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은 폭발력이 안쪽으로 집중되는 내파(內破 implosion)와 폭발력이 외부로 확산되는 외파(外破 explosiom)로 구분하기도 한다. 조국 사태는 어느 쪽을 닮았을까? 내파에 가까운 듯 하다. 조국 사태의 중간점검을 할 때 확인되는 현상에서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이 사태는 여러 측면이 겹친 특징이 있어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리게 되고 거기에 진영 논리가 가미되면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택적 인식·기억 현상 때문에 격렬한 감정대립도 발생하는데 이는 주로 진보 진영이나 그 동조세력 내부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적폐 대상이었던 수구 보수는 그런대로 단일 대오를 유지하면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권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조국 사태로 빚어진 이른바 진보 진영 내에서 발생한 객관적 현상들을 꼽아보면 내파라는 측면이 더욱 명료해진다. KBS와 유시민의 대치로 인한 KBS 내부 갈등 폭발, 한겨레신문의 편집국장에 대한 기자들의 문제제기, 참여연대의 징계 파문 등이다. 이는 조국 사태가 검찰 수사와 피의사실 공포논란 속에 진영대립의 성격으로 굳어지면서 빚어진 갈등이다.
조국 사태에 대해 일각에서 검찰의 쿠데타라고 지칭하는 데 이를 정부 조직이란 틀 속에서 볼 때는 통치권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분석을 피할 수 없다. 검찰이 일탈행위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행정부 조직법이 발동되거나 총리 또는 대통령이 그것을 즉각 시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조국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손가락질하고 똑 바로 하라는 시민의 함성이 그치지 않는데 정작 정부에서 그것을 바로잡는 적극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정부 구조가 상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가장 심각한 내파 현상이다. 대통령은 대선 이후에는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궁극적 책임을 지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
조국 사태는 현상적으로 나라가 두 쪽 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사회진보,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슴 아픈 일이다. 일개 법무장관의 가족에 대한 의혹 문제를 놓고 수백 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지구촌이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 우리 사회가 정말 진보와 개혁을 추구할 과감한 조치나 사회의 민주화 등을 한 단계 높이는 구조적 변혁을 놓고 나라가 들썩인다면 불가피한 진통이라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니다. 법무장관의 언행이나 그 가족들의 의혹으로 나라가 두 조각나는 일이 장기화되고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더 중요한 일들이 묻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이후 개혁 입법을 제대로 통과시킨 실적이 없고 전교조, 노동, 국정원의 기획 탈북 등에 대해 속 시원한, 그래서 박수 받을만한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올인하는 검찰 개혁의 경우 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당연한 논리가 실종된 것은 정말 안타깝다. 지난 수십 년 간 공안검찰이 국정원과 벌인 반민주, 반인권적 범죄 조작행태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범죄에 가까운 적폐중의 적폐다. 그러나 지금 이런 문제제기는 실종 상태다.
검찰과 법무장관이 내놓는 검찰행정개혁은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검찰 개혁은 이런 행정개혁이 아닌 국회에서 공수처법 등의 제정이 더욱 중대하다. 그런데 적폐대상인 일부 야당 세력이 이 법제정의 발목을 잡을 만큼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검찰개혁의 큰 줄기는 여의도 의사당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조국 사태의 심각성은 적폐의 대상이었던 수구 보수 정당이 기사회생의 결정적 호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실, 개혁, 공론화 상징인 광화문이 적폐세력의 손에 넘어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광화문이 태극기와 성조기 부대 등에 의해 점거된 것은 대단히 불행하고 그리고 가까운 정치적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우려를 낳게 하는 심각한 신호의 하나다.
광화문은 이승만, 박정희 독재 이래 민주화 투쟁의 핵심지역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박근혜가 국정농단으로 탄핵되는데 광화문의 촛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촛불이 아닌 적폐대상의 정치집단 등이 광화문에서 활개 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사회변동 과정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현상이라 하겠다.
조국 사태는 진보진영이나 정권 내부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면서 소탐대실, 개혁 목표 방향 상실, 대외적 설득력과 진정성의 기반 약화를 초래했다. 이 사태는 강남 좌파라는 기득권층에게 일상화된 것처럼 우려되는 내로남불, 기득권 유지와 세습을 위한 위법과 탈법, 지나친 자기 합리화 속에서 나타난 보편적 상식의 실종, 진보진영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의 추락, 무능하지만 정직하다는 진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파괴라는 사회적 손실을 초래했다. 특히 적폐세력에게 기사회생의 명분을 줘 박근혜 탄핵으로 가능했던 개혁 입법과 같은 사회 정상화 작업이 지연되거나 심지어 중단될지 모를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조국 사태는 거짓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진실이 입증되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이 있다. 이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나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담당할 세력이 과연 현 집권층일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이 커지는 것은 새로운 세력이 부상할 공간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조국 사태는, 양파의 껍질이 벗겨져 나가면서 역사적 발전이 가능한 동력이 분출할 수 있는 전단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내년 4월 총선에서 민의를 좀더 정확하게 실천할 공복들이 선출될 개연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도 있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내외 정세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조사가 급물살을 타는 과정에서 미군의 시리아 철수를 결정해 미국이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비판이 미 공화당 중진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는 북미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는데, 미 민주당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해 제한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러 변수를 종합할 때 미 민주당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현 정권은 과연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법이 나오겠지만 한반도 비핵화, 평화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남북관계란 남한의 여야 갈등보다 몇 십 배 더 갈등하고 고민해야 할 대장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공론화 하는 예비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등을 고려해 현 집권층은 조국 사태를 빨리 매듭짓고 대선 과정에서 내놓았던 공약들을 적극 실천하고 이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현 사태는 더 끌고 가서는 안 된다. 더 중차대한 국가적 대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는 선택과 집중이면서 비판의 빌미를 최소화하는 신중함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잡음을 증폭시켜 지지층마저 분열케 만드는 식의 내파 정치는 피해야 한다. 정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진실하고 정의로운 정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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