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공원 입구에 있는 숲속생태체험관. 나윤정 제공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산. 서울 낮 기온이 27도까지 오르며 초여름 날씨를 보인 이날 관악산은 가족, 친구 등과 함께 모처럼 자연을 만끽하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특히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됨에 따라 가족 단위로 생태공원과 둘레길을 찾는 탐방객이 부쩍 늘었다. 관악산 공원 입구에서 나무 길을 따라 20분 남짓 걷다 보면 오른편에 통나무집으로 만들어진 숲속생태체험관(생태체험관)이 보인다. 생태체험관에서는 ‘숲속생태체험관 가족 독서여행’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생태체험관 바로 옆에는 야생화동산이 들어서 기린초, 돌단풍, 맥문동, 오가피, 미니장미, 일일초 등 수십 종류의 야생화가 개화기별로 심겨 있었다. 야생화동산의 식물 소개 팻말에는 각각의 꽃이 활짝 핀 모습과 꽃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날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야생화동산을 찾아 이곳저곳 신나게 둘러보고 있었다. 야생화동산 앞으로 다가가니 어린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기린초는 기린이 먹는 식물이에요?”
“기린초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긴 목을 가진 기린이 아니라 봉황, 용처럼 상상 속에 전해 내려오는 동물인 기린의 뿔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돌단풍은 돌 위에서 자라나요?”
“돌단풍은 바위 위에 단풍잎이 달려 있는 듯해서 돌단풍이라고 불러요. 계곡의 바위나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요.”
무장애숲길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이다. 국립국어원은 ‘무장애 탐방로’를 ‘평탄길’로 다듬은 바 있다. 나윤정 제공
전국 각지에 있는 생태공원이나 둘레길 등에 가면 낯선 식물 이름을 접하게 된다. 이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기린초’의 말뜻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여름에 노란색의 잔꽃이 꼭대기에 많이 핀다’고 돼 있다. ‘돌단풍’은 ‘줄기의 높이는 30㎝ 정도이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며 잎자루가 길며 5~7갈래로 갈라져 단풍잎과 비슷하다’고 쓰여 있다.
식물 소개 팻말에 꽃 이름뿐만 아니라 간단한 학술적 설명과 해당 식물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싣는다면 보는 이들의 흥미도 더 돋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야생화동산을 둘러보며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김형주 교수(상명대 국어문화원)는 “식물 소개 팻말에 학술적인 내용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며 “학술적인 내용을 비롯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정보무늬(QR코드)를 활용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야생화동산을 지나 큰길을 따라 걷다보면 ‘무장애숲길’을 만날 수 있다. 무장애숲길 진입로에는 ‘장애인과 노약자 등 보행약자들도 데크형 경사로를 따라 숲을 체험하고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된 숲길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이다. 국립국어원은 ‘무장애 탐방로’를 ‘평탄길’로 다듬은 바 있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무장애숲길 대신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경기 부천자연생태공원에서는 누구나 편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는 숲길 조성 취지에 맞춰 ‘누구나숲길’로 바꿔 부르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은 김수현 씨는 “굳이 ‘장애’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모두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인 만큼 ‘모두의숲길’로 부르기를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공원 입구 쪽 작은 약수터에 ‘음용금지’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만큼 ‘마시지 마세요’ 등 조금 더 쉬운 말로 안내문을 걸어두면 좋겠다. 나윤정 제공
무장애숲길 안내문에 쓰인 ‘데크’란 표현도 올바르지 않다. 데크는 산이나 캠핑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나무로 만든 길’을 의미한다. 그런데 데크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도 데크가 아닌 ‘덱(deck)’으로 쓰는 게 맞다. 나무로 만든 길이니 ‘나무 길’ 정도로 부르면 된다. 국립국어원에선 ‘덱 로드’를 ‘툇마루 산책길’ ‘툇마루 등산길’로 바꿔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무장애숲길에서 내려와 모험숲, 호수공원 등을 지나 공원 입구 쪽으로 다시 오니 작은 약수터에 ‘음용금지’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만큼 ‘마시지 마세요’ 등 조금 더 쉬운 말로 안내문을 걸어두면 좋겠다.
이미 널리 쓰이는 말을 버리고 돌연 순화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바꿔 부르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생태공원이나 둘레길은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교육 현장이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올바른 우리말 표현을 자연스레 접하고 익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글·사진 나윤정 객원기자
감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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