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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이의엽 소장 “조국사태에서의 청년 분노는 시대 전환 징표… 새 시대 주체에 주목해야”


[권종술이 만난 사람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9-10-27 17:31:08
수정 2019-10-27 20: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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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김철수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지난 몇 개월은 정치검찰이 가진 위력과 문제점을 우리에게 여실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심각하게 곪아버린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여기에 맞선 청년들의 분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보진영 내부에선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입장을 두고 논쟁을 했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진보진영에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지만, 진보세력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갈수록 작아지는 존재감에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진보진영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질 것인가를 넘어 진보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떠한 미래를 그려야 하는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을 만나 진보진영이 마주한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의엽 소장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새세상연구소 이사, 통합진보당 정책위원회 공동의장, 통합진보당제19대 총선 상임선대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진보진영의 정책통으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이 소장은 우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터져 나온 청년층의 분노를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 소장은 “조국 현상은 새로운 촛불항쟁 세대에게 비친 현 주류 세대에 대한 인식으로서, 시대의 주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단순한 박탈감과 분노를 넘어서서 새로운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등장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박탈감, 분노, 저항만 이야기하면 자칫 좌절감과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조국 사태에서 진보진영이 논란을 벌인 것과 관련하여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입장과 견해는 다양할 수 있다. 광장이 서초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개혁엔 동의하지만, ‘내가 조국이다’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다수 대중이 있다. 서초동 집회를 두고 참여는 찬성, 불참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것이 문제”라며 “다수 대중은 검찰개혁에 찬성한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방법론, 곧 ‘개혁의 주체가 꼭 조국인가?’에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조국이냐 아니냐?’로 의인화됐지만, 검찰개혁은 결국 ‘어떻게’가 핵심이다. ‘조국이냐 아니냐?’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촛불항쟁 이후 지난 4.19세대, 6월항쟁 세대에 이어 새로운 새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촛불항쟁 이후 새로운 시대의 성격, 진보운동의 방향과 노선에 대한 모색, 새 시대의 새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등등. 이것이 진보운동의 장기적 전략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재의 시대에서 민주의 시대로 이행했고, 다시 독재로 퇴행(이명박-박근혜 정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민주에서 진보로 이행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 방향이다. 다시 말하면 진보가 집권하는 것이 합법칙적 발전 방향”이라며 진보진영이 이런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조국 현상은  
새로운 촛불항쟁 세대에게 비친 
현 주류 세대에 대한 인식으로서,  
시대의 주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12일 저녁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행사가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12
12일 저녁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행사가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12ⓒ김철수 기자
질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철저하게 구조화된 우리 사회 불평등의 문제와 관련한 비판이 쏟아졌고, 특히 젊은 층의 분노가 컸다. 
답변 우선 지적할 것은 없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아니고, 그동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현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해당사자인 청년들이 구체적 현상을 통해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2015년 20대에게 가장 핫한 용어가 바로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이었다. 조국 사태는 ‘수저계급’의 현실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로 됐다.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청년에겐 막연한 분노가 직접적인 분노로 전화되었다. 그들의 분노와 박탈감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여기에 더해 또 주목할 것은 이것이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징표라는 것이다. 현시대의 20대 청년은 4.19 세대도, 6월항쟁 세대도 아니다. 촛불항쟁 세대다. 조국 전 장관은 이른바 586세대의 상징이다. 조국 현상은 새로운 촛불항쟁 세대에게 비친 현 주류 세대에 대한 인식으로서, 시대의 주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단순한 박탈감과 분노를 넘어서서 새로운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등장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박탈감, 분노, 저항만 이야기하면 자칫 좌절감과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질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서초동에서 촛불을 같이 들자는 입장부터 조국 임명에 비판적인 입장도 있었다. 조국 장관이 물러났지만, 여전히 이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답변 이것이 진보운동의 현주소다. 평가가 필요하다. 지금 진보민주개혁진영에 필요한 것은 공론화다. 이미 내려진 특정한 결론에 따라 진영으로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의 과정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성의 논리에 따른 결론이 아니라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고, 이를 두고 치열한 모색이 필요하다. 결론이 없거나 입장의 다름에 따른 통일된 견해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공론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 진짜 문제다.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입장과 견해는 다양할 수 있다. 광장이 서초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개혁엔 동의하지만, ‘내가 조국이다’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다수 대중이 있다. 서초동 집회를 두고 참여는 찬성, 불참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것이 문제다. 다수 대중은 검찰개혁에 찬성한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방법론, 곧 ‘개혁의 주체가 꼭 조국인가?’에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조국이냐 아니냐?’로 의인화됐지만, 검찰개혁은 결국 ‘어떻게’가 핵심이다. ‘조국이냐 아니냐?’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이다.
“정치검찰은 지금, 마치 
정치군부가 쿠데타로 대응하듯이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가 
이 시대의 개혁 과제다.”
 
질문 최근 쓰신 칼럼을 통해 “현재 검찰은 주권자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통제받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다”면서 “정치군부를 물리쳤듯이 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답변 시대적 과제가 변했다. 1987년 이전까지는 군사독재 청산이 시대적 과제였다. 4.19를 뒤집은 것이 바로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다. 정치군부 청산이 이후 우리의 시대적 과제였다. 1987년 이후 정치군부는 종식됐다. 예를 들자면 1987년까지만 해도 정치 군부가 실세였던 시절에 검찰은 국정원의 지휘를 받는 하부 조직, 정치군부와 국정원의 일개 하수인에 불과했다. 이후 정치군부가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를 정치검찰이 차지했다. 검찰 독립성이라는 미명하에 시민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치군부를 청산하는 핵심은 시민에 의한 군의 통제, 바로 문민통제다. 마찬가지로 검찰도 시민에 의해 어떻게 통제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통제 장치가 전혀 없다. 더욱이 검찰은 수사권은 물론이고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에 일곱 번째 정부가 들어섰다. 검찰개혁을 하려던 정권은 매번 임기 후반기에 정치적 보복을 당하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가 끝난 뒤 검찰개혁을 임기 초반에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창기 ‘평검사와 대화’ 등을 통해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해서 결말이 좋지 않았다. 이것은 단임제 정치권력의 한계다. 정치검찰은 지금, 마치 정치군부가 쿠데타로 대응하듯이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가 이 시대의 개혁 과제다.
검찰 관계자가 9월 23일 서울 서초구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한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2019.09.23
검찰 관계자가 9월 23일 서울 서초구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한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2019.09.23ⓒ정의철 기자
칼럼에서도 소개했는데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일본의 사례, 1945-2012년’(마코사키 우케루 저)를 보면 우리에게도 시사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일본에 평화헌법을 제정해서 군부를 해체해버린다. 미국은 그 뒤 검찰과 언론을 통해서 미국에 순종적이지 않은 정치세력과 정치인을 은퇴시키거나 내각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일본을 지배해 왔다. 그걸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똑똑히 경험하고 있다. 분명히 지적하려는 것은 적폐의 본산이 정치검찰이라는 것이다. 
질문 연관 지어 적폐청산이 우선이기 때문에 개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과 문재인 정부의 개혁 지지부진 또는 후퇴를 규탄하는 것이 우선이냐는 고민이 진보진영에 있다.
답변 힘을 싣거나, 아니면 비판하는 두 가지 선택만 있는 건 아니다. 옳은 건 지지하고, 잘못은 비판하는 것이 우리 진보세력의 역할이다. 제가 누차 강조하는 점은 단임제 정권의 구조적 한계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청와대와 대통령은 단기 계약직이다. 반면에 검찰은 정규직이다. 민주화 이후 30년의 경험은 관료들에게 10년만 견디면 정권은 바뀔 수 있다는 나쁜 신호를 줬다.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항상 레임덕이 시작되고, 4년 차에 정치적 게이트가 터지고, 5년 차에 가족 비리가 터지곤 했다. 보수 정부건 민주 정부건 예외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단임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린 것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조국 장관 임명은 문재인 정부의 과욕이었다고 본다. 왜냐면 임기 후반기에 개각하는 것은 정부의 면모를 일신해서 개혁을 더욱 힘 있게 추진해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전임 정부의 예를 보면 매번 그것이 오히려 레임덕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이고, 가까운 사례가 박근혜 대통령 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박근혜 정권이 면모를 일신한다며 개각을 하게 된다. 당시 정홍원 총리,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이 다 사표를 낸다. 그런데 후임자로 내정됐던 안대희 등이 줄줄이 낙마하고 만다. 그래서 사표까지 냈던 황교안을 다시 총리로 임명하지 않았었나? 임기 3년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내각의 면모를 일신해서 개혁해보겠다는 주관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오히려 정국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정권의 레임덕을 촉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국면에 진보진영이 힘을 보탤 것이냐, 비판할 것인가를 두고 견해가 갈릴 수 있겠지만, 단임제 정부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하고, 거기에 맞춰 역할을 잘하는가를 지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가 전임 민주 정부에서 과연 무엇을 배운 것인지, 대체 집권 이후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갖춰졌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보진영이 개혁에 힘을 싣느냐, 아니면 문 정부를 비판하느냐 하는 것은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문 정부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넘어서 노동자를 비롯해 민중의 절박한 현실적 요구에 대해서 진보가 어떻게 대변하고 독자적인 실현의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큰 기대를 걸었던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선 실망이 클 수 있다. 
그러나 그 실망이 현재의 집권세력에 대한  
기대의 철회라고 한다면,  
결국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민중이 자주적으로 독자적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김철수 기자
질문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대를 건 사람들이 많았지만, 노동개혁 등 많은 부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그동안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답변 한마디로 역사적 한계다. 역대 정부 가운데 개혁과 관련해 가장 조건이 좋았던 때는 노무현 정부 3년차였다. 탄핵 역풍으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단독으로 국회 과반을 차지했다. 그해 연말에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그런 좋은 조건에서조차 개혁에 실패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으로 집권은 했지만, 입법부는 아직 안 바뀌었다.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처리를 패스트 트랙에 태웠지만, 이조차 잘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이 국회를 통한 제도화 단계에서 막히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권이 단임제인데, 벌써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청와대의 개혁 추진력은 갈수록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칫하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으로까지 떠밀려 갈 수 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선 실망이 클 수 있다. 그러나 그 실망이 현재의 집권세력에 대한 기대의 철회라고 한다면, 결국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민중이 자주적으로 독자적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투철한 자각과 주체적 결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질문 기존의 정치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것인가?
답변 그동안의 정치는 팬덤 정치다. 스타 마케팅에 기초해 대리자를 통해서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3김 시대’의 유산이다. 노사모도 같은 정치 문화다. 그것이 갖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시대가 교체되고 있다. 자연과 사회는 다르다. 자연은 기계적이다. 여름이 가면 무조건 가을이 온다. 그 흐름이 역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민주화 30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독재를 끝내고 조금씩 더 민주적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방향인데,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부로 진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로 퇴행했다. 지금 고민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어떻게 보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인은 주체의 역할이다. 4.19 이후를 4.19세대, 6월항쟁 이후를 6월항쟁 세대, 소위 586세대라고 한다면, 촛불 항쟁 이후에는 촛불세대라는 새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는가가 결정적인 요인이다. 
4.19도 6월항쟁도 주역은 대학생이었다. 촛불항쟁엔 대학생도 참여했지만, 주역은 노동자와 농민이었고 절대다수가 노동자였다. 비교해 보면, 1987년 6월항쟁 당시 범국본은 전대협, 민통련, 기타 야당 인사 등이었던 반면에 2016년 촛불항쟁을 주도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약칭 퇴진행동)은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이 주축이었다. 지난 시기에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시대의 주역이 노동자·민중으로 바뀌었다. 결국 ‘미래의 주역이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시대적 화두다. 그렇다면, 30년 전 6월항쟁 당시에 전대협이 가장 도덕적이고 신뢰받는 신뢰집단이었던 것처럼, ‘지금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민중의 기대와 신뢰를 받는 신뢰집단이 되고 있는가?’ 되물어봐야 할 때다. 지금 한국 사회에 그런 신뢰집단이 존재하는가? 있다면 어디인가? 586세대에 실망하고 이탈한 민중이 찾고 있는 것이 그런 신뢰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자한당은 이미 생명력이 다한 낡은 집단임에 분명하고, 민주당 역시 민중의 기대와 신임을 저버리는 실망스러운 세력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뢰집단은 누구란 말인가? 그런 새로운 신뢰집단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그것이 진보의 조직적 과제다.
“촛불항쟁은 민주노총이  
조직률 5% 시대에서  
조직률 30%의 시대로 이행해 
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러한 주체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질문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투쟁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답변 그렇게 보진 않는다. 진보의 영역을 제한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 조국 사태의 첫 번째 소회였다. 조국 이전에 586을 대표하는 정치인 안희정이 낙마했다. 미투 운동의 결과였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혜화역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소위 ‘불편한 용기’ 여성들의 광장 진출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기존의 여성운동과는 흐름이 다른 것 같고, 전혀 새로운 흐름이다. 
7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3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03
7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3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03ⓒ김철수 기자
그런 새로운 흐름이 광장에서뿐 아니라 디지털 세계, 온라인 세계에서 폭넓고 다양하게 자발적이고 역동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조직 노동자들도 제조업이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노동 부문을 넘어서 10대 특성화고등학생에서부터 평균 연령이 60대에 달하는 요양보호사 노동자들까지 굉장히 폭넓고 다양하게 노동운동에 합류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의 형성을 굉장히 고무적으로 본다. 새 시대의 새 주체가 등장하고 조직된 힘으로 형성 발전돼 가고 있는 현상이다. 
질문 말씀해주신 대로 새로운 노조가 생기는 등 노동조합 가입자들이 늘어나는 등 진보운동 역량 강화 면에서는 긍정적인 흐름도 보인다. 
답변 촛불광장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광장의 힘은 민중의 저력이 폭발한 것이었다. 거기서 확인되는 바는 세 가지다. 첫째, 표현의 자유다. 자유 중에서 가장 1차적인 자유가 표현의 자유다. 양심의 자유가 곧 표현의 자유다. 이명박-박근혜 시대는 ‘공포와 위축’의 시절이었다. 당시 나꼼수에서 ‘쫄지 마’라고 강조했던 것이 그 시대의 축도(縮圖)다. 촛불이 열어낸 해방광장에서는 누구도 위축되지 않고 쫄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사회적 공론이 형성된다. 둘째, 결사의 자유다. 서로 이해관계의 일치성을 확인하고, 공동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단결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면, 예컨대 노동자의 경우 노조의 조직화로 결사하게 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3년 동안 조합원이 30만 명이나 늘어나면서 전체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광장의 자유가 곧 결사의 자유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집회·시위의 자유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조직적으로 결사한 다음에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의 행위는 집회·시위를 전개하는 것이다. 지금 광장이 분주하고 번잡한 이유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주목할 것은, 강물의 표층은 바람에 따라 흔들릴 수 있지만, 심층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층 민심의 저류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꿰뚫어 봐야 한다. 기층 민심이 중요하다. 상층의 정치권에서 어떤 정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합집산을 통하여 세력 대결의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년 선거를 거치고 나면 간결하게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의 변화일 뿐이다. 주체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항쟁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여는 것이며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예고한다. 6월항쟁의 산아가 민주노총이었다. 6월항쟁에 이은 7~9월 노동자대투쟁은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조직 노동자들이 역사의 기본 동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예고했다. 촛불항쟁은 민주노총이 조직률 5% 시대에서 조직률 30%의 시대로 이행해 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러한 주체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진보운동은 시대의 의제를 
선도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남북 당국이 합의한 
군축 평화의 의제를 전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세를 변화에 뒤처진 것 같아서 안타깝다.”
 
질문 지난해 쓰신 책 ‘전환기 진보운동’에서 “진보운동가들은 대개 ‘나는 진보적인데 왜 세상은 안 바뀌는가?’를 고민하는 편인데, 2018년에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던 것 같다. 객관 정세가 눈부시게 변하는데 오히려 주체의 의식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시대의 전환에 따른 의식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특히나 시대를 앞서나가야 할 진보운동에게는 전환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의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환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어떠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가? 
답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남북 당국의 ‘평화와 번영’ 합의는 한국 사회와 통일운동 진영에 큰 화두를 던졌다. 당시 4.27 판문점 회담의 표지석에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새겨져 있다. 자주와 통일도, 평화와 통일도 아니고, 평화와 번영이라는 화두가 던져진 것이다. 곧바로 남북통일이 아니라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다. 정작 남측의 진보 세력에게 4.27 선언의 의미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화’의 마인드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기존의 반전 평화운동과 함께 군축 평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소극적 평화가 전쟁의 억제라면 적극적 평화는 군축을 통하여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전체제인 한국 사회에서 군축은 지금까지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12 싱가포르에서 조미공동선언이 발표되자, 한반도에서 안보의 시대가 갔다고 평가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밝힌 6월 14일 NSC 전체회의 발언을 상기해 보자. 이건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제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내에 남북의 화합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은 뒤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내에 남북의 화합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은 뒤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하지만 진보진영의 통일운동은 고답적이고 관성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마크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8월 초에 한국을 다녀갔다. 방문 목적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호르무즈 해협 파병, 중거리 미사일의 한국 배치 등이었다. 아울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명확히 밝히고 돌아갔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통일선봉대는 같은 시기에 부산에서 출범식을 하고 활동했다. 이게 과연 올바른 대응이었는지 토론해봐야 한다. 나는 관성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통일운동의 시대적 화두가 무엇이며, 통일선봉대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했고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남측 당국이 선언한 의제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진보운동은 시대의 의제를 선도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남북 당국이 합의한 군축 평화의 의제를 전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세를 변화에 뒤처진 것 같아서 안타깝다. 현실 분석조차도 과학적으로 안 되는데,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가능할까? 관성과 경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꼰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시대를 선도하는 게 진보다. 현재를 지키자는 게 보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수구다. 현실과 미래를 과학적으로 분석·전망한 데 기초해 시대적 화두를 정확히 제시하고 있는가. 당장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이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쉬운 일이다. 그건 자한당 같은 야당도 한다. 진보운동은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냐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가령 군사독재 시대엔 반독재 민주화가 과제였고, 그것을 타도하자가 진보운동의 구호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빼앗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을 탄압하므로 문재인 정부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스러운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진하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MBC는 해고자가 다 복직했고, 해고자 출신이 사장을 하고 있다. MBC가 우리가 기대한 만큼 변화가 이뤄지려면 여전히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집행부는 바뀐 거다. 이건 촛불항쟁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고, 정권교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하여 지적·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보이지, 단순히 현재에 대해 비판에만 그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비판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현재를 비관하고 남을 탓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이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시기 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어떻게 새롭게 도약할 것인가. 
이런 주제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질문 과거 진보세력은 현실을 분석하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다소 거칠긴 했지만, 사회구성체 논쟁을 벌이는 등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움직임을 찾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답변 그런 토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이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시기 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어떻게 새롭게 도약할 것인가. 이런 주제에 대한 활발하고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국가보안법의 한계가 아직 남아있지만, 새로운 대안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모색과 논쟁이 필요하다.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배워야 할 건 공론화의 위력이다. 우리가 고민하는 바를 사회적 화두로 제기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그것이 집단 지성의 힘이다. 예전처럼 더 이상 대중들에게 정보가 없거나, 접근 권한이 제한된 게 아니다. 대중의 참여를 어떻게 조직하고 그들의 지혜를 어떻게 하나로 모아낼 것인가가 과제다. 예전의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였다. 지금은 대중이 그런 리더십을 싫어한다. 함께 토론하고 함께 찾아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사회적 담론을 어떻게 형성하고, 그걸 통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대안을 찾는 것이 절실한 시대다. 지금 경계할 것은 관성과 경험주의다.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세대는 대학생과 청년들이었다. 경험이 부족했지만, 관성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30년의 운동 경험이 쌓여있다. 이것이 약으로 될지 독으로 될지는 그것이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다르다. 미래를 여는 훌륭한 자산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유해한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김철수 기자
질문 또 같은 책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전환이 시작됐고, 2018년은 평화의 새로운 미래로 가는 시작의 첫걸음을 뗀 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9년 들어 북미 간에 난기류가 흐르고, 문재인 정부도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면서 남북 관계는 얼어붙고 있다. 
답변 정전체제가 수립된 지 66년이다. 북미와 남북 간에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반세기 넘는 적폐가 1~2년 안에 금방 청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조급성이다. 또 하나는 단임제 정부가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어서 변화를 추진하는 동력이 떨어지고 속도가 더뎌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그래서 조급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정전제체가 종식되고 평화체제로 가는 건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어길 수 없는 법칙이다. 지금은 변화의 과정에서 곡절을 겪고 있을 뿐이다. 4.27 판문점 표지석에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돼 있다. 아직 싹이 트거나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은 게 아니다. 이제 씨앗을 심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 싹이 안 튼다고 당장이라도 얼른 땅을 파헤쳐 보자고 하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 해방에 대한 염원이 간절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주관적인 욕망만 갖고 되는 건 아니다. 평화체제 이행에 대하여 북의 정책은 방향도 원칙도 일관돼 있고, 미국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America First!)는 원칙에서 일관돼 있다. 문제는 남쪽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책의 방향도 원칙도 왔다갔다 하고 일관성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조울증에 가깝다. 
남측 사정을 놓고 보면 결국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가령 내년 4.15 총선에서 화해 협력 세력이 압승을 거두면 비록 문재인 정부의 임기 후반기이긴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변화의 동력에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간섭으로 지금 정부와 여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 21대 총선에서 압승하면 남북 합의 선언의 국회 비준과 관련 입법 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 생긴다. 그때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고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변화를 기대할 게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평화 호전 세력 자한당은 그런 점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색깔론을 비롯하여 온갖 가짜뉴스를 총동원해 발악의 몸부림을 칠 것이다. 내년 4.15 총선이 한국 사회 내부의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진척뿐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서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진보 집권의 장기적인 전략과 함께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 로드맵 속에서 진보진영에  
내년 총선은 어떤 의의가 있고  
선거에서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명확히 정리되어야 한다.”
 
질문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진보진영의 과제는 무엇인가?
답변 진보진영에는 장기적 과제와 단기적 과제가 함께 있다. 장기적으론 진보운동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집권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사회구성체 논쟁을 거쳐서 한국 사회의 성격 규정과 사회운동의 노선이 정립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1987년 6월항쟁이 벌어졌던 것이고, 이후 민주화 30년을 거쳤다. 1997년 외환위기가 또 하나의 방향 전환점(변곡점)이 됐다. 촛불항쟁 이후 새로운 시대의 성격, 진보운동의 방향과 노선에 대한 모색, 새 시대의 새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등등. 이것이 진보운동의 장기적 전략 과제다. 한국 사회가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다음에, 현재의 문재인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를 넘어서 보다 민주적이고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의 방향이다. 독재의 시대에서 민주의 시대로 이행했고, 다시 독재로 퇴행(이명박-박근혜 정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민주에서 진보로 이행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 방향이다. 다시 말하면 진보가 집권하는 것이 합법칙적 발전 방향이다. 진보운동이 그 준비를 해가는 것이 장기적 과제다. 
단기적 과제는 진보진영이 내년 4월 총선, 나아가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잘 치르는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에 따라 2020~2022년을 어떻게 승리의 과정으로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 중요성이나 절실함에 대해서는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진보 집권의 장기적인 전략과 함께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장기적 전략 방향 설정과 단기적 전술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타산 없이 매 선거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은 전략전술의 부재이고, 과학이 아니다. 마치 마라톤을 뛰는데 작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매 순간 전력질주하자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월 28일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2019 민중당 정책당대회 당원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9월 28일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2019 민중당 정책당대회 당원한마당 축제가 열렸다.ⓒ민중당 제공
진보운동이 안고 있는 과제는 무겁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지만, 지금이 진보운동에게는 다시 오기 힘든 큰 기회다. 자한당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진 과거이고, 민주당에 걸었던 큰 기대가 실망으로 귀결돼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민심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자 20년 집권, 50년 집권 이야기까지 하면서 설레발을 쳤었다. 민주당이 지난해 자기들에게 몰표를 몰아줬던 민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조국 사태’였다. ‘조국 사태’는 주관적 환상과 기대가 스러지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실체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자한당은 적폐 세력으로 퇴출 대상이고 민주당은 자기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황이다. 객관적인 정세를 보면, 진보가 민중의 기대와 신뢰에 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다름 아니다. 과연 주체적으로 진보운동이 그런 미래의 대안 세력으로 부각될 수 있는가가 핵심 열쇠다. 진보운동이 새로운 대안의 신뢰집단으로 어떻게 자기 모습을 갖춰가는가, 미래의 대안 세력으로 주체적인 준비를 어떻게 해가는가가 중요하다. 그건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질문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각 정치세력이 총선 준비에 나서고 있지만, 진보세력의 준비는 미진하다. 과거엔 통합, 연대 등 총선을 앞두고 여러 시도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이런 움직임조차 없다. 
답변 관성에서의 탈피가 필요하다. 진보진영이 지금 통합과 연대를 말할 내적 준비가 됐나 돌아봐야 한다. 각자도생에 급급한 현실이다. 통합과 연대는 자기 힘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낙관이 전제되어야 논의가 가능하다. 문제는 진보진영의 사상·정신적 상태라고 본다. 진보진영에서는 지금 진보 집권에 대해 말하면 아마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진보의 집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통합도 연대도 다뤄야 하는 필수 주제로 된다. 그런데, 지금 과연 그런 이야기를 꺼내서 논의할 게재가 되겠나. ‘통합과 연대에 대한 논의가 왜 없는가?’ 하는 현상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은 그런 주제가 논의조차 어려운 진보진영의 사상·정신적 상태다. ‘자기 힘에 대한 믿음이 있나? 승리에 대한 낙관이 있나?’ 자기 진단과 성찰이 필요하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고 했듯이, 
새로운 시대는 이제 ‘시작’인 거다. 
지난 30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질문 내년 총선도 결국 그런 성찰 없이 관성적으로 준비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신데.
답변 환상의 끝은 환멸이다. 있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해야 한다. 그것이 유물론이다. 주관적 기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냉철하게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출발의 전제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고 했듯이, 새로운 시대는 이제 ‘시작’인 거다. 지난 30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한 시대나 체제를 30년으로 잡으면, 촛불항쟁이 일어난 2016년으로부터 치면 약 2045년(해방 100주년)까지를 새로운 시대로 볼 수 있다. 30cm 자로 치면 이제 겨우 2~3cm 정도 지나온 것이다. 걸음마를 떼고 있는 단계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보면서 ‘저래서야 언제 가야 뛰겠나?’라고 안달복달하는 것은 올바른 부모 마음이 아니다. 주관적 기대를 앞세우면 몸과 마음이 괴리된다.  
자기 힘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낙관, 이런 승리적 관점이 전제되어야 뭐가 돼도 되는 것이다.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는데 어떻게 희망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나. “옛날엔 이랬었는데…”와 같이 옛날이야기만 늘어놓는 경로당 토크의 결말은 한숨과 허망함뿐이다. 그래서야 어떻게 생산적인 토론이 진행되겠으며, 그런 토론에서 어떻게 총선에 대한 승리의 작전이 수립될 수 있겠나. 더구나 나 자신도 확신이 없는데, 다른 누구를 설득하겠나.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10.21ⓒ김철수 기자
진보운동은 지금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씨앗을 심는 단계다. 내년에 당장 풍성한 열매를 거두자는 게 아니라 이제 파종을 하는 것이다. 심은 씨앗이 싹이 트고 튼튼히 자랄 수 있게 기꺼이 거름이 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한때는 기름진 옥토였던 진보정치의 터전이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지력이 쇠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황무지라고 한다면 다시 복토하고 거름을 넣어서 지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다. 단기간에 수확할 순 없을지라도 진보정치의 터전을 다져놓아야 미래가 있을 것 아닌가. 선거는 추수다. 이제 겨우 새 씨앗을 파종했는데, 당장 내년 총선에서 큰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질문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 
답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 없이 열리지 않으니 새 주체의 형성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을 하려고 한다. 새 주체를 발굴하고 그들이 새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데서 필요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 새 세대의 요구와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의 개발, 교재의 연구와 발간, 민중 교육 방법의 개선 등등. 그런 걸 해보려고 한다. 민중교육연구소를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다. 이제 겨우 막 첫걸음을 뗀 단계이고, 앞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당분간 몇 년은 연구소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연구소 사업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할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항상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구소 일에 전념하려고 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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