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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일 일요일

멈출 수 없는 삶, 기후 위기 멈춰야 산다

 

등록 :2022-01-03 04:59수정 :2022-01-03 09:21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①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
한국사회 여섯 가지 주요 의제
시민들의 제안, 후보가 답하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송현대 대전 유성소방서 소방위와 송주연 주부·독서토론 강사, 강영진 롯데칠성 EHS 팀장, 조태현 재활용품 수집·운반 노동자.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송현대 대전 유성소방서 소방위와 송주연 주부·독서토론 강사, 강영진 롯데칠성 EHS 팀장, 조태현 재활용품 수집·운반 노동자.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언론은 늘 유권자보다 후보의 말에 집중해왔다. <한겨레>는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가 아닌 유권자들의 말에 더 주목해보려 한다. 향후 한국 사회를 꿰뚫을 여섯 가지 의제를 정하고, 그 의제와 삶이 맞닿은 유권자 100여명의 심층 인터뷰를 소개할 예정이다. 유권자가 자신의 경험과 함께 대선 후보에게 공약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한겨레>는 이 제안을 각 후보 캠프에 보내 답변을 받는 형식이다. 이렇게 완성된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기사가 매주 월요일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첫번째 의제는 기후위기다. 이 의제는 20대 대선과 맞물려 비로소 우리 일상과 경제·산업 현장에 대대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겨레>가 만난 시민 27명은 기후위기에 따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목소리는 절실하고, 또 절박했다. 새 정부가 빨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열과 혁신으로 21C 신화창조’

지난 12월27일 부산 사하구 신평동 부산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 공장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 있었다. 쓰인 단어가 모두 지난 세기를 떠올리게 했다. 1974년 결성된 조합은 그해 10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강변의 버려진 땅 25만㎢(7만6천평) 부지에 공장을 세웠다. 이곳에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의 운동화 염색을 하는 2~3차 하청업체 50곳이 모여 있다. 염색에는 고온의 수증기가 필요해서 석탄보일러로 물을 끓여야 한다. 작은 기업들끼리 보일러 운영과 폐기물 처리 등을 함께 해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조합을 만들었다. 섬유 염색 산업단지들이 대부분 이렇게 공동 운영을 한다. 이 조합에서 3천명 노동자가 삶을 걸고 일한다.

30여년째 섬유 염색 산업에 종사해온 김병수(60) 조합 이사장은 푸념하듯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요? 기후변화만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석탄 때고 싶죠. 하지만 석탄이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한다고 하니, 더 이상 그럴 수 없잖아요.”

1990년대까지 수출효자상품으로 꼽혔던 섬유 염색 가공업은 2000년대 들어 후발주자 국가들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며 경쟁력이 꺾였다.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줄면서 위기는 더 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1991년 준공 이후 30년 동안 조합을 묶어서 지탱해주던, 조합의 소중한 공동 자산인 석탄보일러 2기가 애물단지가 됐다는 점이다.

조합은 매달 러시아 석탄 5천톤을 석탄보일러로 태워 만든 수증기 2만3천톤으로 염색을 해왔다. 하지만 석탄보일러는 온실가스 배출 시설로 낙인찍혀 퇴출 대상이 됐다.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힌 것이다. 석탄 가격도 계속 오르는 중이다. 대신 친환경 보일러라는 대체재를 찾아야 하는 까닭이다.

“증기 사용비로 (조합 소속) 각 업체가 매달 6500만원 정도씩 내고 있는데, 가스보일러로 바꾸면 그 비용이 더 오를 겁니다. 하지만 석탄 가격이 지난 2년 동안 3배로 올라서 이미 변동 폭이 너무 크지요.” 조합 박환희(59) 전무이사의 말이다. 김 이사장과 박 전무이사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400억원 들여 만든 석탄보일러를 무조건 없앨 수도 없지 않습니까. 몇백억원 하는 친환경 보일러를 새로 들이는 건 꿈도 꾸지 못합니다. 중소기업들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말 좀 해달라는 겁니다.”


김병수 부산패션칼라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 12월27일 부산 사하구 신평동 부산패션칼라산업단지 안 석탄발전소 건물 앞에 서 있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병수 부산패션칼라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 12월27일 부산 사하구 신평동 부산패션칼라산업단지 안 석탄발전소 건물 앞에 서 있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0년 소중한 공동 자산이 애물단지로

섬유 산업뿐만이 아니다. 시멘트와 자동차 제조업을 빼고 섬유를 포함한 반도체, 발전, 석유화학, 철강 등 19개 업종에서 대기오염물질 20톤 이상, 폐수 700㎥ 이상 등과 같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대형사업장이 전국에 1400곳이나 된다. 환경부는 발전·증기업·폐기물소각업을 제외한 산업용 보일러에 대해 사용하는 연료의 70% 이상이 액화천연가스(엘엔지·LNG)인 친환경 설비를 갖추도록 권장한다. 문제는 국외에서 이미 엘엔지 또한 확보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수백억원대의 비용을 들여 엘엔지 가스보일러로 섣불리 전환했다가 곧 또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보일러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산업 현장은 혼란스럽다. 기후위기를 앞두고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수소가 미래라고 하니까 업계에서는 ‘우리도 수소 보일러로 바꿔야 하나’ 이런 말들도 나와요. 그런데 수소는 너무 먼 미래 일이니 일단 가스보일러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스보일러가 또 쓸모없어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 정부가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이 바른 결정을 하도록 길을 알려주고 비용 지원도 서둘러 달라는 겁니다.” 조합 김병수 이사장이 말했다.

석탄으로 쇳물을 분리하는 주물업체 다산주철 대표인 김종태(60) 대구경북주물협동조합 이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 정책을 중소기업도 따라가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한다.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느끼고 있다”면서도 “중소기업에는 아직 생소하고 준비가 덜 된 문제이기도 하다.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줄일지 교육도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력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올해부터는 경제·산업·금융계의 정책 전환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사명을 밝히지 않은 재생에너지 관련 대기업에 종사 중인 정규창(41)씨는 “재생에너지 제조업뿐만 아니라 발전사업·운영과 유지보수업·건설업·금융업 등이 연계해 재생에너지 산업의 투자가 늘고 고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산업 현장도 불안함 투성이다. 친환경 소비재를 판매하는 ‘러쉬코리아’의 박원정(47) 이사는 “음식만큼 화장품의 원료도 자연에서 구하는데, 기후변화로 습도가 높아지거나 생물다양성이 훼손될 경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울산의 수소선박개발업체인 빈센의 이칠환(49) 대표이사는 “국가 소유 선박에 수소연료전지를 추진하는 등 국외 표준화에 대비하는 기회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과거와의 이별을 위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민 김성만씨가 지난 12월24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서 문어 수확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삼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어민 김성만씨가 지난 12월24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서 문어 수확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삼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급변하는 어획량에 신음하는 어촌

이렇게 산업 현장은 과거와 미래를 두고 혼란과 불안함에 휩싸여 있지만, 농어촌 1차 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기후위기가 눈앞에 들이닥쳐 있다. 지난 12월24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항 앞 직판장. 어민 김성만(63)씨가 대문어 한 마리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3년 전쯤에는 아들이랑 선원이랑 셋이 조업을 나가면 많을 땐 하루 100㎏씩도 문어를 건져서 왔거든요. 요즘은 똑같이 나가서 10~20㎏ 정도 잡아 옵니다.”

원덕읍 주민들에게 삼척 앞바다 문어는 삶을 지탱해주는 자산이다. 김씨도 10대 때부터 학교 공부 대신 아버지에게 조업을 배웠다. 통발 속 문어를 건져 올린 뒤 다시 미끼를 풀어 투망하는 작업을 40여년 동안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녀 교육을 마쳤고, 지금도 살아간다.

40여년 동안 한결같던 문어가 2~3년 전부터 드문드문 잡히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획량이 5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 보통 12월부터 이듬해 3~4월까지는 문어가 산란을 위해 연안 바다의 얕은 물까지 올라오곤 했는데, 이런 문어도 요즘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문어 어획량에 등락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현저하게 어획량이 줄어든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와 주민들은 그 원인으로 동해의 고수온 현상을 의심하고 있다. 수온 변화에 민감한 어종인 문어가 바닷물의 온도가 점점 따뜻해지자 더 깊은 바다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설명을 보면, 1968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연근해의 표층 수온은 약 1.23도 올랐다. 특히 동해가 1.43도로 가장 많이 올랐다. 통계청의 ‘2020년 어업생산동향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연근해의 문어류 생산량은 2015년 이후 증감을 반복했는데 2020년에는 전년 대비 8.4% 줄었다.

김씨와 주민들은 원덕읍에 2017년 들어선 한국남부발전의 석탄발전소인 삼척빛드림본부 또한 수온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발전소 터빈을 식히는 데 쓰인 바닷물이 다시 바다로 유입되면서 주변 수온을 올린다는 것이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사로부터 받은 ‘발전사 온배수 현황’을 보면,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발전소 온배수 배출량은 399억2500톤이다. 발전소 열을 식힌 바닷물은 취수 전보다 7.2도 높아진 상태로 배출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어획량 변동 원인이 수온 상승에 의한 것인지 아직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원인을 특정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한인성 박사는 “동해가 동·서·남해 중에서는 수온 상승률이 가장 높은 해역은 맞다”면서도 “연근해에서 잡히는 어종은 수산 정책이나 불법 어업 , 남획 등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서 어획량이 변화하고 있다 . 딱 수온 변화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김종태 대구경북주물협동조합 이사장, 박원정 러쉬코리아 이사, 김명준 제주 농민, 김봉용 전남 구례 수해 피해 주민.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김종태 대구경북주물협동조합 이사장, 박원정 러쉬코리아 이사, 김명준 제주 농민, 김봉용 전남 구례 수해 피해 주민.

하지만 어업 환경이 달라진 건 문어 어획량이 줄어든 삼척만이 아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동해와 남해, 서해 어민들은 자신들의 어장에서 공통적으로 생태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동해에선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개체 수가 늘어난 해파리로 인한 양식장 폐사율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남해에선 굴이, 서해에서는 바지락이 전처럼 영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경남 통영에서 굴을 양식하는 강경두(57)씨는 “지난해 굴의 성장 자체가 한달 정도 늦었고 절반 정도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았다”며 “10헥타 규모의 양식장을 운영 중인데 40~50%가량의 굴이 집단폐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서 정치망(그물에 테와 깔때기를 단 어구) 어업을 하는 김성호(53)씨도 “오징어, 광어, 농어 등을 양식하는데 지난 여름에 해파리가 들어가서 고기 자체를 죽이고 선도를 떨어뜨렸다. 작업 시간도 30분이면 끝날 거를 4∼5시간 온종일 건져내곤 했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 가로림만에서 굴·바지락·감태를 양식하는 어민 박정섭(65)씨는 “날씨가 춥고 수온이 적정하게 맞으면 바지락이 푹푹 영글고 맛이 좋은데 작년엔 평소처럼 영글지 않고 맛이 쓰더라”라고 말했다.

삼척의 문어잡이 어민 김성만씨는 이번 대선 때만큼은 어업인 지원에 대한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획량 감소로 인해 어민의 삶과 어촌 생태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어업인의 생계를 지원하고 어업 환경 변화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데 바다 쪽 정책은 하나도 반영을 안 하니 젊은 사람들이 어촌에 안 오려고 하지요. 바다에 고기가 안 나면 우리 어업인들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정부에서 사람들이 살게끔 터를 만들어줘야 해요. 어업인들에게 수당을 지원해주고, 이런 일들이 수온 변화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면 좋겠습니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김백민 부경대 교수, 경남 통영서 굴을 양식하는 강경두씨, 김병수 부산패션칼라협동조합 이사장.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김백민 부경대 교수, 경남 통영서 굴을 양식하는 강경두씨, 김병수 부산패션칼라협동조합 이사장.
 
눈앞의 위기와 싸우는 농촌

농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명준(46)씨는 제주도 서귀포 남원읍 노지에서 15년가량 극조생귤과 조생귤을 재배해왔다. 학교에도 납품할 만큼 건강한 무농약 귤이지만 곧 6611㎡(2천평) 규모의 하우스에서 천혜향과 한라봉만 재배할 계획이다. 감귤 가운데 가장 이른 10월께 수확을 했던 극조생의 상품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봐서다.

문제는 고온다습해진 날씨다. “지난 9월 내내 비가 내렸거든요. 햇빛을 못 보고 비를 맞으니 귤 맛이 싱거워지고 껍질이 떠서 상품 가치가 없어졌어요. 90%를 폐기했죠. 날이 더워지면 잎말이나방 같은 벌레도 잘 죽지 않아요.”

제주연구원의 지난 11월 제주경제통계를 보면, 지난해 노지귤 출하량은 23만4790톤으로, 2018년(27만5889톤)과 2019년(25만5820톤)보다 줄었다. 아버지에 이어 감귤 농사를 하는 김씨는 제주대 친환경학과에서 23명의 학우들과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작물 재배 방법을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무력함을 느낀다.

쌀농사도 사정은 좋지 않다. 전북 정읍에서 신동진벼를 재배하는 농민 박형용(46)씨는 “2020년 여름 최장 기간 장마로 최악의 흉년을 겪었다”며 “최근 2~3년 사이 사나운 날씨가 일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농어촌을 위한 대책은 매번 뒷전으로 밀린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농어촌 인구 비중이 적어 ‘유의미한 목소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가구에서 농·림·어가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5%대다.

농어민들은 득표수 계산에 몰두하는 후보가 아니라 ‘식량주권’을 지킬 후보를 원한다고 강조한다. 식량 고갈의 위험이 늘어나는 기후위기 시대에 먹거리는 안보와도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쌀은 모자라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자산이에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길 문제가 아니거든요.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하고 해마다 계획을 세우면서 수행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박형용씨가 말했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삼척 어민 김성만씨, 충남 서산 어민 박정섭씨,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박진호씨, 서울대 원자책공학과 대학원생 김재성씨.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삼척 어민 김성만씨, 충남 서산 어민 박정섭씨,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박진호씨, 서울대 원자책공학과 대학원생 김재성씨.
 
이상기후가 부른 재난

이상기후는 폭발적인 피해를 남긴다. 2020년 8월8일 전남 구례에는 ‘500년에 한 번 올 만한’ 폭우가 쏟아졌다. 1년 강우량(1200㎜)의 40%가 넘는 비(500㎜)가 이틀 만에 왔다. 50가지 채소를 길러내던 구례 주민 김봉용(55)씨의 비닐하우스와 330㎡(100평) 남짓한 농산물 유통 사업장도 물에 잠겼다. 그날 이후 김씨는 동업자이자 구례 주민인 신동일(56)씨와 함께 정부세종청사와 국회, 거리를 오간다. 수해 원인 규명과 피해 보상을 촉구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국정감사장으로 출석하며 꼬박 1년을 보냈다.

기후에 따른 재난은 빈도와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형 산불이나 국지성 호우 같은 재난은 시민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치지만, 재난에 맞서는 소방관들에게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게 한다. “2019년도였던 것 같아요. 여름에 폭우가 내려 지리산 피아골 야영객이 물에 빠졌는데, 구조하러 갔던 저희 직원들이 순직했습니다. 호우 피해 현장 출동 과정에서 도로 유실로 사망한 대원도 있었고요.” 대전 유성소방서 구조대에서 일하는 송현대(46) 소방위의 말이다.

이들은 더는 재난을 손쓸 수 없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관리와 예방이 가능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에 맞게 재난 대비체계를 수립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댐 관리 정책과 재난 관리 시스템이 낡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요. 기후변화가 문제라고 하면서 매뉴얼은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요.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체계로 전면 재정비해야 합니다.” 김봉용씨가 말했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서울 신도고 학생 이지우씨, 전남 구례 수해 피해 주민 신동일씨, 전북 정읍 농민 박형용씨, 양성영 재활용품 수집·운반 노동자.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서울 신도고 학생 이지우씨, 전남 구례 수해 피해 주민 신동일씨, 전북 정읍 농민 박형용씨, 양성영 재활용품 수집·운반 노동자.
 
일상 속 쓰레기부터

지역과 산업 현장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선 결국 도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송주연(42)씨는 그런 책임감을 지니고 사는 주부이자 독서토론 강사다. 그는 초등학생 자녀 셋과 학생들 앞에서 서면 늘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쓰레기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분리배출이라도 잘되도록 현실적인 대책이 나왔으면 해요. 재활용 연구 조직도 필요하고요.”

기업도 송씨와 같은 시민들이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 강영진(40) 롯데칠성 환경·건강·안전(EHS) 팀장은 “화려한 포장을 하면 소비자들로부터 ‘이거 괜찮냐’는 반응이 나온다”며 “그동안 포장재 개발을 할 때 안전성과 외관을 고려했는데, 여기에 환경이 추가되어서 페트병을 녹색에서 무색으로 전환하고, 음료 전 제품에 에코절취선을 적용했으며, 재활용이 쉽도록 페트병 라벨에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를 국내 최초로 테스트하고 도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허망한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충북 청주의 재활용품 수집·운반 노동자 조태현(51)씨는 여전히 쓰레기가 늘고 있음을 매일 체감한다고 했다. 새벽 2시부터 일을 시작해 보통 오전 9~10시에 퇴근했는데, 요즘에는 오후 1~2시까지도 일을 한다고 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20년 하루 플라스틱류 생활폐기물은 2019년에 견줘 18.9% 더 많이 배출됐다. 게다가 시민들이 애써 분리배출한 재활용 자원이 수집·선별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옛날식 분리수거 차량을 계속 쓰니까 별도 공간이 없어서 따로 버린 투명페트병이 제대로 분리가 안 되기도 하고, 선별장에서도 돈이 안 된다면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이 버려지기도 합니다.”

조씨는 쓰레기 처리 업무에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속 권한 없는 민간에 맡겨두지 말고 나라에서 개입해야 합니다. 지자체는 불법 쓰레기를 단속하고 쓰레기 수집·운반 같은 재활용 과정은 공적 영역으로 들이고요.” 롯데칠성 강 팀장도 “정부가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재생원료에 인센티브를 주면 연구·개발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 노동자 강명균씨,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 이재걸씨,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 인근 주민 김형중씨, 충남 보령 석탄발전소 인근 주민 김영석(60)씨.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 노동자 강명균씨,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 이재걸씨,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 인근 주민 김형중씨, 충남 보령 석탄발전소 인근 주민 김영석(60)씨.
 
발전분야 탄소배출량이 핵심

일상 속 쓰레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발전분야 탄소배출량이 획기적으로 줄어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까닭이다. 에너지 전환에는 일자리와 생태계 보전 등을 둘러싼 갈등이 뒤따른다.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에서 일하는 강명균(38)씨는 에너지 전환으로 일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이들 중 하나다. 석탄발전이 중단되면 수많은 사람들의 일터가 사라지는데 정부는 무턱대고 에너지 전환에만 급급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후손을 위해 석탄발전이 중단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해요. 하지만 노동자들이 무엇으로 전환될지, 고용안정과 일자리 창출 문제도 부각됐으면 합니다.”

원자력은 한국 사회에서 필요성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발전원이다.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 이재걸(58)씨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지진 피해를 고려하면 원전은 결코 저렴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며 “최소한 새 원전을 짓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반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인 김재성(26)씨는 “탄소중립을 위해 당분간은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원전에 관심을 갖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생에너지는 석탄발전과 원전을 대체할 청정 발전원으로 꼽히지만 농·어민 피해나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산림에 풍력발전을 세우면 자연파괴가 너무 심해요. 산이 있어야 기후변화도 막는데, 비가 와서 산사태가 나면 어쩌려고요.”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 인근 주민 김형중(67)씨의 말이다. 김영석(60)씨도 충남보령 석탄발전소 주민이지만 재생에너지를 덮어놓고 반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정책이 필요하지만 태양광이 농지, 산지를 잠식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해요.”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울산의 수소 선박개발업체인 빈센의 이칠환 대표이사, 재생에너지 관련 대기업 종사자 정규창씨.
〈한겨레〉의 유권자 참여형 대선 기획 ‘나의 선거, 나의 공약’ 1회 ‘기후위기로 삶이 바뀌었다’에 참여한 유권자들. 왼쪽부터 울산의 수소 선박개발업체인 빈센의 이칠환 대표이사, 재생에너지 관련 대기업 종사자 정규창씨.
 
기후변화라는 보편적 과제

결국 기후변화는 이렇게 세대와 공간, 산업과 계층을 아우르는 당면 과제다. 지난달 1일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동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 500명 가운데 82.4%가 ‘기후변화가 자신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이들은 구체적이고 꾸준한, 생활 전반의 변화를 꾀하는 기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년기후긴급행동 기후활동가인 강은빈(25)씨의 눈에는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국제사회 눈치보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을 찾는 데 부족하고 게을러요. 대선 후보들은 축산업, 농수산업, 석탄 퇴출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서울 은평구 신도고등학교 학생 이지우(19)씨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기업은 탄소배출을 많이 하면서 배출량을 없앨 기술은 아직 부족해요. 탄소배출권을 부여해 초과하면 책임지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한겨레> 후원독자 송환웅(75)씨는 “요새 굉장히 심한 포장을 한다. 우리 생활이 기형적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싶다”며 “생활과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고,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박진호(56)씨는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오를 수도 있고 타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불만을 갖기보다 사회의 흐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백민(47)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한 마디로 기후변화가 특정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뀌든 어떻든 대통령이 바뀌는 걸 지구가 어떻게 알겠어요?”

삼척/김민제, 부산·제주/최우리 기자, 이근영 김정수 기자 summer@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25698.html?_fr=mt1#csidxac701ee9fd5cfafbc2332e8f4d296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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