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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5일 화요일
[기고 - 수필] 한글 교실 어르신들이 겪은 코로나 일상
[기고 - 수필] 한글 교실 어르신들이 겪은 코로나 일상 (박월수 작가)
청송군민신문 승인 2022.02.16 06:33 댓글 0페이스북
한글 교실 어르신들이 겪은 코로나 일상/박월수
온기를 도둑맞았다. 지척에 있는 친구와도 손 전화 속에서만 대화한다. 보고픈 사람끼리 만나도 눈으로만 인사하고 사람들 사이의 접촉 금지는 기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대문 밖만 나서면 마스크는 필수다.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나도 부둥켜안으면 안 된다. 코로나란 전염병이 지구촌 인류에게 준 몹쓸 규칙이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회의뿐 아니라 회식모임마저 각자의 집에 앉아 랜 선으로 하는 웃지 못할 사태도 벌어졌다. 입학식은 물론이고 졸업식도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모이기만 하면 전염병이 확산되니 불안한 나날들이다. 그나마 인터넷 세대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시골에 콕 박혀 신문명을 접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몹시 궁금하다. 어르신들의 놀이터인 경로당이 최근 2년간 문을 연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잠시 열렸던 경로당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다시 꽁꽁 닫혔다.
나는 코로나가 당도하기 전 지난 3년간 청송문화원 문해교실 강사였다. 코로나와 함께 내 직업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마을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 다섯 곳의 경로당에서 수업했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수업이 목적이었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셈 공부와 그림 그리기 지도도 했다. 대부분이 평생 처음 색연필을 잡아본다며 좋아들 하셨다. 다 같이 동요 부르며 율동을 할 때는 어쩌면 그리 천진한 모습인지 선생인 내가 위로받곤 했다.
어르신들은 수업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생감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라며 건강할 때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셨다. “내는 저승 가서 우리 집 문패 몬 찾아갈까 봐 무서버서 부지러이 공부할 끼다. 야무지게 배와 가 울 영감한테 갈 끼다.” 하시는 어르신을 볼 땐 하나라도 더 알려 드리고 싶어 내가 몸이 달았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 때문에 땅을 입에 물고 다닌다는 어르신이 대부분이지만 하나같이 배우려는 열정이 눈물겨웠다. 그런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겐 선물 같았다.
군민 송년 잔치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시화전을 열어 드렸을 때 일이다. 시화라고 해야 겨우 깨친 한글을 일기에 써 놓은 걸 다듬고 어설픈 그림을 그려 넣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르신들의 글에는 배우고 싶은 절절함이 묻어있었다. ⸢다시 청춘⸥이란 시화를 만든 어르신은 당신이 사시는 동네에는 한글 교실이 열리지 않아 이웃마을까지 원정을 다니셨다.
월요일이 되면/ 가방 메고/ 끌개 끌고/ 마실 앞 당산나무 밑에 / 안자서/ 한글 선생님 기다린다/ 그 차 타고 / 덕골 마실 경로당에 가면/ 팔십 너믄 학생이 된다/ 글자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면/ 모리던 세상이 보인다/ 일만 하며 흘러갔던/ 내 사계절에/ 이젠 꽃이 핐다
공책이 아까워서 달력 뒷장이 새까매지도록 글자를 쓰고 또 쓴다던 어르신은 시화전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새임요 우리사 마 좋아 죽을시더, 늘그막에 이기 무신 복인가 모리겠니더. 우엣든동 고맙니더.” 한참이나 어린 선생의 손을 붙들고 그리 말씀하시는 어르신 얼굴이 달처럼 환했다. 참으로 행복한 날들이었다.
난데없는 전염병이 쳐들어와서 그 어르신들을 못 뵌 지 두 해가 훌쩍 지나갔다. 가끔 소식은 주고받지만 어떻게 지내시는지 얼굴을 뵙기로 했다. 예전처럼 조그마한 간식을 사 들고 먼저 덕골 마을을 찾아갔다. 농한기인데도 닫힌 경로당 때문에 집안에서만 지내시는 줄 알았다. 다행히 혼자 계시는 어르신 댁에 옹기종기 모여들 계셨다. 작은 마을이라 안 어른들 다 모여도 다섯 분이 전부다. 공부하는 도중에 한 분은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미리 연락을 드렸어도 화들짝 놀라며 반가워하는 어르신들을 뵈니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셨다. 코로나 블루에 빠지지 않고 잘 견디시는 비결을 물었다. 농사철에는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하니 우울할 시간 같은 건 있을 짬이 없다며 웃으셨다. 그리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도 주니 사는 일이 보람되다고 하셨다. 일 철이 지나면 동네 사람끼리 모여 얼굴 보는 재미로 사는데 이 깊은 골짝까지 병이 제 발로 걸어올 걱정은 안 한다고 하셨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공부할 때 배웠던 가벼운 체조를 한다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현명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안부를 나눈 후 옆 마을 새마에 들렀다. 당산나무 밑에서 선생을 기다리던 어르신을 보기 위해서였다. 몇 달에 한 번은 꼭 먼저 전화해서 무심한 선생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 많은 분이시다. 어르신은 장갑 낀 내 손부터 덥석 잡으셨다. 항상 보고 싶었다며 방으로 잡아끄셨다. 아들이 고쳐줬다며 확 바뀐 주방을 자랑하시는 얼굴에 기쁨이 넘쳤다. 그리곤 몇 가지 과일을 내 오셨다.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몇 알을 집어 가방에 구겨 넣어 주셨다. 그리곤 밤잠 오지 않을 때마다 그렸다며 차곡차곡 쌓아둔 스케치북을 꺼내오셨다. 그동안 그리신 꽃과 나무, 새 그림이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저렇게 그렸다며 설명을 하는 어르신이 어찌나 즐거워 보이시는지 쉬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튿날은 당 밑 마을에 들렀다. 잠긴 경로당 앞 계단에 앉아 볕을 쬐던 어르신 세 분이 활짝 웃으며 반기셨다. 경로당 바로 곁에서 구판장을 운영하시는 총무님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래된 장작 난로가 은근하게 열을 내뿜고 있었다. 띄엄띄엄 둘러앉아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여쭈었다. 코로나가 무서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들 하셨다. 마을 사람들끼리도 병을 옮길까 걱정되어 자주 만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 가운데에 바람이 일었다.
당 밑 어르신들은 안어른 바깥어른이 함께 공부하는 집도 두 집이나 있었다. 수업 출석률도 가장 높아서 내 뿌듯함이 배가 되던 곳이었다. 그러한 어르신들이었는데 2년 전보다 부쩍 나이 드신 티가 났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가 여쭈었다. 두 분 어르신은 척추와 무릎 때문에 걷기도 힘이 든다 하셨다. 수술하고 병원 신세도 오래됐다는 어르신은 독한 약 후유증인지 얼굴은 많이 부어있었다. 한 어르신은 백내장 수술한 얘길 해 주셨다. 어느 날 일어났더니 영감님 얼굴이 까맣게 보이는 통에 눈 수술을 했는데 이제는 하얗게 잘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같이 공부할 때만 해도 정정하던 어르신들이었다. 코로나 이후에 마을 분들 대개가 병을 달고 사신다 하셨다. 닫힌 경로당 문과 자주 만날 수 없는 자식들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말씀도 하셨다. 일정하게 움직이던 틀을 벗어나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 어르신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렸다. 책가방을 들고 경로당에 모여 앉아 연필 글씨를 꾹꾹 눌러쓰실 때의 건강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총무 일을 맡아보셨던 어르신만이 여전히 정정하셨다. 구판장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꽃을 가꾸고 그리는 일이 코로나 속에서도 어르신의 활력을 유지시켜 준 모양이었다.
면소재지에 있는 명당 1리 마을은 어떨지 찾아가 보았다. 다른 곳보다 젊은 축에 속하는 분들이 계시는 마을이다. 농사일보다는 장사하거나 시니어 일자리를 찾아서 하고 손주들 재롱 보면서 노후를 편히 보내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기대만큼 잘 지내고 계셨다.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걷기 운동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화투놀이도 한다고 하셨다. 글자를 쓰는 대신 마이크를 눌러 음성으로 문자 보내는 걸 가르쳐 드렸더니 그도 잘 활용하시는 중이었다. 가끔 경로당에 모이고 싶을 땐 혹시 몰라 신발을 숨겨놓는다고 하셔서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코로나로 인해 생긴 인원 제한이 그런 묘책을 떠올리게 한 모양이었다. 전염병이 무서워 웅크려있지 않고 평소처럼 씩씩하게 사시는 분들을 나는 으스러지도록 안아 드리고 싶었으나 규칙이란 게 무서워 그러질 못했다.
문거 마을과 월매 마을 역시 잘 지내고 계셨다. 한글 공부는 날마다 하지 않더라도 생각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손주들 보던 책을 떠듬거리며 읽는다고 하셨다. 유모차를 밀고서라도 걷는 운동을 꾸준히 하신다는 어르신들은 변함없이 밝아 보였다. 어르신들 소망은 모두가 매한가지였다. 어서 빨리 전염병이 물러가서 예전처럼 공부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때가 좋았다고 하셨다. 공부뿐 아니라 요가나 염색체험을 하며 보낸 지난날이 한없이 그립다고 하셨다. 어르신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서로 부둥켜안고 온기 나누어도 좋은 날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으로 빌었다.
코로나19를 추억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런 평화로운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은 이미 감미롭다. 그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되짚어 본다. 일상을 잘 견디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다시 입술을 숨기고 온기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단단히 채비해 두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 지구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겠다. 쓰레기를 줄이고 세제를 아껴 써야겠다. 오염에 몸살을 앓는 지구가 언제 또 우리를 해하려 들지 모를 일이므로. 나는 한글 교실이 다시 열리는 날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할 생태환경에 관해 메모해 둔다.
박월수 작가
<박월수 작가 소개>
1966년 대구 월배 출생
2005년 수필문학 초회 추천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달’로 등단
2009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젊은수필 2012’, ‘현대수필 100년’, ‘더수필 2019’, ‘더수필 2020’에 작품 수록
2021년 수필집 『숨, 들이다』 출간
매일신문 매일춘추,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사단법인 경북북부권 문화정보화지 ‘컬처라인’, 대구경북일보 오피니언 필진.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교구가톨릭문인회, 수필세계작가 회원.
현재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청송문인협회 부회장, ‘청송문학’ 편집장, 청송 ‘시를 읽자’ 회원으로 활동 중.
Tag#박월수 작가#한글 교실 어르신들이 겪은 코로나 일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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