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를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아마 국가가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중략) 왜 피해자가 책임자를 나서서 찾고, 죄를 물어야 할까요? 왜 피해자 스스로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밝혀내야 할까요? 도대체 왜? 피해자가 외쳐야만 하는 세상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인 장애진 씨가 낭독한 '기억글' 내용 중)
2019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일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5주기 행사는 '추모식'이 아닌 '기억식'으로 진행됐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다짐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새기기 위함이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석 진행되고 있다ⓒ김철수 기자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세월호 리본을 달아주고 있다.ⓒ김철수 기자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4·16가족협의회, 4·16재단 주관하고, 교육부·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경기도·경기도교육청·안산시가 지원한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이날 식이 열린 장소는 과거 세월호 참사 정부 합동분향소가 있었던 곳이며, 향후 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될 부지다. 지난해 세월호 4주기 '영결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억식을 찾은 시민들의 어깨에 종이로 된 노란 나비를 붙여주었다. 어깨에 노란 나비를 얹은 시민들은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햇빛가리개를 머리에 쓴 채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기억식을 지켜봤다.
오후 3시가 되자, 식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안산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의자에서 일어선 시민들은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총리,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윤화섭 안산시장 등 정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제외한 여야 4당 대표도 모두 참석했다. 사회는 이지애 아나운서가 맡았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추도사에 나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가족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완전한 진상규명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의 진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라며 "위급한 재난 위기 앞에서 국가는 국민을 반드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사회안전시스템을 마련하라는 국민의 요구는 우리 정부의 국정과제로 핵심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 부총리는 "저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세월호 참사 304분의 희생자 중, 무려 261명이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교육과정 중에 발생했던 참사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기억식 중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다시 한 번 희생자와 가족, 피해자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참사의 현장에서 함께 있던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던 의인들, 희생자 가족들을 내 가족처럼 걱정하고 힘을 보태주신 자원봉사자와 시민여러분께도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문 장관은 "안전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다는 각오로 안전한 바다를 만드는데 뼈를 깍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8반 고(故) 장준영 학생의 아버지, 장훈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돌아보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1997년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2014년 4월 16일 내곁을 떠나기 전까지 17년이었다"며 "그날 이후 지옥에서 살아왔다. 처음에는 진도체육관이, 팽목항이, 안산 장례식장이, 아이와 함께 산 집이, 광화문이 지옥이었다. 지난 5년 간 제 발이 닿은 곳은 모두 지옥이었다"며 처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장 운영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은) 국민을 구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죽였다. 해경 지휘부가 죽였다. 박근혜 청와대와 국가 안보실이 죽였다"며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우리아이들을, 304명의 국민을 죽인 그 자들을 모두 잡아서 처벌하라는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들은 이 5주기까지 계속 증거를 은폐하고 훼손하고 있다. 6, 7주기가 되기 전에 제발 이들을 모두 잡아 처벌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해달라"며 "4.16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더불어 전면 재수사하고, 기소해 살인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와 함게 장 운영위원장은 "5주기가 됐지만 우리 아이들이 전국 11개 곳에 뿔뿔히 흩어져 있다"며 "아이들을 이곳 안산으로 모으고, 이 땅에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비극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는 선언을 해야한다"며 4.16생명안전공원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자식 잃은 슬픔을 추스릴 새도 없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눈물로 호소하시는 여러 유족분들 앞에 죄인이 된 심정이다. 죄송하다"며 "완전한 진상규명으로 온전한 추모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저부터 좀 더 노력하겠다. 여러분 곁에서 함께 비를 맡겠다"며 힘을 보탰다.
전날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2021년 4.16 민주시민교육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시민 교육과 안전 교육을 통해, 안전과 생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교육다운 교육으로 희생자 여러분이 꿈꾸던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생존 학생 장애진 양은 기억편지 낭송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 씨는 이날 자신이 쓴 편지를 낭독했다.
장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30년 간 봉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30년이 지나면 저희는 50대가 되어 있을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우리가 포기할 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을 묶어놓은 것일까. (제도를) 잘못을 감추고 빠져 나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장 씨는 "정치인 중 몇몇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비치도록 하며, 서로의 사이를 이간질 했다"고 비판하며, "국민여러분들이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시선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장 씨는 먼저 간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세월호 생존자라는 단어가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아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 "지금 여기 우리 앞에 와 있다고 생각해. 무능력했던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 먼 훗날 소중한 너희들에게 가게 되는 날,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 너희를 만나러 갈게. 우리도 잊지 않을테니 너희들도 기억해줘."라고 말했다. 편지글 낭송을 듣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장 씨는 "거짓이라는 벽에 갇힌 진실은 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해 보였지만, 아무도 모르게 벽에 아주 작은 틈새를 찾아 조용히 세상을 향해 흘러 나가고 있다"는 드라마 대사를 빌려 편지글을 마무리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가수 양희은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날 무대에는 '기억'과 '진실'의 상징인 노란리본 조형물이 설치됐다. 노란 리본 앞으로는 '안전한 대한민국의 바람'을 의미하는 노란 바람개비가 세차게 돌아갔다.
'기억'의 의미를 담은 다채로운 문화공연도 열렸다. 성악가 홍일 씨는 '시간을 보내고'라는 곡을 불렀다. 허영민 씨의 아쟁 연주와 조성진 씨의 마임 공연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 '악질경찰' 출연 배우 전소니 씨가 시를 낭송했다. 가수 양희은 씨는 노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상록수' 등 노래 2곡을 불렀다. 안산시립합창단은 '기억해 사랑해' 등 노래를 불렀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단원고 1학년 학생들이 참석해 기억식을 지켜보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편, 이날 단원고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자체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과 함께 추모 영상과 합창공연을 보았고, 유족 대표와 학생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오후 1시부터 안산 시내에서는 '1000개의 바람이 되어 첫 마음으로 함께 걷다'라는 주제로 세월호 참사 5주기 시민추모행진도 이루어졌다. 검은 옷을 입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4호선 고잔역에서부터 출발해 4.16기억교실과 단원고를 거쳐 5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까지 행진했다.
양아라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