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준 객원기자
- 승인 2023.06.1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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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싱하이밍 주한중국 대사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 싱 대사를 위안스카이로 비유하는 대통령 발언까지 나왔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이 아마 앞으로 반드시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문제가 되는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이다. 기분 나쁜 발언임은 분명하다. “후회하지 않을까”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로 해석되고, 이는 다시 “(중국이) 후회하게 보복할 것이다”라는 협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 걷어붙이는 정부, 싸움 부추기는 미국
여당은 오만한 태도라고 발끈했다.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를 초치하고,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했다. 여당의 일부 인사는 싱하이밍 추방을 주장했고,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중국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린다”면서 대사 징계를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제 대통령까지 가세했으니 정부 여당이 중국과 싸우려고 소매 걷어붙이는 형국이다.
미 백악관은 중국이 “일종의 압박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우리와 중국의 싸움을 부추기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매 걷어붙이는 우리 정부도, 싸움 부추기는 미국도 눈꼴 사납기는 마찬가지다. 2013년 비슷한 발언이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의 입에서 나왔다.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이 좋은 베팅이었던 적이 없었다.”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지 말라는 ‘내정 간섭적 발언’이었다. 물론 싱하이밍의 “베팅하는 이들이 후회하지 않을까”와 바이든의 “좋은 베팅 아니다”라는 발언의 뉘앙스는 다르다. 그러나 둘 다 내정 간섭적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그때 잠잠했던 여당이 지금 난리를 치는, 바로 그 당이다.
싱하이밍의 발언이 ‘압박’이라면, 바이든의 발언도 ‘압박’이다. 그때 우리를 압박했던 미국이 지금 우리를 압박하는 중국을 성토한다. 당시 바이든의 ‘압박성 발언’을 미국이 철회했다거나 사과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강경해진 중국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 기류가 바뀌는 것 같다. 싱하이밍의 발언은 ‘실수’가 아닌 ‘작심 발언’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가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를 불러 한국 정부의 대응에 항의했고, “양국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라고 발언했다. 싱하이밍을 징계하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대해 정상적 직무 수행이었다면서 일축했다. 우리 정부의 ‘시비’에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부인하지만 지난 5월 22일 한중 외교부 국장급회의 자리에서 중국은 한중관계에 대한 네 가지 불가론을 전달했다. ▶ 대만 문제 등 중국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가면 협력 불가 ▶ 한중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 불가 ▶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이 그것이다.
싱하오밍의 발언은 네 가지 불가론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의 입장이 강경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의 대만 발언이 화근
중국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에 있어 타협 불가의 영역이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지할 때마다 “불장난하면 타죽는다”라며 반발할 정도로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한중 수교 역시 우리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여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1992.8. 한중 수교 공동성명>
그 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대만 문제에 대한 발언을 삼가왔다. 그러나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국제적 문제라고 언급하고,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은 이를 한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로이터통신 인터뷰 발언이 공개되고 하루 지나 중국은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겠다”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정재호 주중한국대사에게 유선으로 항의 입장도 전달했다.
정재호 대사가 중국 외교부로부터 항의받던 그 시각, 우리 외교부 역시 싱하이밍 중국 대사를 초치해 ‘중국의 반발’에 항의했다. 중국은 이를 ‘적반하장’으로 여겼을 것이고, 강경 기조로의 전환을 검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발언으로 한중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한중 외교 갈등은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된 것이다. 싱하이밍 베팅 발언에 다시 대통령의 입이 움직인다. 대통령이 입이 불안한 한중관계를 더욱 위태롭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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