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경제 ‘민주노총 구의역 참사 책임’ 왜곡 논란… 중앙일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에 ‘민주노총 특혜’ 프레임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2018년 06월 24일 일요일
‘상황실장이 민주노총 집회 간 것이 구의역 참사에 영향을 줬다’는 한국경제 보도는 왜곡·과장됐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법원·진상조사위원회 등 공신력있는 기관 분석을 배제하고 사고 원인을 확대해석했다.
한국경제는 지난 14일 단독보도 “구의역 참사 때 상황실장 무단이탈… 민노총 집회 참석”을 내 민주노총이 조합원 근무지 이탈을 숨기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당일 상황실장인 신아무개씨가 ‘민주노총 집회’를 간다고 근무지를 벗어났고, 상황대처 능력이 떨어져 구의역 사고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한국경제는 민주노총이 ‘남 탓만 한다’거나 ‘은폐 의혹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 2018년 6월14일 한국경제 사회 31면 보도 |
“은폐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신씨 근무지 이탈은 이미 2년 전 공개됐다. 시민사회·노동조합·서울시 관계자 등 24명이 모인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2016년 8월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 문제를 언급했다. 보고서엔 “6명 가운데 신○○(부팀장)이 상황근무를 했어야 하나 집회 참여로 자리를 비웠고, 표○○이 그 일을 대신 해 실제 강북지역을 담당해야 하는 인원은 각 호선별 1인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적혀 있다.
‘민주노총 주최 집회 참석’도 틀린 표현이다. 사고가 난 2016년 5월28일 서울시청 주변에서 민주노총 주최 집회는 없었다. 황준식 전 은성PSD노조 위원장은 “신씨는 서울메트로의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은성PSD노조 농성장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용역받은 은성PSD 노동자들은 당시 자회사 설립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피해자 김군은 조합원이었고 신씨는 노조 회계감사였다. 이들은 구의역 참사 1주일여 전부터 서울시의회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은성PSD 노조 농성은 민주노총이 결정하지 않았고 자체 결정이었다.
진상조사단과 법원도 사고 원인을 안전 업무를 다단계 하청화한 ‘위험의 외주화’라고 규정했다. 은성PSD는 구조적으로 ‘2인1조’ 작업과 안전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인1조가 되려면 한 조에 최소 10명이 필요하지만 은성PSD엔 상시 5~6명이 근무했다.
법원은 “신씨 무단이석이 사고 당일 근무인원의 부족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신씨가 제대로 근무하고 있었더라도 근무인원이 6인일 뿐이어서 2인1조 출동이 항상 가능한 9인(각 호선당 2인과 상황근무 1인)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은성PSD 사장, 서울메트로 간부 등 운영 책임자 9명 중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은성PSD 사장이 “스크린도어 수리시 2인1조 근무가 불가능한 인력상태를 방치했고 평소 2인1조 작업 미실시도 묵인하고 방치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신씨 문제를 ‘개별 요인’으로 다뤘으나 이 내용은 56쪽 판결문 중 2쪽에 불과하다.
황 전 위원장은 “신씨가 자리 이동을 했든 아니든 애시당초 2인1조 작업은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서울메트로·은성PSD가 비용절감한다고 100만 원짜리 센서말고 싸구려 불량품을 갖다 쓴 것도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 구의역 참사 후 서울지하철노동조합(현 서울교통공사 노조)이 사고 대책으로 안전 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구의역 참사는 서울시가 서울지하철 1~8호선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계기가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비용절감만 우선한 하청구조가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는 시민사회 지적을 수용해 이들의 정규직 전환에 돌입했다.
궤도보수원, 지하철보안관, 면도사·세탁사, 식당노동자 등 하청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무기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 서울시는 ‘정원 외’로 분류되는 무기계약직고용이 아닌 정규직 정원과 합치는 ‘정원 통합’ 방식을 택했다.
서울지하철 정규직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도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해 ‘차별없는 정규직화’ 원칙을 세웠다. 노사 협상 결과 3년 이상 재직자는 7급, 3년 미만 재직자는 한시적 ‘7급보’로 정규직 임용됐다.
차별없는 정규직화를 내세웠음에도 일부를 ‘7급보’로 둔 이유는 무엇일까. ‘공채’로 임용된 기존 정규직 일부가 이들의 7급 임용을 극구 반대했다. 이들은 ‘정규직을 거저 먹느냐’ ‘무기계약직이면 충분하지 시험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느냐’ ‘역차별이다’ 등이라 비난했다. 노조는 이들과 근속년수 차이로 임금이 역전되는 역차별 요소 등을 감안해 ‘한시적 7급보 임용’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노조는 향후 있을 7급 임용에서 누구도 누락되지 않게끔 ‘노사 간 논의’를 조건으로 걸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지난 9일 노조의 ‘차별없는 정규직화’ 요구를 ‘민주노총 노조의 특혜 요구’라 강도높게 비판했다.
▲ 2018년 6월9일 중앙일보 보도 |
중앙일보는 “'승진시험 전원합격'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황당 요구” 단독보도에서 비정규직이었던 7급보 626명의 전원 합격 방법을 논의한 노조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중앙일보는 “민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사측에 '전원 합격'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응시 대상 전원을 승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사측은 ‘시험’ 방식을 7급 조건으로 냈다. 노조는 교육 등 탈락자가 없는 방식을 주장했다.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다 결렬됐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평가는) 아무리 쉬워도 누군가는 탈락할 수 있다'며 ‘탈락을 전제로 한 시험은 동의할 수 없고 시험을 강행한다면 저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문건에 기록했다.
노조는 ‘평생 시험을 안 쳐 본’ 고령노동자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식당, 목욕탕, 모터카 및 철도장비 전동차검수 등에 종사자하는 50~60명 직원들이 노조가 주되게 염려하는 분들”이라며 “고령자도 많고, OMR시험을 한 번도 안 접해 본 분들도 있다. 시험 방식을 택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탈락하게 된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측은 “언론이 숙고하지 않고 기사를 쓰면서 의도적으로 노동자 간 갈등을 조장하고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며 “노사정이 합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근본취지가 있는데 마치 노조가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쓴 것은 잘못”이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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