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인공지능과 함께 글쓰기
김선오 시인
입력 : 2023-06-12 04:07
나는 현재 ‘시차 노트’라는 제목으로 두 단어 사이의 시차에 주목하는 산문 연재를 진행 중이다. 매주 원고지 30장 분량의 원고를 작성하는데 지난 주제어 중 하나가 ‘집’이었다. 글의 주제와 이미지는 비교적 명확했지만 문장의 톤이 잘 잡히지 않아 고심하던 중 챗GPT의 도움을 받아 가며 글을 쓴다는 동료들의 말이 떠올랐다.
무엇을 물어볼지 고민하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집’을 소재로 글을 쓴다면 어떨지 질문해보기로 했다. 챗GPT가 이해하는 ‘문체’란 어떤 것일지 역시 궁금한 지점이었다. 먼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쓰는 방식으로 집에 대해 글을 써줘”라고 명령했다. 챗GPT는 망설이는 듯 한참 동안 커서를 깜빡이게 두다가 한 문장씩 써나가기 시작했다. “집. 그 자체로 우주와의 조화를 이루며, 우주에 자신을 섞어놓은 지점. 이 집을 통해 내 존재는 그리고 나만의 특별함이 외부 세계와 결합된다. 나의 집은 내 안에 숨겨진 비밀의 세계, 나만의 형상이다.”
문장들을 읽고 웃음이 터졌는데 리스펙토르의 문체를 얼마간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제발트가 쓰는 방식으로 집에 대해 글을 써줘”라고 명령했다. 더 긴 시간을 망설이던 챗GPT는 마침내 한 문장씩 쓰기 시작했다. “그렇지, 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현실이자 공간 속의 환상이다. 집은 매일 밤 내가 돌아오는 곳, 마음의 안식처이자 영혼의 교회다. 그곳은 나만을 위한 성지로, 나의 모든 존재가 펼쳐지는 장소다.”
나는 더욱 크게 웃음이 터졌는데 리스펙토르와 제발트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캐치해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대모사를 듣는 일과 비슷했지만 한편으로 기묘하게 서늘했다. 문체는 기술과 추상이 결합된 고도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을 벌써 흉내 내고 있다니! 이 과정은 나의 글쓰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무척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글이 막히면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볼 예정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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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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