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던 그 날로부터 2천일이 지났다.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심장이 무너진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고 기다리다가 죽었다. 304명의 아이를, 국민을 수장시킨 자는 누구인가. 그들 중 누가 얼마나 처벌받았나. 업무상 과실죄로 3년 형을 받은 이가 한명 뿐,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가 없다. 그게 지금 이 나라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딸) 표창장 하나 찾겠다고 생난리 치는 검찰이 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천일이 지난 6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기억문화제 ‘2000일의 소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단원고 2학년 8반 장준형 아빠’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참사 2000일을 맞아 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억문화제 '2000일의 소원'에서 한 참석자가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2019.10.6.ⓒ뉴스1
“책임자를 처벌하라”
이날 문화제는 오후 6시부터 세월호 기억공간이 있는 광화문 남측 광장에서 열렸다. 문화제에는 시작부터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로 가득 찼고, 문화제가 진행되는 도중엔 더 많은 시민이 몰려들면서 주위를 가득 메웠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서 문화제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남측광장 주변을 둘러쌌다.
사회자는 시민운동가이자 토크컨설팅 대표인 최광기 씨가 맡았다. 2000일을 기억하는 영상과 가수 이승환, 장필순, 밴드 허클베리핀 등이 무대에 서서 2000일 문화제를 빛냈다. 또 이 자리엔 세월호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우리가 꿈꾸는 사회, 나라가 있다. 2000일 전부터 그런 나라 만들자고 약속하지 않았나. 서로 격려해 가면서 검찰도, 언론도, 사법부도, 나라도 바로 세워나가자”라고 외쳤다.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해선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 자식을 죽인 살인범들을 모조리 잡아 처벌해 달라고, 그래야 두 번 다시 이 땅에 우리가 겪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절규한 날이 2천일이다. 도대체 얼마나 목놓아 소리쳐야 하나”라며, 전날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야기를 꺼냈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어제 우리 엄마, 아빠들도 서초동에서 촛불을 들었다”며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수십 곳을 압수수색하고 수십 명이 넘는 검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대단한 검찰이 부실수사, 편파수사로 (우리 아이들을 죽인) 살인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지금도 검찰은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다. 우병우·김기춘·황교안을 비호하기 위해, 국정원·기무사 죄를 덮기 위해,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검찰은 누구 편인가. 국민을 살해한 자들, 진실을 은폐한 자들의 편인가”라며 “황교안(자유한국당 당대표)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기록을 은폐한 자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앞장서서 방해한 자다. 왜 수사 안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우리가 직접 그들을 고소·고발할 것”이라며 “검찰은 우리의 고소·고발에 조국 장관 수사하듯 신속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검찰의 주인은 세월호 참사 책임자가 아닌, 우리 국민들”이라며 국민 고소·고발인단에 참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크게 외쳤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문호승 세월호참사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문 소위원장은 “1기 특조위는 여러 가지 방해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선체조사위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침몰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저희 2기 특조위가 그 과제를 넘겨받았다”며 “저희는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진상규명 노력은 왜 그렇게 방해를 했는지 등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관련 증거를 수집하고 찾는 일에 매진하고 있으며, 다음 달 초에는 ‘국민고발단’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의혹 사안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소·고발이 제대로 기소로 이어지고 처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증거를 찾는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6일 세월호 기억문화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가수 이승환.ⓒ민중의소리
이승환 “우리의 마음, 그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이날 문화제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문화제에 빠짐없이 참여해 왔던 가수 이승환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대를 빛냈다.
이승환은 “예전에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살다가, 천일 만에 사랑이 자꾸 흩어지는 걸 보고, ‘천일동안’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제가 영원한 사랑을 꿈꿨던 그 시간보다 두 배나 긴 2천일 동안 여러분의 기억과 바람,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고 흩어지지 않고 이렇게 모여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쯤 되면 오랫동안 염원한 일이 한 번쯤 일어나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라며 “해경 중 누군가가, 아주 단편적인 사실만이라도 양심선언을 해주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기억, 고백이 모인다면, 진실에 다가서는 데 큰 힘이 될 텐데”라며 “우리들의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환은 “이 노래 어울릴지 모르겠다. 사랑노래이긴 하지만, 제 노래가 어떻게 보면 다 그리움에 관한 노래여서 어울린다”며 노래 ‘천일동안’과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을 열창했다. 다시 한번 광화문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의 노래 가사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로 이어지는 후렴구가 시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밴드 허클베리핀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떠오르는 노래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그리고 허클베리핀의 대표 노래 ‘사막’을 불렀다. 각종 집회와 대회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허클베리핀만의 색깔로 편곡해 부르기도 했다. 가수 장필순도 무대 위에 올라 ‘보헤미안’ 등의 노래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공연도 이어졌다. 가족들은 시민들과 함께 노래 ‘약속해’와 ‘조율’ 등을 합창했다. 마지막 노래 순서에서 가족들은 “여러분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끝까지 책임자 처벌”, “우리 모두는 세월호의 증인입니다”, “반드시 진상규명” 등의 문구가 적힌 손펼침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희생자를 낸 대규모 해상 사건이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의 미흡한 대처 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며, 이후 특별조사위원회 등의 활동 과정에서 외압과 은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에 1기 특조위가 2015년에 꾸려졌지만, 당시 정권과의 갈등을 겪으며 정상적인 활동을 못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전히 남은 논란 속에서 2기 특조위가 지난해 12월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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