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윤중로엔 벚꽃이 아닌 사쿠라가 핀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서울시는 1986년에 ‘윤중제’를 ‘여의방죽’으로 고쳤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말이 쓰이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나 ‘윤중제’와 ‘윤중로’가 사람들의 엄민용 기자
남녘에서 봄꽃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봄꽃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으나 때를 잊지 않은 봄꽃들은 서둘러 망울을 터뜨린다. 벚꽃도 그중 하나다. 이즈음부터 다음달 중순까지 전국 곳곳에서는 분홍빛을 품은 백설이 내릴 것이다.
벚나무는 삼국시대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그 덕에 우리 조상들도 봄이면 벚꽃 구경을 했고, 꽃이 진 뒤에 맺히는 열매 ‘버찌’로 심심한 입을 달래기도 했다. ‘버찌’의 준말이 ‘벚’이고, 그것이 열려서 벚나무다.
이런 벚꽃을 두고 일본의 국화(國花)로 생각하는 것은 괜한 오해다. 우리나라가 무궁화를 공식적으로 국화로 삼은 일이 없듯이 일본에도 국화는 없다. 일본 왕실에서 쓰는 여러 문양 가운데 하나가 사쿠라(벚꽃)일 뿐이다. 더욱이 일본의 벚나무는 우리나라의 것이 건너가 뿌리를 내렸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를 비롯한 많은 학자가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는 한국의 제주도’라고 인정하고 있다. 고려시대 때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든 팔만대장경의 판도 대부분 산벚나무로 만들었다. 따라서 괜한 반일감정으로 벚꽃축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축제’는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다만 이때에도 벚꽃축제가 원인이 아니라 일본말 찌꺼기 ‘윤중로’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강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을 ‘와주테이’라고 한다. 이를 우리식 한자로 적으면 ‘윤중제(輪中堤)’가 되고, “윤중제의 길”이 곧 ‘윤중로’다.
입에 오르내린다. 부운 일이다. 이제끄러부터라도 일본말 찌꺼기 ‘윤중제’와 ‘윤중로’를 버리고 ‘여의방죽’과 ‘여의방죽길’ 또는 ‘여의섬둑’과 ‘여의섬둑길’로 고쳐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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