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바로진보] 기후위기 대신 경제성장을 말하는 ‘돈 룩 업’ 정치
- 정주원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편집자주
얼마 전 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갑작스레 방문을 열더니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봅니다. 마침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같은 질문을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기후변화에 대해 들었는데, 뭘 해야 하는지 다들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돌이켜보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과목에 걸쳐서 개인의 실천만 강조하는 교육만 있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하지 말 것’, ‘물과 전기 아껴쓸 것’,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KBS의 보도에 의하면 1990년대 이후 교과서에서는 30년 내내 에너지 절약과 종이 아끼기를 강조해왔습니다.
기후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안전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에너지, 산업 등 사회 전반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이 권고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년 전세계는 전년 대비 7.6%씩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정도의 온실가스 감축을 경험한 것은 IMF시기 정도입니다. 말 그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하면서 지금을 유지해도 되는 수준의 위기’가 아니라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경제시스템을 뒤엎는 것’만이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재난상황인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차원이 다른 기후위기 앞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빠르게 줄이기 위한 방법부터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실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무력함은 기후위기와 맞서는 정치로의 전환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탄소중립 백만행동 캠페인을 통해 ‘전환의 시대적 요구에 맞춰 스스로 온실가스 배출량 연간 1톤을 줄이는 백만인의 약속’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일회용품 줄이기와 물과 전기 아껴쓰기’입니다. 이와 함께 전기차·수소차 구매나 탄소중립 기업 제품을 더욱 이용하라는 말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탄소중립위원회 회의에서 ‘저탄소 산업구조로 속도감 있게 전환해야 합니다. 산업계가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고 있어 매우 다행입니다. 정부는 기업들의 노력을 최대한 지원하며 뒷받침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기후위기는 기업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민주당의 그린뉴딜은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분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경영진의 방만한 운영과 중요해지는 기후위기를 읽지 못해 무너지던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책은행은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사업에 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그 덕에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은 정치적 이슈로 다뤄지지 않고 강행되었습니다. 이렇게 건설하는 3기의 발전소에서는 매년 2천만 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1그램 1그램 긁어모아 1톤씩 절약하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수십 배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엔 침묵합니다.
심상정 후보 역시, 지난 19일 최태원 SK회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겠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굉장히 놀랐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런 목표를 이렇게 책임있게 제시한 기업이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다”며 SK그룹의 기후위기 대응을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SK도 화석연료 기업입니다. SK그룹은 호주에 가스전을 개발하면서, 완전히 개발되지도 않은 ‘탄소를 흡수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잘 작동되더라도 적지 않은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될 예정입니다. 또한, 청주에는 SK하이닉스에 LNG발전소가 건설되고, 경남 고성에는 석탄발전소를 막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SK가 탄소중립을 위한 목표가 있어도 석탄,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기후위기 대응 산업’을 육성하고, 이렇게 기업들이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여야를 막론한 주요 정치인들의 인식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 운석을 지구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에 ‘드론을 보내 잘게 쪼개서 지구로 가져오면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는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이 맡은 영화 속 대통령과 기업인이 떠오릅니다.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이 운석에 대해 ‘돈 룩 업’을 외치며, 경제성장을 약속한 것처럼,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기후 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기회’(문재인 대통령)를 말합니다. 여전히 정치는 위기를 위기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기후의제는 더 이상 정치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떻게, 어떤 기업을 지원할 것이냐는 이야기로 마이크는 넘어갑니다.
과학과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후정치
그렇게 탈정치화한 기후위기는 기업만을 대선 공론장위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코로나 속에서 폐업에 내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재난이 정부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구례 수해 주민들,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토론회장 밖에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유력 후보가 화석연료 기업을 방문한 그 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두 청년활동가가 기후 시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이 기습시위를 통해 이야기 한 것은 ‘정치가 묵인한’ 두산중공업의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포함한 많은 청(소)년들은 석탄발전소 투자를 중단하고, 석탄발전을 멈추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의 첫 번째 순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정치화한 기후위기 대응은 발전사들의 재산권 앞에서, 석탄발전소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처럼 석탄발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을 멈추는 것이 가능해야 ‘기후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와 결정권을 기업과 경제성장에서,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기후정치입니다. 농민들이 기후위기로부터 식량주권을 지키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지키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이 화석연료 생산을 멈추자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진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역할이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바로진보’의 새로운 필자로 정주원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참여합니다. 필자는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 기후소송단, UN 앞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미래가 아닌 지금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행동하자는 주장을 생동감 있게 전해줄 기고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