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의 1이 무당층, 이들은 투표할까?
입력 : 2019.10.13 09:32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42.2%.
과거의 어느 시점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한길리서치가 10월 3일부터 6일까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한 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에서 ‘잘 모름/무응답’은 4.3%였다. 여기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를 더하면 모두 46.5%에 이른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잘 모르겠다, 응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할 경우 재질문을 하면 수치가 떨어지겠지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재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첫 질문에서 나온 응답을 그대로 수치화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 응답자는 28.4%, 자유한국당은 15.3%, 바른미래당 3.7%, 정의당 4.6%로 나타났다. ‘지지정당이 없다’는 세대별 구분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19∼29세에서 절반이 넘는 57.3%가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변했고, ‘잘모름/무응답’은 8.4%였다. 합치면 65.7%에 이른다. 30대에서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47.6%에 달했다. ‘잘모름/무응답’은 3.3%였다. 홍 소장은 “무당층을 보면 젊은 층이 많다”면서 “두 달 동안 이어진 ‘조국 정국’을 지켜보면서 젊은 층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한길리서치에서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정당 없다’는 37.0%, ‘잘모름/무응답’은 7.9%였다.
무당층 비율 19∼29세에서 가장 높아
무당층이 많이 나온 최근의 다른 조사로는 추석 이후 SBS가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전화면접 조사한 결과가 있다.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30.5%가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했고, ‘모르겠다’는 8%에 이르렀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반민비한(민주당에 반대하지만 한국당 지지는 아님)’ ‘비민반한(민주당 지지자는 아니나 한국당에 반대)’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점차 증가폭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이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매주 여론조사를 해온 갤럽의 조사를 보면 무당층은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꾸준히 25% 안팎에 머물렀다. 전체 응답자의 4분의 1이 무당층인 셈이다. 지난 10월 첫 주 조사에서는 무당층이 25%였다. 오차범위 이내이기는 하지만 한국당의 지지율 24%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 민주당은 37%였고, 정의당 8%, 바른미래당 7%였다. 갤럽의 무당층 수치에는 ‘지지정당 없음’ ‘모름/응답거절’이 포함돼 있다. 무당층 25% 중 ‘지지정당 없음’은 19%였다.
무당층 비율은 19∼29세에서 가장 높았다. 19∼29세에서 무당층은 40%(지지정당 없음은 28%)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무당층은 20대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30대, 50대, 60대 순”이라면서 “진보성향인 20대와 30대의 무당층은 선거 때가 되면 민주당 또는 정의당 투표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고, 50대와 60대의 무당층은 아직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선거에서는 보수성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갤럽의 10월 조사에서는 무당층과 관련해 특이한 점이 눈에 띄어 정가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바른미래당)가 차기 지도자 조사에서 이낙연 총리(22%), 황교안 대표(17%)에 이어 7%로 3위를 차지했다. 무당층에게서는 차기 주자들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인 14%를 차지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 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에 대해 “안 전 대표는 제3세력의 상징성과 문재인 대통령의 경쟁자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어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엄경영 소장은 “조국 정국으로 정치불신이 심화하면서 기존 정치인이 아닌,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안 전 대표가 부각된 것”이라면서 “안 전 대표의 지지가 20대와 50대에서 많이 나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화면접 조사와는 달리 ARS(자동응답시스템) 조사에서는 무당층이 적다. 리얼미터의 정례조사에는 무당층이 10%대 초반으로 나타난다. 자동응답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 특성상 무당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무당층에 관한 한 전화면접 조사가 더 정확하다고 보고 있다.
내년 총선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무당층의 선택이다. 이들이 일단 선거에 참여하느냐를 두고 각각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무당층의 선거 참여 여부가 투표율 상승 또는 하락을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무당층 선거 참여 여부가 투표율 결정
현장 민심을 체감하는 지역구 의원들로부터는 투표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민주당 의원 측은 “조국 정국 이전에는 지역구가 조용해 내년 총선에서 굳이 투표할 필요까지 있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면서 “하지만 최근 정국이 바뀌면서 지역구에도 긴장감이 돌아 내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올해 연말에 ‘개혁 대 반개혁’의 프레임이 짜여지면서 무당층이 줄어들고 선거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예측했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한 한국당 의원 측 역시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격화되면서 투표율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면서 “노년층은 원래 투표율이 높으므로 투표율 상승이라는 것은 결국 무당층이 많은 청년층에서 투표에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대부분 무당층이 많아지면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홍 소장은 “무당층이 많은 20대와 30대 일부는 내년 총선에서 투표를 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정치불신 심화는 대안이 없는 한 투표율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했다.
정치평론서 <정치의 귀환>의 저자인 유창오씨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무당층이 투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50%대의 투표율에 머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6년 20대 총선의 투표율은 58.0%였다. 가장 최근인 2018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60.2%였다. 유씨는 “투표율이 낮을수록 전화면접 조사보다 오히려 ARS 조사가 더 투표 결과에 근접하게 예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상승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투표율을 지금 이야기하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며 “정당에 대한 심판 정서가 커지면 투표율은 상승하게 된다”고 밝혔다. 홍형식 소장은 “무당층이 투표장에 나오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가시적인 정치개혁과 참신한 인재 영입,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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