 기존 언론의 문법을 이용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Q. 셜록은 스타트업 매체면서도 기존 언론의 문법을 이용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A. 우선 회사의 크기가 작다. 그렇기에 큰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위기가 온다면 고전적인 방법을 써서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기사를 써서 독자의 인정을 받는 방법 말이다. 좋은 기사가 셜록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 거고,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저널리즘은 가장 바보 같은, 미련한 행동을 할 때 좋은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사가 돈을 벌기 위해 궁리를 하는 순간 돈을 벌지 못한다.
실제 데이터가 입증하기도 한다. 스토리펀딩 자료를 보면 좋은 기사를 썼을 때 후원자와 펀딩이 늘어났다. 새로운 이야기나 기존 매체에 없던 사실이 합쳐져서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사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반응한다.
Q. 한국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A. 많은 언론이 욕을 먹고 비판을 받는다. 기자들이 오만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보에 접근하는데, 언론은 자신들이 정보를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시민을 하찮게 보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그 갈등은 정리가 될 것이다. 언론과 기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상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
Q. 언론이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못 주는 것 같다
A. 많은 언론이 종이신문의 방법론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간 종이신문은 시민이 원하는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언론이 비판을 받고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이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가령, 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스토리펀딩에 도전한다. 하지만 스토리펀딩에서 기자가 성공하는 기획은 별로 없다. 기자가 독자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육하원칙에 맞춰 빨리 쓰는 능력은 있지만, 독자를 감동하게 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Q. 설득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A. 기성 기자들의 글쓰기 방식이 변해야 한다. 현재는 종이신문 방식의 글쓰기가 기자들에게 주입되어 있다. 스트레이트는 좋은 방식이지만, 종이신문의 유산이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세상에 있는 진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진실을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복잡한 사안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 짧게 쳐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Q. 본인의 글쓰기 능력이 탁월하기에 읽히는 글을 쓰는 게 아닐까
A. 맞다. (웃음) 나도 콤플렉스가 있다. 오마이뉴스는 신문·방송에 비교해 초라해 보였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의 가장 큰 힘은 콤플렉스에서 나왔다. 체계적인 기자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처음부터 딱딱한 기자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의 글쓰기가 답답했겠지만,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기에 사안에 맞는 글쓰기가 가능했다. 앞으로 종이신문·방송사 기자도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 그쳐선 독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Q. 언론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A. 언론의 위기는 기술의 발전 때문에 찾아오는 게 아니다. 기자가 저널리즘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기자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저널리스트의 사명과 기본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술의 변화는 변수이지 핵심이 아니다.
Q. 2019년 6월의 셜록은 어떤 모습일까
A. 현실적으로 왓슨이 늘었으면 한다. 셜록 운영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말이다. 스토리펀딩 모금액은 회사 운영의 변수다. 핵심은 왓슨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필요한 기사를 써야 한다. 근거 없는 이상향보단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싶다. 우선 좋은 기사를 쓰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Q. 향후 취재 계획은 뭔가
A. 재심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제주도는 올레길, 낭만적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제주도에는 간첩이 많다. 진짜 간첩이 아니라 국가가 조작한 간첩 말이다. 육지가 아닌 변방이라는 이유로 많은 간첩이 만들어졌고, 피해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다.
제주도에는 일본으로 밀항을 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유학생이 간첩 누명을 썼다면, 제주도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서민이 누명을 썼다. 그걸 취재하려 한다.
Q. 언론에 당부의 말 한마디만 해달라
A. 최근 일부 시민의 세력화가 눈에 보였다.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비판하면 금방 돌아서더라. 일부 언론은 그 과정에서 휘청이기도 했다.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게 언론의 책무이지만, 마냥 따라가는 것이 언론의 정도는 아니다. 진실을 듣는 건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언론은 세상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언론은 우상을 파괴하는 사람이지, 우상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Q. 시민, 그리고 독자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한다
A. 기자를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아직 훌륭한 기자들이 많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진실을 찾고,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기자들이 존재한다. 셜록도 그런 기자가 되기를 바라고, 노력한다. 진실을 찾고,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이 되겠다. 많은 후원과 구독 부탁드린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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