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스톡홀름 노딜'의 원인과 해법(하)
'스톡홀름 노딜'을 거치면서 북미 협상이 극도의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한반도 피스메이커'를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주도의 탄핵 조사에 맞서 개인의 정치적 안보를 지키는 데에 여념이 없다. 이를 약점으로 잡았다고 여긴 탓인지, 북한의 대미 압박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북미 협상 중재 및 촉진 역할도 크게 위축되었다. 이러다가 또다시 한반도 평화가 '희망고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희망의 실마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 모두 과도한 요구를 내려놓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스톡홀름 노딜을 딛고 중대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친미무죄, 반미유죄'의 현실
나는 제재가 일종의 고문에 해당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고문을 받는 쪽에서 부당하다고 느낄수록 이에 굴복하기보다는 저항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북 제재의 상당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우선 북한이 제재를 받아온 본질적인 이유는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제재 결정권을 갖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모두 핵보유국들이다. 핵을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가 핵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제재를 받는 쪽에선 수긍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다. 이에 따라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장을 선택한 북한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NPT 자체를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만든 당사자들이 바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었다. 또한 핵보유국들은 핵클럽의 문을 닫으면서 "핵군축" 약속을 했지만, NPT 발효 40년 가까이 지나도록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국제규범을 위반해 핵무기를 만든 나라는 북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아예 NPT 가입을 거부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이 된 나라들이다. 유엔 안보리도 여러 차례의 결의를 통해 이들 나라의 핵포기를 종용한 바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경제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와 북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친분 여부에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미국과 친한 나라들이고 북한은 미국과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재의 현실은 국제규범의 공정한 적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미무죄, 반미유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망의 실마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 모두 과도한 요구를 내려놓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스톡홀름 노딜을 딛고 중대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친미무죄, 반미유죄'의 현실
나는 제재가 일종의 고문에 해당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고문을 받는 쪽에서 부당하다고 느낄수록 이에 굴복하기보다는 저항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북 제재의 상당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우선 북한이 제재를 받아온 본질적인 이유는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제재 결정권을 갖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모두 핵보유국들이다. 핵을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가 핵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제재를 받는 쪽에선 수긍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다. 이에 따라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장을 선택한 북한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NPT 자체를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만든 당사자들이 바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었다. 또한 핵보유국들은 핵클럽의 문을 닫으면서 "핵군축" 약속을 했지만, NPT 발효 40년 가까이 지나도록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국제규범을 위반해 핵무기를 만든 나라는 북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아예 NPT 가입을 거부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이 된 나라들이다. 유엔 안보리도 여러 차례의 결의를 통해 이들 나라의 핵포기를 종용한 바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경제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와 북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친분 여부에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미국과 친한 나라들이고 북한은 미국과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재의 현실은 국제규범의 공정한 적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미무죄, 반미유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재 중독에서 벗어나야
오해 없길 바란다. 이러한 지적이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거나 제재가 아예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무분별한 제재가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을 부채질해온 것은 아닌지, 또한 제재 중독이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유실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자는 취지이다.
이와 관련해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직후 국내외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의 진단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의 영구적인 중단을 제시하면서 유엔 안보리 제재 11개 가운데 5개의 해제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상당수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모든", 혹은 "사실상의 모든"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요구는 대북 제재 수위를 2016년 이전으로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전에도 대북 제재는 강력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를 채택할 때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는 매번 경신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6년 이전에도 대북 제재 찬양론자들은 북한의 굴복이나 붕괴가 얼마남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재의 수위가 강해질수록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향해 폭주를 거듭했던 것이다.
하노이 노딜과 스톡홀름 노딜을 거치면서 대북 제재의 역효과는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를 대체할 만한 상응조치를 내놓을 형편도 못된다. 북한은 미국에 제재 해결이 싫으면 안전보장과 관련해 구체적인 군사적 담보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인데, 미국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은 제재에 관한 셈법을 바꿔야 한다. 제재를 유지·강화하면서 북한의 굴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핵화 단계에 부합하는 제재 해결 경로를 제시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과유불급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곤경에 처한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를 약점으로 여기면서 자신은 적게 주고 미국에겐 최대한 많이 얻어내려고 했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북한도 통 큰 결단을 준비할 때에만, 미국의 용단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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