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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5일 금요일
김진숙 37년만에 복직한 날…"하청 노동자 차별 말고, 누구도 죽지 않게 해 주세요"
[현장] 25일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김진숙 복직 행사 진행
기사입력 2022.02.25. 15:40:23 최종수정 2022.02.25. 15:52:46
'소금꽃나무' 김진숙이 조선소로 돌아왔다.
25일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해고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복직 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23일 금속노조와 HJ중공업이 김진숙 위원의 복직 합의가 이루어지고, 25일 명예 복직과 퇴직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관련 기사 : '소금꽃나무' 김진숙, 퇴직 37년만에 명예복직 합의)
김 위원의 복직 행사에는 HJ중공업 조합원들, 홍문기 HJ중공업 대표이사와 2011년 희망버스부터 연대 활동을 지속해온 문정현 신부가 참석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심진호 한진중공업 지회장 등도 노동계를 대표해 참석했다.
홍문기 대표이사는 "불확실한 상황으로 인해 본인과 회사 모두가 아픔을 겪었지만 양보하고 이해함으로써 과거의 반목을 화해와 치유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라며 "기존 해묵은 갈등은 털고 노사가 함께 재도약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복직한다, 네 글자를 받기 위해서 37년이 걸렸다"라며 "해고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37년을 살아야 했던 이의 삶을 하나의 등대로 삼고 연대해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심진호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회사가 매각되고 그렇게 투기자본이라고 외쳤던 회사에게조차 오늘은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노사 갈등이라는 부정의 아이콘은 모두 한진중공업과 함께 역사 속으로 보내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한진으로 가는 마지막 희망버스'를 타고 온 문정현 신부는 "김진숙 위원은 노동운동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표본"이라며 "오늘 노동해방을 위해 한 발짝 뗐으니 힘을 합쳐서 한 발짝 더 가서 노동해방을 이루자"라고 말했다.
▲김진숙 위원이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복직인사를 하고 있다. 김 위원은 해고 이후 37년이 지나 복직했다. ⓒ프레시안(이상현)
복직인사에 나선 김진숙 위원은 가슴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를 꺼내 소감을 말했다. 김 위원은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라며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갈테니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시라"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발언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래 김진숙 위원 발언 전문)
행사가 끝난 후 김 위원은 조선소를 둘러봤다. "동료들이 일하던 곳을 보고 싶다"라는 김 위원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 김 위원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조선소에 들어올 때 죽은 동지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라며 "김진숙 복직의 의미는 나 한 사람 복직시킨다고 되는게 아니라 진정한 노사 모두 주인이 되는 진정한 노사화합과 경영진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할 것"이라 말했다.
또한 이번 대선에 대해 "지금까지 본 대선 중에 제일 한심스럽다"라며 "노동, 비정규직, 여성 등 이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를 얘기를 안한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120시간 노동이라거나 여가부 폐지, 이대남 등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민주주의의 진보를 원하는 후보라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책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살거다"라며 "노동자의 현실에서는 병들면 자기 몸에만 집중하는게 사치처럼 여겨졌었는데 이제 치료를 잘 받아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2018년부터 암 투병 중이다.
아래는 김진숙 위원 발언 전문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다.
37년입니다.
검은 보자기 덮인 채 어딘지도 모른 채로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살 떨리던 날들로부터 37년입니다.
경찰들이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불심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차에 군홧발로 짓이겨 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
훈련소 폐건물에 감금해놓고 돌아가며 감시를 하던 그날로부터 37년입니다.
그렇게 생이별을 당한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 눈물 방울마다 아저씨들이 맺혀 오르던 그 사무치던 날들로부터 37년이 흘렀습니다.
그중 가장 보고 싶었던 허씨 아저씨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고, 그 아드님으로부터 오늘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한 글자라도 아저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퇴직금과 채용 저축으로 유인물을 만들고, 산복도로 골목골목 집집마다 "조합원 여러분" 제목의 유인물을 놓고 돌아섰던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오늘 하루가 저에겐 37년입니다.
저의 첫 노조이자 생의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 지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지였음이 제 생에 가장 빛나는 명예이고 가장 큰 자랑입니다.
심진호 집행부와 여러분들의 힘으로 굳게 닫힌 문을 마침내 열어주셨습니다.
이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지 입었던 작업복, 곽재규가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최강서의 시신에 입혀줬던 그 작업복.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노조위원장마다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죽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 그토록 복직을 기다리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수노조를 만들어 34살 최강서를 죽였던
한진중공업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꾸었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인 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 지역 수많은 신발 공장 노동자들이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그 억울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케이오,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이제 이 공장에는 11년 전 고철로 팔려나간 85호 크레인이 곧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희망버스로부터 11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희망버스 승객여러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특히 우리 지부 동지 여러분.
엄동설한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고 절을 하고 글쓰기 강좌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셨던 여러분.
드라이브 스루에 함께 하시고 청와대 까지 함께 걸었던 여러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오늘 사진으로 오신 백기완 선생님,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의 위기 앞에 선 태영버스 동지여러분들 힘내십시오.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김진숙 위원장이 복직행사에 참여해 노래를 들으며 웃고 있다. ⓒ프레시안(이상현)
▲김진숙 위원이 복직행사에 참여해 앉아있다. 김진숙 위원은 부당해고 이후 37년 만에 조선소로 돌아왔다. ⓒ프레시안(이상현)
▲김진숙 위원이 희망버스 참여자들과 만나 조선소로 들어가고 있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김진숙 위원과 그 옆으로는 고 백기완 선생의 사진이 있다. ⓒ프레시안(이상현)이상현 기자(=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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