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1월 20일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어느덧 1년이 됐다. 버니 샌더스와 당내 진보파 때문에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공약을 내걸 수밖에 없었던 바이든이 취임 이후 어떤 정책을 펼쳤을까? 바이든 집권 1년을 되돌아보는 자코뱅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Joe Biden Promised Change. He Hasn’t Delivered.
바이든 정권의 존재 가치는 대체 뭘까. 대선 기간 동안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참 많았다. 진보 단체들은 바이든이 실제로는 미국의 오랜 병폐를 없애기 위한 대전환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고, 정치평론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이 전문가의 의견과 과학에 기반해 팬데믹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트럼프 정권이 사라져 트럼프 정권의 정책을 되돌려 놓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만으로 바이든 승리의 가치가 충분했다. 바이든 자신도 그런 식의 메시지로 선거에 임했다. 자기를 뽑아야 트럼프 시절의 편견과 잔인함이 사라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았다. 바이든 집권 1년의 가장 큰 특징은 오히려 모든 정책 영역에서 트럼프 정권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이를 아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강성 공화당 지지자든 강성 민주당 지지자든, 모두가 바이든 정권이 트럼프 정권의 정반대이며 실험적인 급진적 좌파 정권이라고 믿는다.
지난 1년간 경제가 상당히 회복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전임 버락 오바마나 트럼프 때 그랬듯, 경제회복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어 트럼프의 부상을 가능케 했던 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2년 전 핵심 엘리트 후원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절실하게 필요한 대대적인 변화를 할 준비를 갖춘 채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은 취임 직후부터 보수적 성향 때문에 눈앞에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그놈이 그놈
말이 장황하고 명료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듣는 바이든은 취임 초기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바이든은 고상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수사와 그럴듯한 행정명령들을 쏟아내는 동시에 진보단체와 진보 인사들을 각종 조직과 만남에 끼워줘서 그들의 환심을 샀다. 그 결과 바이든은 자신이 과감하게 뉴딜 스타일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금방 심어주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쏟아진 행정명령들은 트럼프의 조치를 철회하거나 빠져나갈 방법이나 조건이 있도록 교묘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에 놀라 정치화한 많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몇몇 작은 변화를 제외하면 바이든 정권의 정책이 트럼프가 설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트럼프의 정책 중 가장 큰 반발에 부딪혔던 이민정책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바이든은 가장 잘 알려진 트럼프의 몇몇 정책을 철회해서 언론의 대환영을 받은 후 잔인하고 인종차별적이며 심지어 파시스트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이라는 다른 조치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망명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미국 국경을 넘은 망명 신청자들을 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시켰던 ‘멕시코 대기(Remain in Mexico)’ 제도도 남아 있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멕시코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을 멕시코 내륙 깊숙한 곳으로 추방하는 불법적인 보건명령 ‘42장(Title 42)’으로 추방된 사람이 바이든 정권 하에서 오히려 더 많아졌다. 불법이민자 아이들을 부모와 강제 격리 수용하게 한 정책도 그대로다.
트럼프 정책 중 사람들을 가장 격분시키고 가장 상징적이었던 국경장벽도 공식적인 ‘일시중지’ 발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계속 건설 중이고,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평생 미국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로 알지도 못하는 ‘고향’으로 추방된다.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은 드론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중단하지 않았고,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센지에 대한 핍박을 계속해 미국 정부 기밀을 폭로하는 편집자나 언론인은 감금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내고 있다.
바이든은 또한 기자 기록을 압수하려는 트럼프의 노력을 조용히 강화했고, 이를 숨기기 위해 뉴욕타임스 간부들에게 비밀 유지를 강요했다가 기자들에게 폭로됐다. 그리고 고도로 훈련된 행정부는 대통령을 언론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유출되는 정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외교도 달라진 게 없다
상대적으로 그래도 괜찮은 분야가 하나 있다면 그건 외교다. 훗날 바이든 정책 중 가장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을 것 같은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인데 이는 지지율 감소를 각오하고 이뤄진 진정으로 정치적으로 용감한 조치였다. 또 바이든 취임 이후 세계적으로 감행하는 미군의 공습도 54% 줄어 간만에 중동과 아프리카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바이든은 러시아와 관련해 언론과 주류 안보 제도권의 매파적인 요구도 대체로 거부했다. 물론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원인 러시아 국경으로 NATO를 확장하는 것은 꿋꿋하게 유지해 ‘자제’의 의미가 미국 제도권에게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줬다.
사실 칭찬할 만한 외교정책이 얼마나 부족한지만 봐도 바이든이 트럼프와 얼마나 비슷한지 잘 알 수 있다. 바이든은 쿠바에 대한 트럼프의 봉쇄 강화정책을 그대로 물려 받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살인적인 제재를 유지했으며, 이란에 대한 제재도 철회하지 않아 이란이 핵협약 재가입 협상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란에서의 강경파 득세에 크게 기여했다. 여기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성 제재로 기아 사태를 촉발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명분이었던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보호를 무색하게 했다. 바이든은 현재 최소한 4개국에서 인도주의적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인사였던 언론인을 암살한 사우디 왕세자를 처벌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잔혹한 이집트 독재와의 군사적 협력을 유지했으며,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맨에서의 전쟁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또한 미국 동맹국과의 신뢰 회복에 대해 그렇게 떠들어댔지만 기득권층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트럼프 정권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인 결정을 통보한다고 동맹국들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외교에서 변한 것이라고는 수사뿐이다. 바이든이 민주주의를 운운한다. 하지만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한때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국내정책을 팔기 위한 바이든의 영리한 전략으로 해석됐지만 요즘은 바이든은 진심인 듯하다. 남태평양에서 핵 확산을 추진하고 군산복합체에게 기록적인 액수의 예산을 주며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했지만 20여 년 이어진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없다. 바이든은 오히려 1월 6일의 의회 점거 사건을 이용해 테러와의 전쟁을 국내로 확대하고, 극우 극단주의자도 겨냥하지만 조용히 좌파 시위대와 활동가도 타겟으로 삼고 있다. 의회 경찰은 정보공개를 요구할 수 없는 국내 반테러 부대로 확대됐고, FBI는 국내 테러 요원의 수를 배로 늘렸다. 앞으로도 대국민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국내반테러법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는 정당한 명분을 찾지 못했던 트럼프도 못한 일이다.
이어지는 경찰살인에 분노한 시위대와 언론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폭력이 난무한 2021년 여름이 지났건만 바이든은 경찰당국에게 더 많은 예산을 할당하고 더 많은 군장비를 주고 약속했던 얼마 안 되는 경찰개혁 조치를 조용히 뒤로 미루고 있다. 경찰은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 대대적인 시위가 다시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를 과잉진압할 능력을 더 갖춘 경찰에 맞서서 말이다.
트럼프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권의 부패문제도 통제되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 민주당은 여전히 거액의 돈을 부자들로부터 모금하고 있고 핵심 당직에 재계 인사를 앉힌다. 그리고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대선 공약들은 조용히 묻혀 버린다. 바이든이 의원들의 주식거래 금지여부에 대한 입장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동안 그의 아들은 갑자기 잘 팔리는 화가가 돼 정부 윤리 전문가들이 경악했고, 정권 고위 관리들도 월가와 대형 IT기업, 군수업체, 대형 곡물기업을 비롯한 재계 출신들이다.
죽음의 현장이 된 미국
바이든의 승리에 팬데믹과 그에 대한 트럼프의 미숙한 대처보다 크게 기여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바이든의 고문 하나조차 팬데믹을 “바이든에게 일어난 최고의 사건”이라고 했을 정도다. 바로 여기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작은지 유독 눈에 띈다.
선거기간내내 백신 중심의 트럼프식 대응을 거부한다던 바이든은 당선 이후 더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했다. 단기적인 외출금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입증됐지만 그 외에도 바이든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보 수집, 접촉 추적, 진단검사, 보호장비 보급, 노동자 보호, 학교 지원 등에서 미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지면서 미국의 끝없는 가능성을 자주 얘기하는 바이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바이든 정권도 마스크나 인공호흡기 등의 의료용품 보급을 위해 법을 활용할 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그런 의료용품 확보 계약 중 우선순위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검사용 계약은 트럼프 시대보다 적다.
바이든은 지난 10월 백신 접종 추진에 차질을 빚고 마스크 부족 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겨울을 앞두고 진단검사나 N95 마스크 보급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연말연시에는 부유한 대도시들에서도 진단검사를 할 수가 없었다. 정부는 국민에게 그냥 인터넷으로 ‘근처에 있는 진단검사’를 검색하라는 지침을 내려 진료소가 거의 없는 미국 대부분의 농촌지역을 방치했다. 또 보험회사들에게는 무료 진단검사를 제공하지 말고 검사 받은 사람들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조정관은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병과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야단쳤다.
그러는 내내 바이든 정권은 가짜 뉴스를 열심히 퍼뜨렸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트럼프 정권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면서 가장 문제삼은 것이 가짜 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바이든은 CNN에서 아이들의 감염 가능성이 매우 낮고 부모에 전염시킬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 전염성이 강한 새 변종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독립’을 선언했다. 게다가 바이든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국민 거의 대부분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앤서니 파우치 백악관 최고 의학 자문역을 연임시켜 계속 연방정부의 얼굴과 입으로 삼았다.
하지만 팬데믹과 관련된 바이든의 가장 큰 잘못은 초지일관 기업의 이익을 국민의 건강보다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지난 5월 제약회사들이 백신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해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이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바이든 스타일로 사실상 이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빈곤국의 백신 접종이 여전히 어려워 집계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고, 여전히 새로운 변종이 미접종자들 사이에서 새로 등장하고 있다.
바이든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의료부문이 벼랑 끝에 섰다. 최소한 병원의 75%가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이 80%를 넘어섰다. 감염자가 너무 많아 미 전역에서 쓰레기 수거, 학교 교육 및 각종 비상 서비스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가게, 식당 및 기업들은 인력 부족과 불확실성이 심각하다.
1년 만에 바이든 정권 하의 사망자 수가 트럼프 시대의 사망자 수를 넘어섰고, 바이든이 작년에 주장한 대통령의 사임 사유 기준의 두 배에 이르게 됐다.
내 탓이 아니요
하지만 바이든의 가장 큰 실패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트럼프와는 달리 기후변화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잘 모르는 것은 앞서 말했듯 정권 초기의 홍보 캠페인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키스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의 취소, 파리협약 재가입 등 바이든의 기후변화 관련 행정명령들은 모든 것을 오바마 시대로 되돌려놓는 데에 머무르고 있지만, ‘환경 정의’나 ‘모든 부처의 공조로 이뤄지는 정부 차원의 접근방식’ 등을 운운하며 과감한 새로운 정책으로 홍보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의 전면 보류는 바이든 정권 초창기에 이뤄진 가장 구체적인 기후변화 정책이었지만, 바이든은 트럼프가 집권 초반 3년 동안 한해에 승인했던 것보다 더 많은 허가를 승인해 에너지 회사들이 쾌재를 불렀다.
바이든의 보류 조치를 정지하라고 법원이 결정하자 바이든은 영국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참여국들에게 “미국이 기후변화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야근을 해 가며 일하고 있다”며 언짢아했다. 하지만 귀국한 바이든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개발사업인 멕시코만의 개발을 승인했다. 바이든 정권은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으나 훗날 법정에서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 위험성이 개발사업을 재고할 정도는 아니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일축했다.
한편 바이든은 키스톤 파이프라인 건설 중단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다른파이프라인 사업들을 지지하고 있다. 바이든은 엔브리지의 미네소타 3호선 파이프라인과 미시간 5호선 파이프라인 허가 취소를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있어 앨버타와 걸프만을 연결하려는 엔브리지를 지원하고 있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강경진압해 엔브리지를 보호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유출 사고를 일으켰던 전적으로 보아 또 다른 유출 사고가 나는 건 시간문제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흡한 반응이라는 평을 받는 바이든의 기후변화 예산안이 통과되기만 했어도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이 기업을 직접 대변하는 공화당과의 합의에 집착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실패했다. 앞으로도 바이든 임기내에 주요 기후변화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바이든이 중국과의 신냉전에 뛰어들어 기록적인 군사비를 책정하고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는 것도 기후변화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2020년대의 둘째 해다. 앞으로 9년 동안 기후변화를 잡지 못한다면 ‘인류 생존에 심각한 위기’와 ‘대량 멸종이라는 끔찍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대응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 언론과 정치 제도권이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이는 희대의 스캔들이 됐을 것이다.
무언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바이든이 말한 ‘역사의 눈’이 그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보다는 노예제도를 둘러싼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악화시켜 미국을 내전으로 내몰았던 기억에 남지 않는 수많은 대통령들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머뭇거리는 활동가 정부
바이든이 트럼프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영역이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했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경제 분야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에 비하면 그 결과도 너무 제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외에 바이든의 업적이 있다면 그것은 작년 3월에 나온 거의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구조계획’이다. 오바마의 12년 전 부양책의 2배, 그리고 미국의 1년 GDP에 이르는 이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은 백신 개발과 함께 성공적으로 미국 경제를 살리고 빈곤율을 낮췄으며 일시적으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여줬다.
국민 경제충격지원금 지급을 주정부에게 맡기지 않고 기업지원금처럼 연방정부가 맡았다면 미국구조계획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각 주마다 다른 복잡하고 과부하 걸린 시스템을 이용하다 보니 수백 만 명이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다.
그래도 이 부양책이 지금까지는 바이든 정권 정책 중 제일 나았다. 이 법안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바이든답지 않은 몇 가지 결정 때문이었다.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뒤로 했고, 공화당과의 협상에 매달리는 대신 국민을 위해 신속하게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그 이후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오바마 정권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하며 오바마 정권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10월이 되자 바이든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대통령이 됐다. 지역구 주민들과 만나는 타운홀 미팅을 3회밖에 하지 않았고 지난 6명의 대통령 중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압도적으로 적게 했다. 암살기도로 총에 맞아 입원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만 인터뷰를 바이든 보다 적게 했지만 레이건도 바이든보다 기자회견은 2배나 했다. (이는 말실수로 유명한 바이든을 고려한 백악관의 의도적인 전략이었다).
국민의 대다수가 약 2조 달러에 이르는 사회복지 예산안인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여론조사가 계속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총 100일 동안 백악관을 비우고 델라웨어 집에 머물렀다. 이 법안 홍보를 위해 뛰어다는 건 버니 샌더스를 비롯한 민주당 진보파 뿐이었다. 그 결과 이 법안은 11월에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이 마치 열심히 싸웠는데 실패한 것으로 국민이 착각하게 됐다. 하지만 바이든이 사회복지 공약을 이행할 기미가 처음부터 없었다. 바이든은 상원의 예산 신속 처리 절차인 ‘예산 조정’에 이를 상정할 수 없다고 거짓말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핵심공약이었던 15달러 최저시급을 위해 싸우길 거부했고, 추진하려던 증세 목표는 오바마 때의 세율보다도 낮아 법인세를 2016년 대선 당시 공화당이 약속했던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편적 보육 지원 항복들도 하자가 많았고 놀라울 정도로 역진적이다.
한편 바이든이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을 희생시켜 통과시킨 초당적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건설 법안의 내용은 홍보되는 것과 거리가 멀다. 1조 달러로는 인프라 투자 부족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며, 그나마도 민영화 사업을 통해 비용의 일부를 충당해 월가가 통행료와 각종 수수료를 국민에게 많이 받아낼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트럼프의 2017년 인프라 투자 계획에서 민주당이 맹비난했던 대목과 똑같다).
반독점의 강화는 좀 나은 영역이다. 진정한 초당적 지지도 있고 바이든이 관련 요직에 재계보다는 진보파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을 지배하고 국민에게 부당이익을 챙기는 독점을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그것이 현재의 공급망 위기보다 오래 전에 발생한 비용의 급증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건 예외적인 영역이다. 대부분의 경우 바이든이 대담한 활동가 정부의 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바이든에게 정치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강제퇴거 금지, 학자금 대출 상환유예 연장, 코로나19 검진검사 키트의 가정 보급과 같은 기본적인 조치를 받아내는 데에도 굉장한 압력이 필요했다.
바이든은 아직도 대출 학자금을 탕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출학자금 관련 약속만 안 지킨 게 아니다. 미국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많은 행정명령 권한이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아직도 가격 인하를 위해 코로나 백신 특허를 불인정하거나 대마초의 위험도를 낮추지 않았으며, 코로나19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임시로 메디케어를 적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은 트럼프 시절 메디케어를 민영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조용히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이든 정권이 친노동자적이라는 것도 과장된 얘기다. 아마존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노력을 지지해서 큰 환영을 받은 이후 노동쟁의를 외면해 왔다. 우파와 대기업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실직수당 기간을 다시 원상 복귀시켰고, 향후에 이를 다시 연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일시적인 아동 세액공제를 제외하면 바이든의 경제 안보 프로그램이 경기 부양책, 실업보험, 퇴거 금지, 임대 지원, 학자금 상환 유예 등과 같이 트럼프의 정책에 크게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현대 미국 대통령이 가진 엄청난 권한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트럼프의 뒤를 따라가는 것에 만족했다. 국방물자생산법(DPA)를 발동해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을 강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차량 가격의 폭등을 보고만 있는 것도 바이든과 트럼프가 똑같고, 재정적자를 신경쓰지 않겠다고 한 바이든의 접근방식도 이미 트럼프가 집권 후반부터 등장했다.
이 시기에 맞지 않는 대통령
바이든의 2020년 대선 후보 경선까지의 정치적 행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나는 크게 실망했다. 나는 현대 민주당의 특징은 만연한 부패와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판단력이 의심되고 우파 반대자들에게 일관되게 맞서지 못하며, 공공선을 위해 공공기관이 행동에 나서야 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회의론에 빠져 있는 한 남자를 본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의 위기에서 필요한 지도자가 아닌 사람을 봤다.
바이든이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바이든이 2021년 취임 초기였던 3월에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이후 보여준 모습은 현대 민주당이 그래왔듯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었다.
이는 민주당과 바이든의 지지율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어떤 당과 친밀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놀랍게도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민주당 지지자들만 고집스럽게 그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민주당이 역사상 최악의 조건으로 11월 중간 선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심한 바이든에 대해 민주당내에서도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중도좌파 유권자를 포섭하기를 포기한 상태다.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내리 눌렀던 사회민주주의 운동과 좌파도 설 자리가 더 좁아졌다. 비극이다.
MSNBC 앵커 조 스카보로는 바이든이 ‘너무 좌파적’이고 타협을 모른다고 타박하고,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의 잘못된 선택들을 선거공약과 현실의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 두둔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바이든이 좌파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바이든은 지금까지 누가 봐도 우파적이거나 친기업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바이든 정권이 2021년 집권 초기에 보여줬던 정점에 다시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처로 가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바이든이 정치 엘리트와 재계 거물들이 아니라 대중에게 호소하고, 권력과 영합하기보다는 권력에 맞서며, 보수성을 드러내며 주저주저하지 않고 대통령의 권한을 십분 활용하는 단호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바이든은 잠시나마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문제가 그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했는가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