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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3일 화요일

남북 정상회담 답 없이 러시아行, 김정은 속내는?


[정세현의 정세토크]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러시아 역할론'

2019.04.24 11:33:2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첫 외교행보라는 점에서 관련국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북핵 문제를 북미 간 양자가 아닌, 다자적으로 풀어가려는 북한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대체적이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북미 협상 국면에 '러시아 역할론'이 던지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목적과 관련해 "우선은 경제적인 협력이 급해 보인다.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체류 연장을 협의하고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 내기 위한 것 등이 북한의 1차적 목적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두 번째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며 "북한은 남북미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북핵 문제를 다자화시켜야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핵 협상의 판이 커지면 이 협상에서 미국의 지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백업해주면 미국의 대북 압박 강도가 높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북한은 이를 노리고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지분이 줄어들면 미국이 북한한테만 최종적인 비핵화 목표를 내놓으라고 일방적으로 압박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 핵 위협도 줄일 수 있다"며 "북한은 이러한 다각적인 포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에는 아무런 응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아마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느라 문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회담에 공식적으로 응답할 상황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북한은 뭐 하나 일이 진행되면 다른데 신경을 쓰지 못한다. 남북 간 당국자 회담만 있어도 민간 차원의 접촉을 제한하는 것이 북한의 특성"이라며 "북러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도중에 남북 정상회담을 언제 하겠다고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만약 남한 정부가 이걸 기대하고 냈다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러시아와 정상회담에서 나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 중에 남북 정상회담에 쓸만한 카드가 있는지, 이걸로 미국에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낼 것이 있는지 등등을 결론 내려야 남북 정상회담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2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섣부르게 제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우선 문 대통령이 이를 제안한 시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기 때문인데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정말 미국과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냐는 의구심이 나오니까 북한에 만나자는 제의를 일단은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외형상으로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미국이 빈손으로 문 대통령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미국 무기도 그렇게 많이 샀는데, 하다못해 쪽지라도 하나 문 대통령 손에 들려서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문제는 한국은 미국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데 북한이 왜 여기에 대해 응답하지 않고 있냐는 겁니다. 북한은 아마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느라 문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회담에 공식적으로 응답할 상황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북한은 뭐 하나 일이 진행되면 다른데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남북 간 당국자 회담만 있어도 민간 차원의 접촉을 제한하는 것이 북한의 특성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지금 남북 정상회담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북러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도중에 남북 정상회담을 언제 하겠다고 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남한 정부가 이걸 기대하고 냈다면 비현실적이죠.  

또 북한은 러시아와 정상회담에서 나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즉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 중에 남북 정상회담에 쓸만한 카드가 있는지, 이걸로 미국에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낼 것이 있는지 등을 결론 내려야 남북 정상회담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남한에 대한 섭섭함도 있을 겁니다.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전날 만찬에서는 분명히 분위기가 좋았는데 하루가 지나더니만 미국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좌절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남한은 자기들보다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을텐데, 미리 언질도 해주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한이 남한이 아닌,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이게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이른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일까요?  

정세현 : 우선은 경제적인 협력이 급해 보입니다.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체류 연장을 협의하고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 내기 위한 것 등이 북한의 1차적 목적인 것 같습니다.  

제재 문제와 관련해서도 숨통을 틔우겠다는 목표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중국이 국제적인 제재에 협조하는 것으로 돼 있긴 하지만 사실상 구멍이 어느 정도 뚫려있다고 봐야 하는데요. 이번에 러시아 정상회담을 하면 아마 이쪽으로도 사실상 제재의 빈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식량 지원이 들어가게 될 수도 있는데요. 사실 러시아에서 북한까지는 거리가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식량을 기차에 싣기만 하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두 번째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북한은 남북미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북핵 문제를 다자화시켜야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북핵 협상의 판이 커지면 이 협상에서 미국의 지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백업해주면 미국의 대북 압박 강도가 높아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이를 노리고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미국의 지분이 줄어들면 미국이 북한한테만 최종적인 비핵화 목표를 내놓으라고 일방적으로 압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 위협도 줄일 수 있죠. 또 미국의 상응 조치 역시 빨리 나올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다각적인 포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에서도 다자회담이 좋습니다. 실제 미국 태평양사령부 휘하에 있는 항공모함을 비롯해서 미국 전략자산이 싣고 다니는 핵무기는 꼭 대북용은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도 있는데, 여기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로 판을 키우면 중러는 이 부분을 건드릴 수 있죠.  

또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중국도 몸이 달아서 북한을 많이 도울 겁니다. 1950년대부터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외교를 해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효과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하노이 결렬, 북한에 책임 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두고 미국보다는 북한 쪽에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의 최종 상태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는데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협상이 어그러졌다는 주장입니다. 

또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알려주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전체 보유량이라도 알려달라고 했는데 북한이 여기에 대해서도 거부했다는 주장도 있고요. 

북한은 실무선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모든 것은 최고지도자(김정은)"가 결정할 것이라며 미국과 실무협상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봤을 때 북한이 최소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정도는 미국과 공유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래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왜 결렬됐는지 정확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야 다음번 회담이 열릴지, 그리고 회담이 열린다면 북미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정세현 : 우선 지금까지 북핵 협상의 역사를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일이 잘못될 때마다 미국은 "북한이 잘못했다" 또는 "북한이 처음부터 진정성 없이 미국으로부터 받을 것만 받아내고 자기들은 행동하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주로 설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이, 각종 정보 채널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북한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게 가능할까요? 대체적으로 미국은 자기들 주장을 자신들의 영향권 하에 있는 나라들의 언론을 통해 흘립니다. 자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서방 언론 등을 이용하는데 여기서 미국의 설명이 나오면 거기에 계속 살이 붙으면서 이른바 '정설'이 되는 것이죠. 

또 앞으로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을 따져야만 다음번의 회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협상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결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결국 이 두 지도자가 결단을 못내린 겁니다. 다른 이유를 더 따지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북한이 최고지도자가 결정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서 실무협상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북한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실무자들을 만나 보니 계속 북한의 선(先) 행동을 요구하기만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정상회담 전 실무협상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처럼 최고지도자끼리 결판을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동신문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는데요. 미국 입장에서는 비핵화의 최종 상태가 무엇인지, 북한이 이야기하는 비핵화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협상에서 처음부터 "우리가 이렇게 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은 강자이기 때문에 최종 상태에 대한 확인을 받아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겠지만, 북한은 약자이기 때문에 협상의 최종 목표를 이야기하면 협상에서 상당히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하던 습관에 비춰봤을 때 북한이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이야기하면 미국은 이걸 분명히 협상의 입구나 중간에 가져다 놓고 이를 북한에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북미 간에 협상의 로드맵이 맞지 않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협상의 출구는 상식적으로 북한이나 미국이나 모두 알고 있는 겁니다. 북한의 핵 투발 수단과 핵 기술을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폐기하고 핵 기술자들을 전업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겠죠. 이걸 확인하는 순간 미국은 이러한 조치를 협상의 입구로 끌어오려고 할 겁니다. 이렇게 하면 협상이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상태를 받아내려면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끌고 가야죠.  

비핵화 개념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입니다. 즉 북한의 비핵화와 자신들에 대한 핵 위협이 없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 성명에 나와있는 합의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북한이 비핵화의 개념을 확실하게 하지 않았다고요? 이건 책임을 북한에 넘기려는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게 된 이유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이 때 북한이 놀란 거죠. 그래서 대응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고 지금까지 온 건데,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북한은 미국의 전술핵 무기 빼고 자신들도 비핵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미국도 전술핵무기 빠졌으니까 북한 핵 무기도 빼라, 한반도에 핵 무기 없다는 개념으로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비핵화의 이러한 원칙을 넣으라고 지시한 건 미국입니다. 

그러니까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것이죠. 북한의 비핵화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북한이 비핵화를 어디까지 하려는 것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아서 그것부터 확인하자고 넘어가자고요? 이건 북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겁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단계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모두 공개하면 북한은 협상의 지렛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북한보고 발가벗고 협상장에 나오라는 건데 북한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높지 않죠.  

프레시안 : 북한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들어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3번이나 만났는데 여전히 입장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죠. 북한은 이걸 보면서 이 사람이 북핵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남아있으면 한 발짝도 못나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트럼프에게 폼페이오 때문에 수뇌끼리 이야기를 못한다고, 폼페이오가 장난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죠.  

북한은 미국 실무진이 자꾸 딴소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확실한 장악력을 가지고 실무 관료들에게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 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는데요. 미국이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면 협상에 나오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최종적으로 협상에서 무엇을 줄 것인지는 내놓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비핵화와 관련해서만 최종 협상 상태를 알려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북한만 비핵화시키겠다, 북한과 수교까지는 어렵고 연락사무소 교환 정도는 가능하다는 식의 말만 하면 북한은 더더욱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해 미국과 공유할 수 없는 겁니다.  

북한의 최종적인 비핵화 상태를 서로 알면서도 이걸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이행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은 채로 미국이 이전과 똑같은 소리를 하면 북한은 "그래 너네(미국) 마음대로 해라"라고 하면서 자력 갱생으로 버티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지난 3월 1일 새벽(현지 시각)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부분적 '선(先)행동' 필요해 

프레시안 : 북미 양측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한국 정부의 역할도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정세현 : 지금 북미 간 협상이 '탑 다운'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중요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실무 관료들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 핵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풀겠다고 결심하고 실무 관료들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핵화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핵 전문가들이 나와야 하고, 사찰이나 검증 문제가 나오면 IAEA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실무진들이 실제 실행에는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미국이 셈법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다고 해도, 그리고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합의가 나온다고 해도 실무진의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미국 관료들은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당했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비핵화는 곧 '북한의 비핵화'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실무 관료 입장에서 볼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정상회담 이후 폼페이오 장관에게 후속조치를 시작하라고 했을 때 북한의 비핵화만 이야기하니까 진전되기가 어렵죠.  

그래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뉴욕에서 미국의 입질이 있었겠지만 북한이 대꾸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입장에서야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계속 북한과 막후접촉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용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현재 상황을 풀어가려면 북한 입장에서는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미국과 완전한 '동시적' 이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보다 한 발 앞서가는 식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서 그에 따른 상응 조치는 그 다음 단계에서 받는 식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남한이 북한을 설득하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대체 한국은 뭐한거냐, 미국의 의도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요. 미국이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정부에서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었을까요? 두 얼굴을 가지고 협상장에 나오면 실
제 본심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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